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고운말

時調의 형태

역려과객 2014. 5. 31. 15:47

時調의 형태

 


시조의 형태(혹은 형식)는 단형시조(평시조), 중형시조(엇시조),장형시조(사설시조),양장시조,(2장시조), 옴니버스시조(시조의 각종 형식을 아우른 혼작(混作)연형시조), 동시조(童時調) 등 여섯 종류가 있다. 또한 시조의 내용면에서는 서정시조, 서사시조, 교훈시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평시조의 형태

평시조는 시조의 중심이 되는 형식으로서 3장 6구 12음보로 구성된 시형식이다. 시조는 어느 종류를 막론하고 초장, 중장, 종장 3장의 형식미학을 갖추고 있다. 평시조(단형시조)는 각 장이 2구 4음보 율격을 갖추며 종장 첫 구가 1음보 3음절로 고정된 삼장시(三章詩 혹은 삼행시)이다. 평시조의 특성은 간결한 형식미와 단시로서의 서정미학을 구현해내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조라고 하면 평시조를 가리키며 과거 학자들은 그 형식을 3장 6구 45자 내외로 규정하고, 이에서 몇 자를 가감할 수 있는 신축성 있는 형식이라 하였다.


                                          -길재(吉再)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첫 어절)         (둘째 어절)        (셋째 어절)      (넷째 어절)

 

 

 

    3                   4                   3                4

        (첫째 구)                               (둘째 구)

 

            7                                       7

                             (초장)

                              14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첫 어절)         (둘째 어절)     (셋째 어절)     (넷째 어절)

 

 

 

     3                   4              3               4

          (셋째 구)                        (넷째 구)

 

             7                                7

                           (중장)

                             14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첫 어절)        (둘째 어절)        (셋째 어절)      (넷째 어절)

 

 

 

     3                  5                  4                3

         (다섯째 구)                         (여섯째 구)

 

             8                                    7

                           (종장)

                             15


 

예문


                             -남구만(南九萬)의 시조



동창이  /  밝았느냐  //  노고지리  / 우지진다

   3              4                 4              4

소치는  /  아이들은  //  여태 아니  /  일었느냐

   3              4                 4              4

재너머  /  소래 긴 밭을  //  언제 갈려  /  하느냐

  3               5                       4              3


예문으로 든 길재(吉再․1353~1419)의 시조<오백년 도읍지…>와 남구만(南九萬)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는 이른바 ‘교과서적 평시조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예문


한 잔 술 등불 아래 못 달랠 건 정일레라

세월이란 풀섶 속에 팔베개로 지쳐 누운

당신은 귀뚜리던가 내 가슴에 울어 쌓네

                                       -정완영<가을 아내>


문갑에 쌓인 고요 닦으면 날이 서고

청댓잎 어른대다 달의 몸을 찌를 때면

병풍 속 잠자던 수탉 홰 울음을 울었다.

                                      -이상범<민화(民話)그리고 민화(民畵)


저 강에 가라앉은 울창한 대나무 숲

단단한 마디처럼 상처가 새겨지고

따숩던 마을 언저리 침몰한다 노을이…

                                      -장수현<강. 침몰하는 노을>


정완영의 ,가을 아내>나 이상범<민화 그리고 민화>, 장수현의<강. 침몰하는 노을> 역시 평시조의 정통적 율격을 한 치 오차도 없이 고스란히 담아낸 단아(端雅)한 시조 작품이다.


시골집 아랫목에 상전으로 자리했지

찐득한 진을 모아 속으로만 삭혔는데

정겹고 구수한 나를 왜 모르고 싫어할까.

                                      -천숙녀<청국장>


천숙녀의 <청국장>도 초장, 중장,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3장 시조이다. 유머감각이 넘치 는 이 작품은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청국장처럼 정겹고 구수한 작자의 ‘멋’이 곁들여 있는 평시조이다.


담벽 틈 비집는 대한 무렵 바람소리

겨울도 몸져 눕고, 동장군도 물러서면

모퉁이 휭 하고 돌아 저벅저벅 오실 분

                                     -하정화<봄 마중>


시조는 쉽게 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문학적 깊이와 무게를 실어야 하는 것이다. 시의 행간에 작자가 체험한 인생의 무게, 삶의 철학을 담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하정화의<봄 마중>은 많은 이야기를 압축한 작품이다. 특히 종장 ‘저벅저벅 오실 봄’은 젖은 신발을 끌고 오는 봄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깔끔한 평시조다.


풍지에 바람 일고 구들은 얼음이다

조그만 책상 하나 무릎 앞에 놓아 두고

그 위엔 한 두 숭어리 피어나는 수선화


투술한 전복껍질 발 달아 등에 대고

따뜻한 별을 지고 누어 있는 해형수선

서리고 잠 들던 잎도 굽이굽이 펴이네


등에 비친 모양 더욱이 연연하다

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

하얀 장지문 위에 그리나니 수묵화를

                                    -이병기<수선화>


<수선화>의 세째 수 종장을 눈여겨 보기 바란다. 이른바 시조의 ‘생명’이라고 불리는 종장 첫 어절이 석 자(3)가 아니라 두 자(2)로 마무리 되어 있다. 이런 예는 고시조 작품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문)


‘다만 한 근심은 상대부(桑大夫)드르라’

‘어부 생애는 어렁구리 디낼로다’

‘님이 보신 후제야 노가디다 엇더라’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 하쇼서’

‘구월산중 춘초록이요 오경누하에 석양홍인가 하노라’ 


이런 예는 고시조 작품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거니와 실제 시조를 창작하고 있거나, 관련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일부 시인 및 학자들이 강조하는 ‘종장 첫 어절의 석 자 불문율(不文律)’주장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나무는 알되 숲은 모르는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람 이병기 선생의 <수선화> 세째 수를 시조가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일은 시조 가락을 이해하는 온당한 태도가 못된다. 흔히 서양 사람들은 수치 개념을 얘기할 때 ‘한 자’면 한 자,‘ ’두 자‘면 ’두 자‘로 잰 듯이 엄격성을 띠고 있는 반면 우리의 수치 개념은 ’두서너 자‘ ’서너 자‘ ’너댓 자‘식으로 융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의 경우 한 자가 넘쳐도 좋고 한 자가 부족해도 허용되는 것이다. 한시(漢詩)의 율격처럼 ※평측(平仄)․※각운(脚韻)을 철저하게 지키는 게 아니라 시조는 융통성을 지닌 우리 민족성처럼 엄격한 자수보다는 ※운율(韻律)과 가락, 내재율을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평측(平仄) : 평(平)과 측(仄). 곧 한시(漢詩)에서, 음운의 높낮이.(또한 음운은 말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소리로 음소라고 하기도함)


※각운(脚韻) : 시가(詩歌)에서, 시구(詩句)의 끝에 다는 운


※운율(韻律) : 시문(詩文)의 음성적 형식으로 외형률과 내재율이 있다(여기서 외형률이란 시가(詩歌)에서, 일정한 율격(律格)이겉으로 드러나는 운율로 주로 글자 수에 의한 운율로 삼사조니 사사조라고고 하는 따위를 가리키며, 내재율은 현대시, 즉 자유시에서, 그 내용이나 시어(詩語)의 배치 따위에서 느낄 수 있는 잠재적인 운율을 이름)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장 첫 어절의 ‘석 자 규칙’이 무너졌을 경우 자유시와 시조의 변별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형식 장치인 시조의 개성을 고수하고 나아가 3-5-4-3이라는 절묘한 가락을 지키자는 것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조시인들의 공통된 견해이자 묵계(黙契)인 셈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신인’으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조의 형태를 잘 체득해야 한다.

시조의 정격(正格)이 몸에 배도록 혹독한 단련과 고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적어도 문단 데뷔 4~5년차까지는 철저하게 정형을 지키고 종장 첫 어절의 석 자를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러한 시조의 형식상 특징을 일컬어 가람 이병기(李秉岐)는 ‘정형시(整形詩)’라고 규정하였고, 노산 이은상 이은상(李殷相)은 ‘정형이비정형 시(整型而非定型 詩)이며, 비정형이정형(非定型而定型)의 시형(詩形)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잘 정형(整形)된 시형이라든가, 정형시(定型試)이면서 정형시가 아니며 정형시가 아닌 듯 하면서도 정형을 갖춘 시라고 한 그 배경에는 자수율(字數律)을 기준으로 삼은 주장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지침은 창작을 부당하게 구속하게 만든다”고 하였듯이,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평시조의 형식규정은 맹점이 많은 것이다.

1930년 도남 조윤제 박사가 평시조 2천7백59수를 표본 조사한 결과 초장 율격이 3․4․4(3)․4와 일치하는 작품은 47%(1천2백98수), 중장 40.6%(1천1백21수), 종장이 3․5․4․3과 맞아떨어진 작품은 21.1%(7백89수)로 나타났다.

 

이것을 확률론의 공식에 따라 계산하면 초-중-종이 평시조의 정형과 일치하는 작품은 고

작 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조동일 서울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전체의 4%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정형으로 삼는다면 평시조는 그 실상과는 사뭇 다르게 이해되고, 시조 창작의 방향도 왜곡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 평시조는 자수율보다는 내재율(리듬)을 중시해야 한다.


참고로 ‘평시조 변형’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모처럼 지는 꽃 손에 받아 사방을 두루 둘러본다

지척엔 아무리 봐도 놓아 줄 손이 없어

그 문전 닿기도 전에 이 꽃잎 다 시들겠다.

                                          -김상옥<그 門前>


마루가 햇빛에 쪼여 찌익찍 소리를 낸다

책상과 걸상과 화병, 그 밖에 다른 세간들도 다 숨을 쉰다.

그리고 주인은 혼자 빈 궤짝처럼 따로 떨어져 앉아 있다.

                                                    -김상옥<빈궤짝>


목숨을 끊은 양 누워 슬픔을 새김질해도

내 귀엔 피 닳는 소리 살 삭이는 소리

산, 너는 죽어서 사는 너무도 큰 목숨이다.


그 황토흙 무덤을 파고 슬픔을 매장하고 싶다

다시는 울지 않게 천의 현을 다 울리고 싶다

풀 나무 그것들에게도 울음일랑 앗고 싶다


어느 비바람이 와서 또 너를 흔드는가

뿌리처럼 해도 누더기처럼 덮여오는 세월

깊은 잠 가위눌린 듯이 산은 외치지도 못한다.

                                        -이근배<내가 왜 산을 노래하는가에 대하여>


깊은 암벽 두드리자 숨은 모닥불 일어서고

날 선 돌작살에 끌려 온 선사의 바다

겨울 밤 내 꿈하늘 가른다 우우우우 고래떼

                                       -송선영<겨울 암각화-반구대>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

우리 손 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윤금초<천일염>

 

여기서 김상옥 선생의<그 문전>이나<빈궤짝>, 그리고 이근배 선생의,내가 왜 산을 노래하는가에 대하여>, 송선영 선생의<겨울 암각화-반구대>, 윤금초 선생의 <천일염>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이들 작품을 편의상 ‘평시조 변형’이라고 가정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평시조 변형’이란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고쳐 말하면 이들 작품이 ‘교과서적 평시조 형태’에서 약간 벗어나 있을 뿐이지 ‘넓은 의미의 시조 개념’으로 보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시조의 정형 규칙에 의한 자수개념으로 따지면 그 정격에서 한두 자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 혹은 율격이 약간 변화를 가져온 것뿐이지 ‘평시조 병형’이라고 규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굳이 ‘평시조 변형’이라고 구분한 것은 ‘교과서적 평시조’와의 변별성을 살피고 그 장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뿐이다.                                      

김상옥 선생의 <빈 궤짝>을 다시보자.


“마루가 햇빛에 쪼여/찌익찍 소리를 낸다//책상과 걸상과 화병,/그 밖에 다른 세간들도 다 숨을 쉰다//그리고 주인은 혼자/빈궤짝처럼 따로 떨어져 앉아 있다.”

빗금 하나(/)는 구와 구의 구분으로, 빗금 두 개(//)는 장과 장의 구분으로 구획 지어 읽으면 이 단형 시조의 이미지는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 올 것이며, 시조의 가락 또한 낭창거리는 리듬을 탈 것이다.

이처럼 시조는 융통성이 많은 자유로운 시인 것이다. 음수율이나 음보율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그 율격을 잴 수 없는 정형시인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 민족의 공동체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신명처럼 독특한 내재율이 살아 있는 형식 체험의 시인 것이다.


♧엇시조의 형태


초 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6~7음보로 이루어진 시형식이다.

엇시조의 ‘엇(旕)’이란, 한자 어(於)에 이두(吏讀) ‘질(叱) (ㅅ)을 붙여 만든 (언於+질叱=엇(旕)이두식 조어(造語)이다. ’엇‘은 ※접두사(接頭辭)로서 평시조와 엇비슷한, 또는 평시조에서 어긋난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 접두사(接頭辭) : 어근(語根) 앞에 붙어서 그 뜻을 제한하는 접사임. (‘덧버선’ ‘개나리’ 따위에서 ‘덧’‘개’ 와 같은 것)


엇시조는 평시조의 기본 틀인 3장6구 12음보에서 어느 한 장의 1구가 2, 혹은 3음보 정도 길어진 형태이다.

대개 초장과 중장이 길어지지만, 중장이 길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종장만이 길어진 경우는 드물다. 다시 정리하면 엇시조는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중간 형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초․중 종장 가운데 어느 장이든지 길어질 수 있으나 중장이 길어진 형식이 일반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예문


명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절로 수절로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중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송시열<청산도 절로 절로…>


반도 끄트머리

땅끝이라 외진 골짝

뗏목처럼 떠다니는

전설의 돌섬에는

한 십년 내리 가물면 불새가 날아온단다.


갈잎으로, 밤이슬로

사뿐 내린 섬의 새는

흰 갈기, 날개 돋은

한마리 백마였다가

모래톱 은방석 위에둥지 트는 인어 였다.


상아질(象牙質) 큰 부리에

선짓빛 깃털 물고

햇살 무동 타고

미역 바람 길들여 오는,

잉걸불 발겨서 먹는

그 불새는 여자였다.


달무리

해조음

자갈자갈 속삭이다

십년 가뭄 목마름의 피막 가르는 소리.

삼천년에 한번 피는

우담화 꽃 이울 듯

여자의

속 깊은 궁문(宮門)

날개 터는 소릴 냈다.


몇날 며칠 앓던 바다

파도의 가리마 새로

죽은 도시 그물을 든

낯선 사내 이두박근…

기나긴 적요를 끌고

훠이, 훠이, 날아간 새여

                       -윤금초<땅끝>

 

섬진강 놀러온 돌  은빛 비늘 반짝이고

드레스 입은 물고기 시리도록 푸르다.


강변 수은등이 젖은 눈 끔벅이고

구르는 갈잎 하나 스란치마 끄는 소리

바람도 빗살무뉘로 그렇게 서성이고…


수신 깊은 세월의 강

훌쩍 건너온 한나절,


저 홀로 메아리 풀며

글썽이는 불빛들이

포구 죄 점령하고

이 가을 다 떠난 자리

격자(格子)풍경 예비한다

                           -윤금초<빗살무늬 바람>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청산도 절로 절로…>는 중장과 종장이 늘어난 엇시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윤금초의 <땅끝>과<빗살무늬 바람>은 넷째 수와 셋째 수가 각각 엇시조 형태를 이루고 있다. 즉 <땅끝>에서는 “달무리/ 해조음/ 자갈자갈 속삭이다/ 십년 가뭄 목마름의 피막 가르는 소리,/ (삼천년에 한번 피는 우담화 꽃 이울 듯>/ 여자의/ 속 깊은 궁문(宮門)/ 날개 터는 소릴 냈다.”는 진술 가운데 ( )부분이며, <빗살무늬 바람>에서는 “수심 깊은 세월의 강/ 훌쩍 건너온 한나절,/ 저 홀로 메아리 풀며/ 글썽이는 물빛들이/ (포고 죄 점령하고)/ 이 가을 다 떠난 자리/ 격자(格子) 풍경 예비한다.” 는 진술 가운데 역시 ( )를 한 부분이 엇시조 형태를 취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엇시조를 창작할 경우 3장 6구 가운데 (대개 중장이 길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어느 한 장의 1구가 2~3음보 정도 길어지더라도, 그 길어짐의 미학이 그냥 막연하게 자수만 늘이는 식이 아니라 시조 전체 구성상 어쩔 수 없이 들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성과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설시조의 형태


사설시조는 초․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8음보 이상 길어지거나 각 장이 모두 길어진 산문시(散文詩)형식의 시조이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기본 음률과 산문율(散文律)이 혼용된 산문체의 시조 형태를 말한다. 시조문학의 변화․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평시조는 사대부(士大夫)문학이었고 사설시조는 서민(庶民)문학이었다. 달리 말하면 평시조는 양반계층의 문학이었고 사설시조는 서민대중의 문학이었다.

 

사설시조는 사대부 시조의 관념성과 대립되는 사실적 요소에 의한 현실인식의 시였고, 그것은 다음에 올 자유시의 기초를 닦게 해준 기폭제였다고 볼 수 있다.

박철희 서강대 교수는 사설시조가 발전하여 현대 자유시의 모태를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은 시 형태였다고 풀이한 바 있다. 사설시조는 그 형태 때문에 더욱 독특함을 보이는 시조다.


▶사설시조는 초․중․ 종장에 두 구절 이상 또는 종장 초구라도 평시조의 그것보다 몇 자 이상 되었다. 그러나 초 종장이 너무 길어서는 안된다.

                                            -이병기.「국문학개론(國文學槪論)」p.117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여 초-중- 종장 3장 중에서 어느 장이 임의로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초장은 거의 길어지는 법이 없고 중장이나 종장 중에 어느 것이라도 마음대로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대개는 중장이 길어지는 수가 많다.

                                             -조윤제「국문학개론(國文學槪論)」p.112」


▶초․중장이 다 제한 없이 길고 종장도 어느 정도 길어진 시조이다.

                                            -고정옥「국문학요강(國文學要綱)」 p.396」

                         -김사엽「이조시대(李朝時代)의 가요(歌謠)연구(硏究)」 p.254」


▶사설시조는 초-중-종 3장의 구법(句法)이나 자수가 평시조와 같은 제한이 없고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어조(語調)도 ※순산문체로 된 것이다.

                               -김종식「시조개론(時調槪論)과 시작법(詩作法)」 p.89」

※순산문체 : 아무탈 없는 문체


▶초-중-종장이 다 정형시에서 음수율의 제한을 받지 않고 길게 길어진 작품을 사설시조라 하며…                      -김기동「국문학개론(國文學槪論)」 p. 115



▶단시조(短時調)의 규칙에서 어느 두 구 이상이 각각 그 자수가 10자 이상으로 벗어난 시조를 말한다. 이 파격구(破格句)는 대개가 중장(제2행)의 1. 2구다. 물론 종장도 초장도 벗어나고 3장이 각각 다 벗어나는 수도 있다.

                                                -이태극「시조개론(時調槪論)」p.69


▶사설시조는 시조 3장 중에서 초-종장은 대체로 엇시조의 중장의 자수와 일치하고 중장은 그 자수가 제한없이 길어진 시조다.

                                         -서원섭「시조문학연구(時調文學硏究)」p.32


▶종장의 제1구를 제외한…두 구절 이상이 길어진 것을 장형시조(長型時調) 또는 사설시조라고 한다.                         -정병욱 편저「시조문학사전(時調文學事典)」

 

▶엇시조는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만 있는 시조라고 규정할 수 있고,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두 군데 이상 있거나 2음보가 네 번 중첩되어 8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 이상 있는 시조를 사설시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조동일「한국시가의 전통과 율격」


사설시조 약 30수를 분석한 결과 초․종장이 단독으로 길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며, 중장만이 단독으로 길어진(3구 이상)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 결과 사설시조는 초․중․종장의 3장시로서 종장 첫 구 3자의 고정을 원칙으로, 어느 한 장이 3구 이상 길어지거나 두 장이 3구 이상, 혹은 각 장이 모두 길어진 자유로운 구수율의 산문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예문


사람이 몇 생이나 다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水簾)진주담(眞珠潭) 만폭동 다 그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 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담(蓮珠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 번 굴러 보느냐.

                                                    -조운<구룡폭포>


예문


때린다, 부 부순다, 세상 한 켠 무너버린다.


바람도 바다에 들면 울음 우는 짐승 되나, 검푸른 물 갈기 세워 포효하는 짐승이 되나, 뜬금없이 밀어딕친 집채만한 파도, 해안선 물들였던 지난 철 허장성세 재갈매기 날갯짓 소리 환청으로 들려오고, 우리 더불어 한바다 이루자던 동해 바다 문무대왕 수중릉 대왕암이 하는 말도, 몇 문단 밑줄 친 언어 다 거품 되어 스러진다.

미완성 내 그림자 물거품 되어 쓰러진다, 난파의 세간살이 부러진 창검처럼 이에 떠밀리는 먹빛 아찔한 이 하루, 천길 궁릉같은 푸른 물 속 한 걸음 헛다딘 벼랑길 이 하루가 멀고 험한 파랑에 싸여 자맥질 한다, 자맥질 한다.


저 바다 들끓는 풍랑 어느 결에 잠재울까.

                                              -윤금초 <해일>


예문


백사발 깨진 거나 투가리 조각도 좋다.


떡고물처럼 철가루 듸덮인 땅에 앉아 상대편 사금파리를 맞히면 그 영역까지 내 것이 되는 기쁨, 튕기는 집계손의 힘과 방향을 정확히 고누는 기술만이 땅 따먹는 우리들의 재주다. 순전히 아버지들이 하는 투기나 권력남용으로 얻어내는 부정이 아니다. 꿈 많은 국민학교 운동장을 따먹다 잃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고…땅보다 붉은 땅거미 기어들어 우리의 영역에서 승부를 가리면 툴툴 털고 일어나


이긴 자 교장 선생님보다 더 큰 웃음 웃는다.

                                                -이요섭 <철산동 땅 따먹기>


예문


멀어져간 잎새들은 어디로 가 무엇이 되었는가.


가슴에 못이 된 비밀도 지고 나면 잊혀 지나, 잊혀지나 내가 버린 말들은 거미줄에 얽히운다. 잠자리 나비처럼 젖은 눈에 걸리운다. 약속한다고, 영원이라고, 진실이라고 몸 부수며 멀어져간 잎새들은 어디로 가 무엇이 되었는가, 하늘은 머리 위에 내려와 되풀이 묻지 말라, 묻지 말라 하느니, 2차선 길섶으로 줄지어 핀 벌개미취, 늦벌 두엇 데려와 빗질한 그물바람 가만 풀어놓느니.


농부는 늙은 소걸음, 놀빛 길을 따라가네.

                                                     -홍성란 <그물바람 지나는 길>


예문


앞산도, 저 바다도 몸져 누운 국가부도 위기.


03 대통령IMF기사를 읽다가 임프! 임프가 뭐꼬? 묻는다. 경제수석 더듬거리며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것입니다. 03 대통령. 누고? 누가 국제전화를 많이 써 나라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맹글었노? 도대체 이번 사태까지 오게 된 원인이 뭐꼬? 뭐꼬? 네네네 네, 여러가지 있습니다만 종금사 부실 경영이… , 03 대통령 탁자를 내리치며 도대체 종금사가 어데 있는 절이고?

이튿날 대중 대통령, 긴 한숨 내쉬며 언제 디카프리오 (빚 갚으리오).

                                           -윤금초 <인터넷 유머 / -IMF , 정축 국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전 사설시조의 본령인 해학성, 현실비판, 상소리(요설), 풍자, 에로티시즘, 유머 등은 오늘의 감각에 걸맞게 개발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서사적 요소와 해학성 및 풍자정신을 가미한 사설시조를 활발하게 창작하게 되면 우리 시조문학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따라서 사설시조는 1) 서사구조, 2) 복선(伏線) :(나중에 전개될 사건을 미리 넌지시 귀뜀해 주는 장치), 3) 극적 요소(드라마), 4) 걸쭉한 입담, 5) 웅장한 스케일, 6) 판소리의 아니리조(극적 줄거리를 엮어내는 사설), 7) 갈등 구조, 8)풍자정신, 9) 쉬어가는 대목(휴지休止), 10) 종장의 대반전(大反轉)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사설시조의 매력은 산문시를 뛰어넘는 문장의 긴장감 유지와, 압축과 생략의 미학을 추구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양장시조의 형태


시조의 형식 가운데 개화기에 이르러 출현한 시형으로서 초․중장 가운데 한 장이 생략된 형식이다. 양장시조, 혹은 2장시조라고도 하는 이 시형은 말 그대로 두 장으로 이루어진 형태의 시조를 말한다. 우리 시가 문학은 개화기에 이르러 많은 변형이 나타났으며 양장시조도 단시조의 축약적 변형으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문


산도 의구하고 물도 의구하건만

엇지타 우리 강토는 이 디경이 되얏노

                                          -경세목탁(警世木鐸)


예문


섬진강 놀러온 돌 은빛 비늘 반짝이고

드레스 입은 물고기 시리도록 푸르다

                                         -윤금초 <빗살무늬 바람> 첫째 수


예문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 기쁜 옛 얘기 차곡차곡 접어둔 곳.


추억의 빗장 열면 눈앞에 떠오르는

수수한 반다지 표정, 삶의 숨결 스며 있네

                                         -김혜선 <반다지>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김혜선의 <반다지>는 2수로 구성되어 있는 양장시조다. ‘아버지 기쁜 옛 얘기 접어둔 곳’이나 ‘수수한 반다지 표정’에서 한국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문


그리움 꼬옥 묶은 열 손가락 풀어헤치니

단심(丹心)이 새겨져 있네 달쪽 같은 손톱에….

                                          -이효정 <봉선화 물들이기>

예문

 

도시락 챙겨 주며 감싸쥐던 그날 그 온기

까슬한 손잔등 위에 일렁이는 잔물결


하교길 마중 나와 웃음 심던 눈매 가엔

세월이 쟁기질하여 고랑 지어 놓았네.

                                     -우순조 <어머니>


우순조의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감동의 언어로 다가올 수 있는 사모곡이다. 특히 ‘세월이 쟁기질하여 고랑 지어 놓았네’라고 토로한 대목이 인상적인 양장시조이다.


♧옴니버스시조의 형태   


‘옴니버스’ 시조는 한 편의 연작시조(連作時調)속에 앞에서 말한 평시조․사설시조․엇시조․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혼합(混合) 연형시조(連形時調) 형태를 말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전제 아래 1970년대 이후 시도된 새로운 시조 형태이다.

윤금초의 장편시조 <청맹과니 노래>가 그 시발점이며, 근래 패기에 찬 젊은 시인들이 다투어 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현대 사회의 복잡다기(複雜多岐)한 문명의 흐름을 포착하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의 시대에 적응해 가는 인간들의 사고와 심리의 중층구조(中層構造)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 영역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286시대, 386시대는 이미 과거 역사로 기록되고 있으므로, 이제 ‘새로운 세기에 부응한 새로운 표현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시나 소설을 구획 짓는 장르 개념이 차츰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장편서사시조 같은 스케일이 웅장하고 이야기가 담긴 시조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주(變奏)’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옴니버스시조’를 활발하게 창작, 시조문학의 지평을 한껏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근자에 현대 시조의 ‘누벨 바그 운동(새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몇몇 중진파 신인들이 ‘옴니버스시조’를 대담하게 시도,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예문


(1)

돌꽃 피는 것 보러 돌곶이 마을 갔었다.


길은 굽이돌면 또 한 굽이 숨어들고 산은 올라서면 또 첩첩 산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 돌아서려 했을 때 눈 앞에 나타난 가랑잎 같은 마을들, 무엇이 이 먼 곳까지 사람들을 불러냈나, 살며시 내려가 보니 무덤처럼 고요했다. 가끔 바람이 옥수수 붉은 수염을 흔들 뿐,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람의 자취 묘현했다.


여러 날 헤매이다가 텅빈 집처럼 허물어졌다.

 

(2)

화르르 타오르는 내 몸엔 열꽃이 돋고

세상은 천길 쑥구렁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누군가 눈 좀 뜨라고 내 이미를 짚었다.


나 그 서늘함에 화들짝 깨어났다

눈 뜬 돌들이 지천으로 가득했다

온전히 제 안을 향한 환한 꽃밭이었다.

                                   -송광룡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


그리움도 한 시름도 발묵(潑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살의(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하백(河伯)의 딸 버들꽃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흰 적소(謫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뿐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아, 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아왕 무리들 와와와 뒤쫓아오고 막다른 벼랑에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채찍 활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 천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 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깍지 끼고 어별 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듯 건너 졸본천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신도(四神圖) 포치하는, 광활한 북만(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윤금초 <주몽의 하늘>


예문


 

(1)

코카콜라 두껑이 버려진 잔디밭에


푸르름은 그들의 작업을 봄이라 부르며 땅 깊이 산발한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있었다.

그들의 생명 위로 쓰레기가 버려져도 푸르름은 열심히 땅을 일구고 뿌리내릴 양분을 채워주었다. 돋아나는 새순에 풀벌레 스며들면서 푸르름의 목소리는 한 뼘이나 커졌지만 빌딩숲을 이고 있는 숨가뿐 흙에서는 아늑한 숲의 향내가 새나올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푸르름의 어깨 위로 낯설고 고운 아이의 손길이 내려와 버려진 장난감 같은 코카콜라 뚜껑을, 진달래 꽃잎에 미끄러진 햇빛을 줍고 있었다.


겨울의 빨간 귓볼에 피가 돌고 있었다.


(2)

끊임없이 표정 바꾸는 자화성을 그리며

봄아, 너는 투명한 손이다 아이처럼

흩어진 햇빛 조각을 이파리에 입히는

                                    -현상언 <봄. 유년. 코카콜라 뚜껑>


예문


뚝뚝 목이 지는 하엄사 동백을 만나

일자리 작파하고 유랑하는 친구의 말씀

지리산 반야봉 너머 환한 세상 있것다


천왕봉 상상봉에 매어놓은 <바람집 한 채>


바람을 부르면 슬픈 가락이 되고 구름 몰려오면 벼락치는 노한 소나기로 우르릉 쾅쾅, 섬진강 은어떼 뛰듯 철없이 튀어올라 평사리 무논바닥 잡풀 자라듯 그렇게 한 시절 살아보려 했는데 절뚝이며 절뚝이며 술잔 비우네


동백은 생살로 목이 뒹굴고 어둠은 말없는 산을 감춘다.

                                               -김영재 <화엄동백>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송광룡의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은 사설시조 한 수와 평시조 두 수로 마무리한 옴니버스시조다.

윤금초의 ,주몽의 하늘>은 평시조 + 사설시조 + 사설시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현상언의 <봄. 유년. 커카콜라 뚜껑>은 사설시조 한 수와 평시조 한 수, 김영재의 <화엄동백>은 평시조 한 수와 사설시조 한 수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옴니버스시조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걸맞는 ‘그릇’인 것이다. 평시조의 단조롭고 틀에 박힌 가락을 한 단계 뛰어 넘어 스케일이 웅장한 서사(敍事)구조(構造)의 시조를 시도할 수 있는 형식 장치인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평시조는, 대중가요의 트로트나 뽕짝 리듬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사설시조나 옴니버스시조는, 랩이나 힙합조 리듬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조의 형태


동시조는 평시조 형태 속에 동심(童心)을 담아내는 양식이다.


솟는 해가 풀어놓은

싱그런 황금 물감을


발가락에 듬뿍 찍어

붓질하는 갈매기들


나날이

너럭바위에다 

새 아침을 그린다.


글자로 수놓은 듯한

곰실대는 발자국들,


갈매기 주인인

이 바다, 이 화폭에


오늘은

가창오리 한 떼가

덧칠을 하고 간다

                         -박경용 <발자국-2>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지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감고도 ?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정완영 <엄마 목소리>


 

작품 해석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李鎬雨)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 시구 풀이


▶ 치고지고 : '치고 싶어라'를 음수율을 고려하여 운치 있게 표현한 말

▶뉘 집 : 누구의 집. 종장 첫 구(3음절)의 음수율을 지키기 위한 변형

▶ 초당(草堂) : 초가집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 화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봄을 늘 살구꽃과 함께 맞았기에, 살구꽃이 핀 곳이면 어디든 고향 같은 정겨움을 느끼므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 낯설지 않고 고향의 벗들인 양 친근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고향 마을의 아름다운 정경을 향토적인 소재인 '꽃 그늘'과 '달'을 통해 서정적으로 표현하였다. '바람 없는 밤'은 고즈넉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 분위기를 이루어 종장에서와 같은 한가와 여유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 아름다운 자연과 도타운 인정 속에서 나그네가 조급하지 않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여유를 가지게 됨을 읊었다.


※ 노트


지은이 : 이호우(李鎬雨, 1912-1970) 시조 시인. 경북 청도 출생으로, 제한된 형식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음. 시조집으로 <이호우 시조집> 등이 있다.


갈래 : 현대시조. 정형시이며.  율격 : 3(4).4조. 4음보. 3장 6구의 외형률을 갖추었으며,

시의 구성을 보면 첫째 수는  아름다운 고향 마을에 대한 친근감을, 둘째 수는 고향의 정겨운 분위기와 '봄밤'의 정취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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