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휜구름도 흰구름이 아니요, 꽃도 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와 내가 마주친 꽃은 이미 꽃밭이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 달벗 한옥팬션 벽보에서 ----
지난 화요일에 처는 처제와 함께 장모님 면회를 다녀왔다. 장모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처제는 며칠의 휴가가 주어진 셈이다. 처제는 처를 보고 자매랑 단둘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다며 홍쌍리 매화마을을 갔다오는 것이 소원이라며 이번 기회에 같이 다녀오자는 것이다. 하긴 나 역시 형제끼리만 여행을 떠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처는 내게 물어보며 승낙을 구한다. 해서 다녀오라고 하니 좋아한다.
1시간 후에 처제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장모님께서 폐렴과 빈혈로 다음주에 퇴원하신다며 광호가 휴가를 내고 길호도 함께 간다고 하며 나도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가는 것도 좋지만 산 언덕빼기라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가기로 했다.
광호는 설계자요, 기사요, 안내자요, 사진사요. 요리사이다. 무엇 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 달벗 한옥팬션도 그와 그의 여자친구가 기획한 것이라고 한다. 요즈음 보기 드문 효자가 아닐 수 없다.
떠나가 전날 처제에게서 카톡이 왔다. 새벽 5시까지 내려 오라는 것이다. 광호는 매화의 상태, 지형 날씨까지 파악을 하여 일찍 가야 된다는 것을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처는 뜬눈으로 지새웠나 보다. 어디를 간다고 하면 잠을 안 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요즘 병원에 다니기 바쁘다. 안과, 치과, 정형외과 등 여러 군데를 다닌다. 수요일에도 양쪽 무릎에 연골주사를 맞았는데 무척 아픈 것을 아는데 여행을 간다니까 안 아픈 척 한다. 새벽 세시 반에 나를 깨워 목욕을 시킨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5시 10분 되니까 내려오라고 전화가 온다. 광호는 전라도에 오후 네시경 비가 오니 매화가 이번 주면 끝날 것이요 10시가 넘으면 들어가기 힘이 드니 그 안에 도착해야 한다고 한다, 6시가 조금 넘어 천안휴게소에 도착하여 처제가 싸 온 김밥과 처가 싸 온 음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전라도로 향했다,
오전 9시에 1차 목적지인 구례의 화엄사에 도착하였다. 안에 들어갔으나 비탈길이 심해 나는 들어가지 못하고 네 명만 올라갔다. 처는 무릎이 아픈데도 잘도 올라간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했다고 하는데 올라가지는 못했으나 엄청 크다고 느꼈다, 조선시대 세종때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긱황전, 사사자삼층석답 등 국보가 5개나 있는 불교계를 떠나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재가 많은 사찰이다.
초입에 특산물 파는 상가에서 주인장이 의자를 내어주고 둥글레차를 가져다 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폰으로 장기 한 판을 두고 나니 일행이 내려온다. 처는 늘 그렇듯 부처님께 가정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했다고 한다.
화엄사를 지나 매화마을로 가는 길옆으로 섬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날씨는 흐리지만 참으로 푸근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다. 섬진강 주변이 도시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낭만이 경치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화엄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50년 된 벚나무인 율벚나무가 있다고 한다.
전라도 하면 세분이 생각난다. 나의 스승님이신 법정스님과 태백산맥을 쓰신 조정래씨 그리고 섬진강시인 김용택씨이다. 젊어서 아름다운 시에 빠지기도 했었다. 갑자기 아동의 우상인 김용택시인이 떠 오르는 것은 섬진강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리라.
9시 50분에 전남 광양시 다암면 홍쌍리 메화마을에 도착했다. 벌써 넓은 주차장엔 차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광호에 안내로 박물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우리는 2층부터 샅샅이 훑어보았다, 홍쌍리라는 여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산 전체를 한 나무로 채웠다는 것은 이곳 밖에 없다는 것이다.
40여년을 홀로 고생한 분 정말 여장부이시다. 2008년 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고, 식품명인 14호라고 한 그 분은 두 번의 자궁수술과 교통사고 후유증,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오랜 고생을 하였으나, 수십년을 매실농사 지으며, 자연속에서 얻은 체험과 전통적인 방법으로 매실농업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박물관은 볼 것도 배울 것도 많다.
매화는 식물상에는 없다. 밤나무, 감나무처럼 정식명칭은 매실나무이다. 사람의 입에 많이 불려져 통상적으로 매화 또는 매화나무라 부른다.
매화는 화사한 매화음과 고귀한 매화문향으로 구분된다. 매화음은 다 함께 술을 마시며 함께 어울린다는 화려함이라면 문향은 오래되고 은은한 향기를 품어내는 절개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단원 김홍도가 돈이 없는데 그림 하나를 팔아 3000냥을 받았는데 갖고 싶은 매화를 2000냥을 주고 사고 800냥으로 친구들과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셨는데 그 술자리를 매화음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200냥으로 쌀과 나무를 샀는데 하루 지낼 것 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화선다운 고귀한 인품을 말해 주는 일화이다. 김홍도의 매죽도는 지금도 유명한 그림으로 남아있다.
이에 반에 문향의 시조격인 선암사에 있는 선암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로서 640년 되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보고 싶다. 매화음의 대표적인 매화는 홍쌍리 매화마을이고 강원도 오죽헌에 있는 율곡매는 대표적인 문양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부부만 남고 세 명은 산자락을 돌았다. 산이 너무 커서 중턱까지 다녀왔다는데 시간 반이 걸렸다. 매화가 지난주에 절정이었다는데 비가 오면 아마 거의 다 지리라. 매화꽃은 붉은 색인줄 알았는데 이 곳은 거의 모두가 흰색이다.
다섯명이 다시 모여 점심을 제첩국을 먹기로 하고 소문난 맛집이라 해서 찾아갔으나 맛도 맛이지만 불친절에 씁쓸하게 음식점을 나왔다.
길호가 가고 싶은 진주성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자리가 동서 자리인데 동서는 바빠서 못 왔다고 하며 잘 놀다 오라고 한다.
다음 달 3일이면 사고 난지 꼭 30년이 된다. 다치기 전에는 꽤나 바빴었다. 평일에는 잔업을 하고, 토요일엔 학교를 가고, 일요일은 농사 일손을 도왔다. 그리고 1년에 단 한 번 3박4일의 휴가는 온통 여행을 했다.
한 해는 충청도를 돌았고 한 해는 경상도를 돌았다. 30여년전 버스로 경주에서 1박을 하고 오륙도를 돌아 삼천포(지금의 사천시)에서 바다구경하고 순천과 여수로 가는 길에 촉석루를 들른 적이 있다.
다섯명이 입장하는데 두명 값만 낸다. 진주성 촉석루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 박물관에도 갔다. 다른 이는 1층만 도는데 길호는 나를 밀고 2층까지 삿삿이 돌았다. 이곳에서 시간 반을 소비한 셈이다. 길호와 나는 역사박물관에서 통하는 면이 많다. 다 돌고 나니 네 시가 다가오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관람도 못하고 숙소에서 비를 바라 보아야만 했다. 시간도 날씨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둣했다. 가다가 하나로마트라는 곳에 들렀는데 웬만한 구멍가게만도 못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도 차도 없는 6~70년대의 풍경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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