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레저

평창 친구네를 다녀오며 1

역려과객 2024. 6. 12. 16:13

 

 

인생 60대는 해마다 늙고 70대는 다달이 늙고 80대는 나날이 늙고 90대는 시간마다 늙고 백 세가 되면 분마다 늙는다고 했다. 노후의 친구는 가까이 사는 친구가 좋고,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하며, 취미나 종교가 같으면 더욱 좋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다니면 더욱 좋고 우리네 나이에 건강까지 더하면 금상첨화이다.

 

 

우리가 70살을 살 때 27억 번의 심장이 뛰고, 13만 번의 꿈을 꾸며, 삼천 번을 울고, 오십사만 번 웃는다고 한다. 50톤의 음식물을 먹고, 5만리터의 물을 마시며, 4만리터의 소변을 본다고 한다. 33천 번의 눈을 깜빡이고 5km의 머리카락이 자란다는데 처는 벌써 고희가 지났고 나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일흔살은 젊음일까? 노년일까?  알 수 없네

세월은 흘러가도 자연은 변함없네

영원히 살기 바라지만 건강찾길 원하네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 수 없고, 늙은이의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 봄바람이 와도 그대로이고, 봄은 오고 가건만 늙음은 한 번 오면 갈 줄 모르고, 봄이 오면 풀은 저절로 나건만 젊음은 붙들어도 머물지 않고, 꽃은 다시 피는 날이 있으나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 수 없고,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으나 사람은 조석으로 변하고,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4월부터 약이 네 알이나 늘었다. 말이 점점 어둔해지고 이 이 나이에 약 중독으로 살아감에도 옆에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는 손이 많이 간다. 휠체어 목발에 오줌통, 그리고 먹는 약에 마약 패치에 바르는 약 등등 더욱이 보호자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움직이면 서로가 고생이다. 지난 5일 처에게 나는 여러 친구들에게 피해만 줄 뿐이라 안 가면 안 되냐 당신만 갔다 오면 안되냐고 했더니 내가 과부냐 당신이 안 가면 나도 안 가겠다. 친구들이 아픈 것 다 안다하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면서 나를 달랜다. 그 말이 가슴이 섬뜩하여 당신의 뜻에 따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내 말은 처의 통역이 필요하다. 어떨 때에는 내 말도 잘 못 알아듣는다. 불면증을 앓고 난 이후에는 더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지난 7일 장애인인 친구 대호 부부와 구반월에 가서 주꾸미와 함께 수제비를 먹기로 했는데 그의 처가 감기 걸렸다고 다음 주 목요일인 내일로 연기되었다. 1급 장애이면서도 못하는 운동이 없고 악기를 잘 다룬다. 나는 음악만 틀고 멘트는 안 하는데 대호의 멘트는 한울방 식구들의 환호성을 지르게 만든다. 장애인 친구로서 많은 배울 점이 있으나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 그는 능동적이고 난 수동적이어서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같지 않을까 싶다. 항상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갖은 풍파 겪고 나니 나이만 먹었네라

뜬구름 등에 지고 살아가는 팔사구생

천사를 뒤늦게 만나니 잊지 못할 복이리라

 

 

말끔한 성격 탓에 집안도 깨끗한데

내게 비친 눈망울은 늙음일까? 고뇌일까?

아픔을 승화시켜서 맑음으로 보답하리.

 

 

목우회는 30년도 넘었다. 처음엔 11가족이 참가했는데 나는 9650개월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재가입하여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 진문이네 집이었다. 그 당시에는 집에서 모였었다. 이제는 다섯 가족만 남았다.

 

 

진문이는 동창이지만 나이가 많고 처와 현석엄마는 죽마지우이다. 우리 부부를 맺게 했고, 결혼식 때 김포공항까지 태워다 주었으며, 종찬이 장모님 상을 당했을 때 충주까지 같이 가 준 친구이다. 두 여자는 자주 만났으나 내가 아프면서 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십년을 초지일관 앞만 보고 달려왔네

지하에서 타국에서 흘린 땀이 얼마인가?

막둥이 취직 소리에 보상받는 느낌이리

 

 

우리 부부 잇게 해준 고마움이 박혀있네

한평생 일만 하니 언제쯤 허리 펼까?

뒤늦게 후회를 말고 건강부터 챙기세요

 

 

문용이는 내가 입원 등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바로 송금해준 고마운 친구이다. 그와 소양강 댐을 다녀온 기억이 남는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였다. 3기라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나를 라이벌이라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라이벌이란 제목으로 편지를 써서 블로그로 보냈는데 그는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태평함과 여유로움 어디서 나왔을까?

간병에 농사까지 모든 일에 솔선수범

망우물 적당히 하고 신혼생활 꿈 꾸렴

 

 

달콤한 유우머가 모두를 웃게 하고

김치와 소박이로 센스있는 여유로움

달콤한 신혼생활은 하기 나름 이겠죠?

 

50여년 전부터 일기를 썼고, 그 덕분에 펜팔도 많이 했고, 젊은 시절 중동으로 간 친구들에게 많이 보냈으며, 현광이와 종찬에게 많이 썼다. 특히 당시 집배원이었던 현광이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엽서가 오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타계가 내게 불면증이란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매일 일기를 쓰다 보니 말은 잘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글로 표현하게 되고 그것이 낙서가 되고 나중에 시와 시조가 되고 수필이 되었다, 요즘은 기행문을 자주 쓰게 된다. 불로그에 올린 자작글만 500개 정도이다. 40을 넘겨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문용이가 유일하다.

 

 

결혼 초에 처는 목욕탕에 자주 갔었는데 동네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때를 밀어 드리고 음료수를 사 드렸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진문이 모친, 문용이 모친도, 계셨다고 했는데 문용이 모친이 처를 귀여워해 주셨다고 한다.

 

 

60~70년에는 모두들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동네가 38호였는데 그 중에서도 덕환네는 남보다 더 심했다. 덕환이는 우리집과 가까이에 살았다. 그의 모친이 우리 조부님께 아버지라 부르셨다. 기억력은 동네에서 으뜸이고 유우머 또한 남보다 탁월하여 남에게 많은 웃음을 준다. 많이 배웠으면 한 자리는 했을 것이다. 그와 결혼초에 양양 속초를 돌며 회 먹은 생각이 많이 난다.

 

 

어린 시절 꿈을 꾸며 자수성가 이루었네

오뚜기 저리 가라 친구 삶이 대단하네

유우머 한 마디에 웃음이 절로나네

 

 

모두들 참석하고 한 분만 빠졌네요

아껴주고 챙겨주고 오서방이 잘 하겠죠?

어머님 모시고 사는 분 효부라 칭합니다.

 

 

아랫마을에 사는 치현이는 동창도 아니어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치현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3년 선배 영진형의 꾀임에 페인트 가게를 열었다. 3년만에 3억을 까먹고 접었다. 치현이가 페인트업을 하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훗날 시간이 나면 자세하게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치현이 부부와는 병목안에서 점심을 같이 한 것 이외는 별로 내왕이 없었다.

 

 

잘 생김에 큰 키까지 모든 것을 갖추었고

암투병 극복하고 별장까지 마련했네

색소폰 소리에 젖어 감동까지 얻었구려

 

 

침대까지 내어 주신 배려의 아름다움

별장의 꽃과 채소 잔디밭 옆 과일나무

개여울 공기를 마신 감사함을 표합니다

 

 

8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씻고 나니 다섯시 45분에 진문이 부부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목우회는 18년에 강화도에 다녀온 이후로 처음이요 일박이일 또한 처음이다. 지금껏 처가에서도 한 번도 자고 온 적이 없었다. 횡성 새말 IC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가정식백반식이었다. 아침 740분이다

 

 

백반은 맛이 없고 가랑비는 내리지만

평창의 맑은 공기 덤이라 생각하니

오기를 잘했다 생각하며 두 팔 벌려 안으리

 

 

박반을 먹는데 모든 찬들이 맵고 짜다. 계란말이까지 짜다. 짜고 맵고 단 음식은 당뇨 환자에겐 치명적이다. 나는 김치도 예전의 1/10이상 줄였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소식하고 6시 이후로는 약 이외에 아무것도 안 먹는다. 어쨌거나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기 두 개 모두 고장이 났다. 내가 가 본 화장실 중 가장 지저분했다. 볼 일을 보고 나오는데 그제야 문용이가 왔다. 모두 다 모였는데 덕환이 처가 안 보인다. 친정어머니 간병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