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고운말

언어의 통시적 연구 : -았었-(O) / -았았-(X)

역려과객 2013. 9. 25. 16:41

언어를 연구하는 방법에는 크게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 방법과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 방법이 있다. 공시적 방법은 한 시기의 언어를 정지한 것으로 보고 그 내부적인 관계에 초점을 두고 고찰하는 방법이고, 통시적 방법은 어느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변화하는 언어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 방법이다.

  그런데 어떤 언어 형태는 통시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말에서 '-었-'은 과거 사건임을 표시해 주는 과거 시제 형태소이다. 공시적 관점에서 '-었-'은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형태이지만 통시적 관점으로 보면 이 형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 이전의 문헌에서는 '-었-'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었-'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었-'은 '-어 잇-('있다'의 고형)'이 통합하여 하나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1) ㄱ. 철수가 서울에 가 있다.

      ㄴ. 철수가 서울에 갔다.

 

(1ㄱ)은 현재 철수가 서울에 있음을 나타내는 "결과 상태"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1ㄴ)은 과거에 철수가 서울에 간 사건만을 표현하고 현재 철수가 서울에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중점을 두지 않는다. 과거에는 (1ㄱ)의 표현만 나타나고 (1ㄴ)은 19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나게 된다. 즉, 19세기 이전에는 (1ㄱ)과 같은 표현이 과거 사건의 의미와 현재 결과 상태의 의미를 모두 나타냈다면 현대에 와서는 이 둘의 기능이 각각 '-어 있-'과 '-었-'에 의해 분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는 통시적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국어에는 이 과거 시제 형태가 중복된 '-았었-'과 '-었었-'의 쓰임이 있다. 앞의 '-았-'과 '-었-'은 선행어의 모음에 따라 양성모음일 때에는 '-았-'이, 음성 모음일 때에는 '-었-'이 실현된다. 그런데 '-았았-'은 허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2) ㄱ. 철수가 서울에 갔었다.(O)

      ㄴ. 철수가 서울에 갔았다.(X)

 

  모음조화의 법칙에 따르자면 언뜻 (2ㄴ)이 맞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2ㄱ)이 맞는 표현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역시 통시적 방법에 의해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과거 시제 형태는 '-아/어 잇-'이 발전하여 형성된 것이다. 이때 앞의 연결어미 '-아'와 '-어'는 선행어의 모음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하여 '-았-'과 '-었-'으로 발전한 것이다.

  '-았았-'이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면 알 수 있다. 선행의 '-았-'은 '-아 잇-'의 변화를 거친 것인데 이때 '-잇'은 'ㅣ' 모음으로 끝나고 있다. 국어의 특성상 'ㅣ' 모음 다음에는 양성모음이 오지 않고 음성모음이 실현된다. 따라서 '-아 잇-'+'-어 잇-'만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았었-'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공시적인 설명만으로는 불가능한 언어 현상은 통시적인 방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