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은 미시간대학교 건축과에서 항상 톱(top)을 달렸고, 둘째 아들은 뉴욕대 비즈니스 스쿨과 줄리아드를 동시에 다니며 <공부기술> 저자로도 이름을 날릴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그녀가 두 아들을 이렇게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운 비결은 ‘아이들과 어릴 때부터 대화를 많이, 그리고 잘 했다’는 것이다.
“부모 자식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죠. 그러나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서로에게 상처받기가 더 쉬워요. 부모 자식 간에 주고받는 상처는 주로 대화 때문에 발생하는데 저는 어느 집이건 자녀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가족 구성상 부모는 강자이고 자녀는 약자인데 부모가 포용하지 못하는 한 자녀가 먼저 다가오기는 어렵다. 또한 급격한 사회 변화로 세대 간 의식 차이는 더욱 심화되었는데 부모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식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부모는 자녀를 부모 세대의 눈으로 보고, 자녀는 부모를 자녀 세대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아직 사고의 폭이 좁고 경험이 부족한 자녀들이 부모처럼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부모가 먼저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해요. 부모와 대화가 잘 되는 아이들은 남들과도 대화를 잘 한답니다.”
자녀와 눈높이를 맞추어 대화를 하고, 부모가 거부감 없이 자녀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녀와 대화가 통하는 부모의 말하기 전략 12가지’에 대해 설명했다.
자식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면 자식이 부모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부모가 많다. 자식이 부모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친구에게나 사용할 법한 반말과 농담을 해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뛰어놀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데도 제지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친구처럼 지낸다 하더라도 중요한 순간에는 매우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이 행여 잘못될까 봐 늘 조바심치며 잠시라도 소홀히 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한다. 그 때문에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을 한다. 부모는 자식 걱정이 앞서 자식의 표정이 조금만 달라져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니?” 하며 이유를 캐내려고 귀찮게 한다. 그저 “고민 있으면 말해라. 함께 해결하게”라는 말만 던져두고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이 자식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평소에 자식의 고민을 포용해주었다면 자식 스스로 정말로 부모의 충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부모에게 자문을 요청해올 것이다.
자식을 소유물처럼 여기지 말고 독립적인 한 인격체로 대하라. 사실 부모와 자식은 별개의 존재다. 타고난 능력과 살아가는 환경도 전혀 다르다. 하고 싶은 일도, 인생의 목표도 같지 않다. 따라서 부모는 자식이 비록 내 몸에서 나와 내 자식이 되었지만 엄연히 다른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식의 타고난 기질과 능력을 무시한 채 자식이 감당할 수 없는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을 무조건 지키라고 우기면 자식은 부모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필요할 것이라고 여겨 알아서 챙기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를 둔 주부 A씨는 어느 날 아들이 짜증을 내며 자기를 밀쳐버려 큰 충격을 받았다. 아들에게만큼은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녀는 아들이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 하며 자기만 쫓아다니는 엄마를 피하기 시작했다며 서러워했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만 해바라기 하면 자식이 즐거워하기는커녕 부담을 느낀다.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 성인의 말도 있지 않은가.
부모는 자식들도 나름대로 의견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래서 자식들 앞에서 함부로 배우자에 대한 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부부끼리는 사이가 나빠도 자식을 위해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고 자식들 앞에서는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편이나 아내의 양육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식들 앞에서는 배우자의 입장을 세워주고 자식과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부부간의 불화 속에서도 자식들을 바르게 기를 수 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의 말투와 태도, 행동거지를 그대로 따라 한다. 부모가 부정적으로 말하면 자식도 부정적으로 말하고 부모가 긍정적으로 말하면 자식도 긍정적으로 말한다. 말은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말하면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며 긍정적인 사고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정말로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긍정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식의 인생을 좌우한다.
자식 때문에 희생한다는 사실을 생색낼 만큼 인색한 부모라면 차라리 자식을 위한 희생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부모가 지나치게 잘해주면서 자신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으려고 그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 자신이 어렸을 때 못 해본 것을 자신들에게 대신 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그 보상 심리 때문에 자녀가 갖고 있는 개성이나 관심, 좋아하는 일에 대한 배려에 인색해진다. 그런 경우 부모 스스로 어떤 높은 수준을 만들어놓고 자녀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부모의 희생을 내세워 죄책감을 심어주기 쉽다. 그럴 때 심성이 나약한 아이들은 ‘나는 뭐든지 제대로 못하는 사람, 부족한 사람, 절대로 만족할 만한 삶을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비하에 빠져 정상적인 가치관을 갖기 어렵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기를 때 어떤 사람으로 기르겠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지 않고 그저 남들이 좋다면 쫓아다니며 갈팡질팡한다. 그래서 막연하게 공부만 잘하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기분에 따라 같은 성적을 받아와도 어떤 날은 “성적이 무슨 상관이냐?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말하고 어떤 날은 “그래 가지고 어떻게 대학 가려고 그래?”라며 소리를 지른다. 부모가 변덕이 심하면 자식들은 사람 눈치 보는 것만 발달하기 쉽다. 부모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자녀의 가치관에 혼란을 일으켜 선과 악의 구분도 불분명하게 만든다. 일관성 없는 부모는 자기 기분이 나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함부로 대해 자녀의 성격을 거칠게 만들기도 한다.
자녀 양육에 대한 뚜렷한 원칙을 갖지 못한 부모는 양육에 대한 책임감도 희박해 자기가 귀찮으면 자녀를 쉽게 방치할 수도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같은 손가락을 깨물어도 유난히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다. 자식 중에서도 기질적으로 유난히 자신을 닮았거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에게 정이 더 가게 마련이다. 부모가 계속해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거나 눈에 띄는 편애를 하면 그 아이는 자란 후 행복한 인생을 보내기 어렵다. 편애로 상처받으며 자란 아이는 나보다 나은 사람은 인정하지 못하고 미워하거나 이기려고 집착한다. 심한 경우에는 자기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잘난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편애로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열등감과 적대감,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대상이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기 때문에 왜곡된 성격을 갖기 쉽다. 그만큼 편애는 좋지 않다.
부모 자식 간에는 세대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달라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부모는 무조건 자식과 대화를 하면 잘 통할 거라고 착각한다. 부모가 자식과 대화를 나누며 자식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래서 반론이라도 펴려고 하면 “원래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자식의 입을 봉해버리기 일쑤다. 자식을 정말로 잘 기르고 싶다면 자식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이유를 당당하게 설명할 수만 있다면 받아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식은 부모인 당신에게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받으려고 더욱 분발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어떤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부모는 드문 것 같다. 무조건 퍼주는 사랑은 부모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한 부모는 절제되지 못한 부모의 자식 사랑은 오히려 자식에게 독이 된다는 것을 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지나치면 자식을 부모 마음대로 재단해 자식의 잠재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며, 타인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게 한다. 부모의 절제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자식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만 집에서 과잉 사랑을 받으며 멋대로 자란 자식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 환영받지 못한다.
자식의 벤치마킹 제1 대상은 부모다. 자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모방한다. 부모는 그들이 최초에 만난 어른이며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식은 부모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주시한다. 그래서 부모의 행동과 말이 일치하지 않으면 금세 실망한다. 그러니 자식에게 정말로 가르치고 싶은 일은 말보다 실천부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