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성풍속
1> 남근 숭배
남정네나 여인네의 성기와 모양새가 닮은 자연적 상징물 또는 인위적 상징물에 바램을 담고 믿는 풍속신앙이다.
이러한 믿음은 나무나 돌을 남녀의 성기와 비슷하게 다듬어 만들어서 봉안하거나 암벽이나 암석에
남녀의 성기나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조각하고 새기어 신체로 삼는 신앙이다.
성기신앙은 기자. 풍어. 풍농 등 풍요로운 생산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행운을 빌기도 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그 질펀하고 끈끈한 풍속을 엿보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좆바위와 공알바위
예전에 여자가 아들을 낮지 못하면 소박을 맞았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남근과 여근이 수두룩했다.
남근석과 여근석을 부르는 이름도 가지각색이었다.
여근과 남근, 여근암과 남근암, 성기바위, 처녀바위, 미륵바위, 옥문바위 등 비교적 고상한 이름도 있었고,
좆바위, 씹바위, 공알바위, 씹섬바위, 암탑, 수탑, 자지방구, 소좆바위, 뼈죽바위와 같은 노골적이고 질펀한 표현도 있었다.
마을의 입구에 멀쩡하게 좆바위를 세워 놓았는데 숫기 없는 처녀들은 얼굴을 붉히었고,
총각 녀석들이며 동네 아낙들은 신주 모시듯 하며 즐거워했다.
허나 뭐랄 사람도 없었고 음탕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정월이면 좆바위에 새끼를 감아 성적제의를 올리며 풍년과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기도 했다
남근 숭배 사상은 원래 남방계의 풍습인데 일본을 거쳐서 동해안 일대로 들어 왔다.
이러한 풍습은 동해안의 몇 몇 지역에서 수신제 또는 해신제로 행해지고 있다.
동해바다를 향하여 향나무로 깍아진 남성의 성기가 출렁이는 물결과 바닷바람을
배경으로 꺼떡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남근숭배 사상이 나타나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옛날 옛적에 한 어부의 어엿쁘고 착한 딸이 살고 있었다.
나이가 차 시집 갈 때가 된 그 처녀는 씩씩하고 건장한 배필을 원하였다.
처녀는 소망하던 대로 건장하고 미남인도사공 청년과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청년은 풍랑을 만나 조난을 당하게 된다.
처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청년이 풍랑과 싸워 이기고 꼭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매일을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청년이 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지 않자 처녀는 바다에 몸을 던지었다.
그 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생기고 바다의 물고기도 씨가 마르고 마을의 어부들도 조난을 당하게 된다.
또한 바다에 나간 젊은이들도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의 사람들은 시집도 못가고 바다에 빠진 처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나무로 남성의 성기모양을 깍아 만든 남근을 만들고 정성스레 칠을 하여 바치고
매월 단오 때 마다치성을 드리었다. 그 뒤에 흉어와 조난이 없어졌다 한다.
이렇듯 남근숭배의 풍속 또한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네의 삶이 베어져 있다
2> 여근 숭배
남근숭배사상이 만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맞붙는 여근이 무시 되지는 않았다.
남근이 우뚝하니 위용을 과시하면 그에 걸맞는 여근 또한 질펀한 모습으로 짝을 이루며 견주고 있었다.
자연스레 생긴 바위의 모양새가 마치 여성의 성기처럼 옴푹 패이고 드러난 모습은 영락없이 여자의 음부 그대로이다.
여근바위는 여자의 갈라진 그곳과 같다고 해서 농바우, 두덩바위, 보지바위라고도 불려진다.
건넛마을에 농바우가 바라다 보이면 동네처녀가 바람이 난다고 했다.
또한 두덩바위를 작대기로 쑤시면 남녀의 성행위를 뜻하였다. 그래서 마을 처녀들의 평안을 기원 하며 제를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마을에 여근바위가 있으면 음기가 강하다 여기고 남근바위를 세웠다고 한다.
3> 나무시집보내기
열매가 열리는 과수나무의 Y자로 갈라진 가랑이 사이에 돌을 박아 끼우는 풍습이다.
물이 올라 싱싱하고 어린 과수나무를 마치 가랑이를 벌리고 누운 처녀의 성기로 보고 시집을 보내는 것인데,
이때 박아 넣는 묵직한 돌은 힘이 좋고 우뚝 선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이는 어린 과수나무의 가지가낮게 양쪽으로 갈라져야 열매가 많이 열린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선인들의 지혜가
음양의 이치에 결합하여 성풍속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바램인 것이다.
나무시집 보내기는 주로 정월 초사흘 날복숭아 ,대추, 살구, 밤나무에 치뤄 졌다.
자손의 번창은 남녀의 혼인에서 비롯되듯이 과수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맺기 위해선
같은 뜻으로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믿었던, 웃음을 머금게 하는 아주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풍속이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떨어져 있어 항시 서로 애만 태우고 있는 은행나무에게도 이러한 인간적 배려를 하였다.
은행나무 처녀인 암나무에 여성의 성기를 닮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꼭 들어맞는 수나무의 토막을 끼워 주었다
4> 과부 구원책
열녀문이라는 것이 있다.
과부가 개가하지 않고 늙어 죽으면 임금이 내리는 표상이다.
일부종사(一夫從事)가 지덕(至德)이었던 시절의 일이지만 그 시절에도 그리 흔치는 않았던 것이다.
조선조의 여인네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라 하여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여서는 남편을 따르며 늙어서는 자식을 따른다는 계율에 얽매여 있었다.
옛날에는 과부가 되면 개가나 재혼이 그렇게 쉽지 않았음을 간단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과부가 정을 통한다던지 외부의 남성과 교제가 있다던지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처지의 과부를 구원하는 단 한 가지 책략이 있었다.
그것은 소위'보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회에서 은밀히 허용하고 있던 일종의 필요악이었다고 하겠다.
과부를 사랑하는 어떤 남성이 야음(夜陰)을 이용해 그 과부를 보자기에 싸서 훔쳐가는 풍습이었다.
그 남자로서는 겉으로 드러나게 과부를 데려 올 수도 없고,
한편으로는 과부를 두고 있는 그 집에서도 처치곤란의 독처하는 며느리를 남모르게
또는 명분을 잃지 않고 새 삶을 허락하는 방식으로서 활용되었던 음성적인 제도였다.
유일한 과부 구원책이었다 할 것이다.
과부로서도 수절을 원하지 않는 여인으로서는 내심 이 보쌈을 원하여 은밀한 눈짓을 담 너머로 보내지나 않았을까
5> 풀무질
풀무질은 곧잘 남녀의 성행위에 비유된다.
그 것은 옛 풀무가 길쭉한 구멍을 통하여 막대 모양의 것이 들고나는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대장장이 부부가 있었다.
그 대장장이는 풀무질 뿐 만이 아니라 부인 사랑도 참 잘하였다.
그래서 그 부인은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풀무질 잘하는 대장장이 남편이라 먹고 살기에도 별로 부족한 점이 없었고
자기의 속도 궁하지 않게 해 주니 거기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심지어는 점심을 먹으러 잠깐 집에 들어 온 적에도 부인을 자빠뜨려 놓고 그 짓을 열심히 하는 그였다.
어느 날도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른 그가 부인을 밑에 깔고 열심히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글공부하러 갔다가 빠뜨린 것이 있어 집에 들어오던 그의 아들이
방안의 풍경이 심상치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가지도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싸리문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길기도 길게 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참! 그 양반들 세긴 되게 세네!" 하고 혼잣말을 내 뱉고 있었다.
한 참을 그러고 앉아 있는데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쪼그려 앉아 있는 친구의 아들을 발견하고는 "너는 예서 뭐하고 있느냐?" 며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장장이 부부는 사랑의 행위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들이 그 어른을 가로 막으며 "아니요, 아직은 안 됩니다." 했다.
"뭣이라? 아직은 안 된다?" 라고 하며 "그건 무슨 소린고?" 했다.
아들이 뭐라 대답할 바를 몰라 했다. 그는 엉겁결에 " 우리 아버지 지금 풀무질하고 계셔요!" 했다.
"뭣이 풀무질이라고? 예끼 요놈 대장간도 아닌데 무슨!" 하며 친구의 아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곧 도로 나오며 껄껄 웃으며 하는 말이
"그 사람 참! 풀무질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야(冶)질도 참 잘하네!" 하는 것이었다.
(야(冶) - 불릴 야, 풀무질을 말함
풀무질(2)
우리의 옛 어머니들은 매우 성에 대하여 해학적이었다.
어린 아들을 재우며 부르던 그녀들의 노래 소리에 그런 모습들이 담겨 있다.
노래 소리를 보자!
"부랄 부랄 부랄 딱닥
어디 쇠인가 재령 쇠일세~
어디 숯인가 메네미 숯이라네~
푸카 푸카
이야! 잘도 붙는다!"
여기서 제 1구는 남자의 정낭 두 개가 서로 부딪는 모습을 은유한 것이다.
다음은 쇠와 숯이다. 쇠는 남성이고 숯은 여성이다.
이 쇠와 숯이 풀무 안에서 엉겨 한 쪽은 타고 또 한 쪽은 녹아내리는 것이다.
남녀의 성희에 대한 참으로 놀라운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학이 가득한 민요가 아닐 수 없다.
제 4구인 푸카 푸카는 풀무질하는 소리이다.
옛날 풀무는 기다란 막대기 같은 것이 작은 구멍을 들락날락하면서 바람을 불어 넣어 노의 불길을 세차게 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도 그 움직이는 모습이 남녀의 성행위를 연상할 수 있다.
쇠와 숯이 풀무질을 통해서 서로 화합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끝의 구는 절로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크라이막스이자 결구인 셈이다.
"이야! 잘도 붙는다."
이 말은 아가에게 잠이 잘도 든다(붙는다)는 뜻인데. 남녀가 서로 너무나도 잘 엉겨 붙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제 1구가 빠진다면 이 노래는 단순히 풀무질의 노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부랄 부랄 부랄 딱닥" 하고 의성어를 통하여
또한 역시 은유적으로 남성의 핵심을 상징함으로써 성적인 해학이 가득한 노래가 된 것이다.
# 재령과 메네미는 지명으로 좋은 쇠와 참 숯이 나던 곳이다
6> 조선시대 성교육
조선시대 성교육을 보자.
임신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임신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에서 오늘의 성교육과 다르다.
여자들은 주로 어머니로부터, 남자는 서당에서 논어 공부를 마친 다음'보정(保精)' 이라는 성교육 과목을 배운다.
성교육 내용에는 성교 횟수도 포함되는데 중국 도가서인'포박자 (抱朴子)'의 예를 들어
20대는 3~4일에 한번, 30대는 8~10일에 한번 정도가 적당 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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