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고운말

숟가락과 젓가락의 차이

역려과객 2016. 4. 29. 14:48

정호성(鄭虎聲) 국립국어원

 

  ‘숟가락’과 ‘젓가락’은 어떻게 다를까? 이 질문을 친구에게 했더니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는 반응이었다. 생김새부터가 아주 다른데 무슨 소리냐는 말이었다. 몇 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다시 보았다. 그 영화를 기억하는 건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왜 숟가락은 받침이 ‘ㄷ’인데 젓가락은 ‘ㅅ’이야?”

  이 문제에 관한 설명은 ‘한글 맞춤법’에 나온다. ‘한글 맞춤법 제29 항’에서는 ‘ㄹ’ 소리였던 말이 다른 말과 결합하면서 ‘ㄷ’ 소리로 바뀌어 나는 경우 ‘ㄷ’으로 적는다고 설명한다. 그 예로 ‘숟가락’, ‘사흗날’, ‘이튿날’ 등을 들고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숟가락’, ‘사흗날’, ‘이튿날’은 ‘술’, ‘사흘’, ‘이틀’에 ‘가락’, ‘날’이 결합하면서 ‘ㄷ’으로 소리가 바뀐 말들이다.

  그렇지만 이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술’과 ‘가락’이 결합하면서 ‘ㄹ’이 ‘ㄷ’으로 소리가 바뀌어 [숟까락]이라는 소리가 되었다고 해도 받침에서 [ㄷ]으로 소리가 나는 말은 ‘ㄷ’ 하나만이 아니다. 받침에서는 ‘ㄷ’뿐만 아니라 ‘ㅊ, ㅅ, ㅈ, ㅌ, ㅎ’ 등도 [ㄷ]으로 소리가 난다. 예를 들어 ‘꽃, ?, 꼿, 꽂, ?, ?’은 모두 [?]으로 소리가 난다. 따라서 [숟까락]으로 소리가 난다고 해서 반드시 ‘숟가락’으로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숟가락’에 비하면 ‘젓가락’은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젓가락’은 ‘저(箸)+ㅅ+가락’의 구조로 된 말이다. ‘젓가락’을 뜻하는 ‘저(箸)’와 ‘가락’이 합성어가 되면서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이다.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은 합성어가 되면서 후행 요소 ‘가락’이 [까-]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옛말에서는 ‘숟가락’, ‘젓가락’ 대신에 ‘술’과 ‘저’가 명사로 쓰였다.

 

(1) 能히 자바(아래아표기)며 ?나(아래아)니 (能拈하나니) <금강경삼가해, 15세기 자료>

 

그런데 ‘숟가락’이 ‘술’과 ‘가락’이 결합한 말이라면 어떻게 ‘숟’으로 소리가 나게 된 것일까? 비교적 이른 시기에 간행된 국어사전에서 ‘숟가락’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2) 《조선 총독부 사전 1920》

  수ㅅ가락: 匙

   

(3) 《증보 조선어 사전, 문세영 1939/1946》

  술가락[-까-] ‘숟가락’의 동의어

   

(4) 《큰사전, 한글학회 1957》

  술가락[-까-] ‘숟가락’의 잘못


  사전을 보면 ‘숟가락’은 ‘숫가락’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술가락’으로 표기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숫가락’과 ‘술가락’이 모두 나타나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국어사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다음 예는 ‘물고기’의 옛말 표기인데 ‘숫가락/술가락’의 표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고기/믓고기 <구급방언해, 15세기 자료>

 

  위의 예를 보면 지금의 ‘물고기’는 원래는 ‘물+ㅅ+고기’에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다. ‘?고기’에서 ‘ㅅ’이 표기에 나타나지 않으면 ‘물고기’가 되고 ‘ㄹ’이 나타나지 않으면 ‘뭇고기’가 된다.

  따라서 ‘숟가락’도 다음과 같은 구조에서 온 말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6) 술+ㅅ+가락

 

  ‘*?가락’에서 ‘숟가락’이 나왔다고 가정하면 국어사전에 나타나는 ‘술가락’과 ‘숫가락’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위에서 국어사전을 보면 ‘술가락’의 발음이 [술까락]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ㄹ’ 받침 뒤는 무조건 된소리가 되는 환경이 아니다. 따라서 ‘술가락’만으로는 [술까락]으로 소리 나는 현상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중간에 사이시옷이 끼어들어 있는 ‘*?가락’을 가정하면 [술까락]으로 소리가 나는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사이시옷은 뒤에 오는 자음을 된소리로 바꾸기 때문이다.(나뭇가지[--까-], 햇볕[-?])‘ 에서 비롯한 ‘물고기’가 [물꼬기]로 소리 나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숫가락’처럼 ‘ㅅ’ 받침으로 적은 말이 나타나는 것은 ‘?고기’와 ‘믓고기’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가락’에서 ‘ㄹ’이 탈락한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숟가락’은 ‘*?가락’에서 온 말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숟까락]을 ‘숟가락’으로 적도록 한 이유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사실, 이 문제는 ‘깨끗하다’의 받침을 ‘ㄷ’으로 적지 않고 ‘ㅅ’으로 적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만큼 대답하기 어렵다. 근거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걷고/걸어, 깨닫고/깨달아’처럼 ‘ㄷ’이 ‘ㄹ’로 바뀌어 활용하는 현상에 이끌려 ‘ㄹ’과의 관련성을 ‘ㄷ’ 표기로 나타낸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이 상상 또한 재미없고 따분한 설명일 수밖에 없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숟가락은 밥을 뜨는 부분이 ‘ㄷ’처럼 생겼고 젓가락은 위를 잡고 아래를 벌리면 ‘ㅅ’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재치있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한글 맞춤법이 얼마나 멋져 보일까?


<새국어소식> 2006.1(통권90), 국립국어원.

http://www.korean.go.kr/nkview/nknews/200601/90_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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