우리의 달력은 누가 만들었을까?
중국은 동지 기준 --이십사절기의 하나.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들며 태양이 동지점을 통과하는 때인 12월 22일이나 23일경이다. 북반구에서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그 뒤 율리우스 시저의 집권 시대인 기원전 46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의 조언으로 1년을 365일로 하는 새 달력을 만들었다. 이 달력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한 달의 길이를 31일과 30일을 번갈아 넣었다. 달의 크기는 원칙적으로 홀수인 달을 31일로 하고, 짝수인 달은 30일로 정했다. 그런데 평년을 365일로 하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떼어 내 29일로 했다. 윤년인 경우는 2월을 30일로 했다. 춘분날은 누마 왕 때와 마찬가지로 3월 23일로 정했다. 태양력의 1년 길이는 365.25일로 매 4년마다 윤년을 두었다. 이것을 율리우스력이라 한다.
태양력(太陽曆)의 하나. 로마의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이집트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Sosigenes)의 의견에 따라 개정한 세력(歲曆)이다. 365일 6시를 1년으로 하고 4년마다 하루의 윤일(閏日)을 두었다. 후에 수차의 개정을 거쳐 현행의 태양력이 되었다.
폼페이우스 Pompeius, Magnus Gnaeus 고대 로마의 장군·정치가(B.C.106~B.C.48).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하여 신망을 얻고 카이사르, 크라수스와 함께 삼두 정치를 하였다. 후에 카이사르와 대립하였으나 패하여 망명 중에 암살되었다.
율리우스가 개력을 할 때 계절과 달력의 날짜가 이미 3개월이나 차이가 나 있었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23일 짜리 윤달과 67일 짜라 윤달을 끼워넣어 계절을 맞추었다. 때문에 기원전 46년은 실제로 445일이나 되는 긴 해였다. 율리우스는 개력 이후부터 달력을 계절에 맞추기 위해 기존의 1월을 3월로 하고 그 앞에 새로 두 달을 넣었다. 이에 따라 모든 달이 두 달씩 미뤄져 당시에 5월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7월이 됐다. 율리우스는 생일이 7월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7월달의 본래 명칭인 퀸틸리스를 자신의 생일 달의 의미를 지닌 율리(July)로 개칭했다. 따라서 7월(July)의 영어 명칭은 율리우스의 생일 달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네로의 달 율리우스가 브루투스에게 시해된 후 로마 황제로 등극한 이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이다. 그도 율리우스를 본받아 달력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 그는 트라키아와 아크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8월달의 본래 명칭을 바꾸었다. 그의 생일은 8월이었는데, 아우구스투수가 8월의 명칭을 바꾼 것은 자신의 생일달을 기념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그는 이 달의 본래 명칭인 섹스틸리스(Sextilis, 제6번째 달이라는 의미)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바꾸었다. 더욱이 황제인 자신의 달이 다른 달보다 작으면 황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서 2월에서 하루를 떼어와 31일의 큰 달로 변경했다. 그러자 1월에서 7월까지는 홀수인 달이 큰 달이 되고, 7월과 8월이 연속해서 큰 달이 됐다. 그리고 8월부터 12월까지는 짝수 달이 큰 달이 됐다. 이 때문에 2월달이 다른 달에 비해 유난히 작아져 버렸다. 양력은 태양의 운행에 따라 1년의 길이를 정했지만, 달의 길이는 임의대로 정해졌던 것이다. 그 후, 악명이 높던 네로 황제는 이들을 본 따 4월을 자신의 달인 네로네우스(Neroneus)로 고쳤지만, 네로 황제의 사후에 다시 본래의 명칭으로 되돌아왔다.
1년에 11분, 1천년에 10일 차이 1년의 길이는 실제의 1년 길이인 365.2422일에 비해 0.0078일이 길다. 이는 약 11분 14초에 해당한다. 따라서 1백 28년이 지날 때 마다 태양년의 길이가 하루씩 더 길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춘분날이 1백 28년마다 하루씩 앞당겨지게 돼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 때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582년에 춘분날은 3월 11일로 본래의 위치에서 이미 10일이나 크게 앞당겨져 있었고 이는 종교적으로 큰 문제였다. 당시 유럽의 모든 국가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행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날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춘분날 후 첫번째 오는 보름을 지나 첫번째 일요일 날로 정해졌다. 만일 첫번째 오는 보름날과 일요일날이 겹쳐지면 다음 주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킨다. 때문에 달력의 오차로 춘분날이 앞당겨지면 부활절도 앞당겨지게 됐던 것이다. 그레고리 13세는 이를 본래 지키던 부활절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 개력을 단행했다. 새로운 달력에서는 우선 태양년의 길이가 실제와 거의 같도록 윤년의 횟수를 조정했다. 서기 연도가 4로 나누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정하고, 동시에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다시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서기 1900년을 평년이고, 서기 2000년은 윤년이 되는 셈이다. 이런 원리로 400년간 윤년을 1백회 두던 규칙을 97회 두는 것으로 고쳤다. 이렇게 하면 1태양년의 길이가 365.2425일이 돼 실제의 길이인 365.2422일과 거의 유사한 값이 된다.
부활절을 맞추려고 10일 빼먹어 다시 춘분날의 위치를 부활절 제정 당시의 날짜인 3월 21일로 되돌려 놓기 위해 1582년10월 4일 (목요일)의 다음날을 1582년 10월 15일 (금요일)로 변경했다. 따라서 1583년부터는 춘분날이 3월 21일로 밀려나게 됐다. 하지만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의 날짜는 존재하지 않는 날이 됐다. 이 때 날짜는 건너뛰었지만 요일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를 그레고리력이라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이 이 것이다.
달력의 역사 ◀◀◀ 년, 월, 일은 다음 세 가지의 천체운동의 주기에서 만들어집니다. 년(年)- 태양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바퀴 완전히 도는데 걸리는 시간 이 고대의 농부들은 그들이 씨 뿌리는 날짜가 점점 계절과 어긋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달력을 계절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여분의 날과 달을 달력에 더했는데, 처음에는 불규칙하게 더했으나 나중에는 19년 주기로 하였다.
가이우스 줄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영어로 발음하여 시저. 서양역사상 다섯손가락안에 손꼽히는 명장(帝政)이자 대정치가이며 <갈리아전기>, <내전기>등을 저술한 제 1급 문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나폴레옹과 더불어 서양 3대 영웅중 한사람. 로마공화정의 파괴자임과 동시에 로마제정(帝政)의 창시자로 실질적 로마 초대황제. 한마디로 서양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기원전 49년, 1월 12일.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 제 13군단은 이탈리아 북부 루비콘(Rubicon)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49년, 3월 17일. 폼페이우스는 이탈리아 남부 브린디시를 출항하여 그리스로 피신하였다 비록 폼페이우스가 본국 이탈리아와 수도 로마를 버렸지만 카이사르와의 정면대결이 무서워서 도망친것은 결코 아니었다. 전쟁경험이 풍부한 폼페이우스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카이사르의 루비콘 도하에 이은 급습에 당황한 것이었을 뿐 불완전한 상태에서 맞서기보다는 힘을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일단 후퇴하였을 뿐이었다. 지중해 전역으로 시야를 넓히면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를 압도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카이사르 - 8년간 갈리아전쟁을 뒷받침한 북이탈리아&남프랑스 속주 + 정복된 갈리아 + 본국이탈리아와 수도 로마
폼페이우스 - 시리아 & 소아시아 & 그리스 & 아프리카 속주 + 속국 이집트 + 이베리아 반도 + 지중해 해양도시 세력
이베리아반도-유럽 대륙 서남쪽 끝에 있는 반도. 에스파냐(스페인) , 포르투갈, 안도라, 영국령 지브롤터 따위가 있다. 그리스(헬라)-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한 공화국. 1829년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여 왕국이 되었으며, 1973년에 공화국이 되었다. 수도는 아테네,
소아시아-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흑해, 에게 해, 지중해에 둘러싸인 반도. 터키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시리아-서아시아, 지중해 동해안 지역을 통틀어 이르는 이름. 기원전에는 페니키아 인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현재는 시리아·요르단 하시미테 왕국·레바논·이스라엘 따위의 국가들이 있다. 서아시아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 1946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고원 지대가 많으며 농업과 목축이 활발한데, 주민은 아랍 인이고 아랍 어를 쓴다. 수도는 다마스쿠스=다메섹
이집트(애굽)--아프리카 북동부 나일 강 유역 중심부에 있는 공화국. 인류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고대에는 농경 문명이 번영하였고, 기원전 4000년경에 이미 통일 국가를 형성하였다. 1922년 영국에서 독립하였으며, 1952년에 공화제가 되었다. 석유·면화·쌀 따위가 많이 난다. 주민은 대부분 아랍 인이다. 수도는 카이로
에스파냐(스페인 ), 다시스?--유럽의 남서쪽 끝에 있는 나라. 영어로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전 세계적으로 부르는 공통이름이고 에스파냐는 자기네들이 스페인어로 에스파뇰~이라고하는데 영어로 읽으면 에스파냐 이.. 유럽 남서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입헌 군주국. 15세기 말 왕국이 성립되어 번영하였으며, 1931년에 공화국이 되었다가 1975년에 왕정(王政)이 복고되었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관광 수입도 중요한 수입원의 하나이다. 주민은 라틴계로, 대부분 가톨릭교도이고 주요 언어는 에스파냐 어이다. 수도는 마드리드, 면적은 50만 4782㎢. ≒스페인.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는 동지중해, 즉 폼페이우스 근거지였던 시리아나 소아시아 속주의 경제력이 카이사르의 근거지인 서방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었다.(면적으로는 갈리아의 1/4밖에 안되는 소아시아 속주에서 거둬들이는 속주세는 갈리아의 무려 5배였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우수한 병력제공지 기능을 수행하던 이베리아 반도와 지중해 세계최대의 식량생산국이었던 이집트 역시 폼페이우스의 세력권이었다. 또한 폼페이우스의 해적토벌로 인하여 폼페이우스에게 호의적인 지중해 해양도시들은 폼페이우스에게 강력한 해군력을 제공해주었다.
그레고리 달력을 채택함으로써 달력과 계절은 꽤 잘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일년을 이루는 날짜 수가 태양주위를 도는 지구의 회전주기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세 가지 천체 주기를 바탕으로 한 달력을 사용하는 한, 매달 또는 매년에 속한 날짜 수가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太陰曆(태음력) 주기(週期)로 차고 지는 것을 1달로 정해서 만든 달력입니다. 순태음력(純太陰曆)으로도 불리는데, 현재 일상에서 사용되는 우리의 음력(陰曆)과는 다른 역법입니다. 윤달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계절과 달력이 점차 달라지는 결점이 있지만 현재에도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사용되고 있습니다.
로마시대를 기원으로 보는데,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발전했습니다.
성경의 절기와 달력
달력은 우리모두 인정하는 필수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최초의 달력은 농부의 1년 4계절과 그 절기들에 얽힌 종교의식들 주변에서 발전되었다. 이러한 연관으로 인하여, 또 그 전체 주제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제사장들은 달력을 취급함에 있어서 전문가들이 되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 유역의 큰 제국들은 고도로 정확성을 가진 여러가지 연대 계산 체계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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