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고사성어의 유래(22) 오리무중(五里霧中)

역려과객 2013. 7. 3. 17:01

사방(四方) 5리에 안개가 덮여 있는 속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행방이나 사태의 추이를 알 길이 없음


  안개는 분명 기상 현상의 하나로 자연발생적인 것이지만 옛 중국 고전을 읽다 보면 인공적으로 안개를 피우는 장면을 접할 때가 많다. 중국 신화에 보면 유명한 ?鹿之戰(탁록지전)이 나온다. 중앙의 大神(대신) 黃帝(황제)의 자리를 노린 惡神(악신) 蚩尤(치우)가 일으킨 전쟁이다. 蚩尤가 천지를 뒤덮는 거대한 안개를 피우자 황제가 신하 風后(풍후)를 시켜 指南車(지남거)를 만들어 무사히 包圍網(포위망)을 뚫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짙은 안개 속에 갇히면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그저 막막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나 사람의 형국에 대해 도무지 헤아릴 수 없을 때 우리는 五里霧中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五里霧中은 본디 五里霧에서 비롯되었다.

  동한 말 張楷(장해)라는 학자가 있었다. 학식은 물론 인품도 뛰어나서 많은 門下生(문하생)이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 찾아오는 바람에 그의 집은 항상 門前成市(문전성시)였다. 뿐만 아니라 황제의 친척이나 고관들조차도 그와 선을 대기 위해 찾아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張楷는 나서기를 싫어하고 조용히 지내는 성품이었으므로 모든 것을 뿌리치고 鄕里(향리)로 돌아와 杜門不出(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고향도 그에게는 마음 편히 지낼 곳이 못 되었다. 이번에는 지방장관이 그를 관리로 추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弘農山(홍농산)에 은둔하자 이번에는 뭇 학자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삽시간에 마을을 이루었다. 이 때에도 고관들의 추천이 집요하게 계속되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道術(도술)에도 뛰어나 ‘五里霧’를 일으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특유의 方術(방술)로 안개를 일으키면 무려 5里나 뻗치도록 했던 것이다. 당시 關西(관서) 지방에 裴優(배우)라는 도사도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단지 ‘三里霧’를 일으킬 뿐이었다. 그래서 秘法(비법)을 배우기 위해 張楷를 찾았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하지만 후에 裴優가 안개를 일으켜 나쁜 짓을 하다 잡혀 문초를 받을 때에 비법을 張楷에게 배웠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그도 連累(연루)되어 갇히고 말았다. 그 결과 2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가 사실이 밝혀져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가 석방되자 桓帝(환제)가 詔書(조서)를 내서 招聘(초빙)했으나 역시 거절하고 70세를 일기로 죽었다. 참으로 五里霧中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


[주]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은 '오리무'에 '중(中)'자를 더한 것인데 처음부터 '중'자가 붙어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함.

 


[출전]《후한서(後漢書)》<장해전(張楷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