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고운말

우리말_ "승낙하도록 허락해주세요"

역려과객 2014. 8. 16. 16:52

우리말에는 한자말이 아예 순우리말 식으로 바뀐 것도 있지만,

어떤 한자말은 상황에 따라 표기가 달라지는 것도 있어.

한자말이 두 가지 이상의 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야.

정말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경우지.

 

우선 ‘怒’가 그래.

‘怒’는 ‘성낼 노’자야. 분노(憤怒) 격노(激怒) 등이 怒자의 원래 쓰임이지.

그런데 이 怒자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뜻하는 喜怒哀樂에서는 ‘희로애락’으로,

한글 적기가 달라져 버려.

 

이는 활음조(滑音調)에 의한 것인데,

활음조란 말 그대로 ‘듣기 좋은 음질’을 뜻해. 즉 ‘희노애락’보다는 ‘희로애락’이

말하기 쉽고 듣기에도 좋아 그렇게 적도록 한 거야.

 

“크게 성내는 것”을 일컫는 大怒도 한글로 적을 때는 ‘대노’가 아니라 ‘대로’로 써야 해.

 

이즈음에서 뭔가 불현듯 떠오르는 게 없어?

그래.

‘怒’는 받침이 없는 말 뒤에서는 ‘로’로 적고, 받침이 있는 말 뒤에서는 ‘노’로 적는 거야.

알았지?

 

諾도 怒와 마찬가지야. 諾은 ‘허락할 낙’자야.

하지만 이 한자 역시 받침이 없는 말 뒤에서는 ‘락’으로, 한글 적기가 달라져.

허락(許諾)과 수락(受諾)이 그렇게 쓰는 예야.

 

이 허락이나 수락 등 때문에 應諾과 承諾을 ‘응락’과 ‘승락’으로 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받침이 있는 말 뒤에서는 원래 소리대로 ‘응낙’과 ‘승낙’이라고 써야 해.

우리말 참 어렵지?

그러나 받침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달라지는 것이니까,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구분해 쓸 수 있을 거야.

 

<엄민용기자 (건방진 우리말 달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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