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보고싶은 한울방 가족들

역려과객 2024. 5. 30. 17:30

 

 

인간은 백년을 살지 못하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모든 걱정을 한다. 필요없는 걱정을 하는가 하면서 눈앞에 닥쳐오는 걱정도 모르고 동분서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인간이 지니고 있는 특색이요 모순일 것이다.

 

 

불필요한 근심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이다. 좋은 일만 감당하기에도 벅찬 시간인데도 말이다. 인간은 망설이지만 시간은 망설이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60을 훨씬 넘겨 터득한 진언이다. 소중한 친구를 만나 커피 한잔에도 웃고, 병 안 들고 작은 배려에 행복해하는 그런 모습 우리가 바라는 소확행이 아닌가 싶다.

 

 

2000년초 심심하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사자성어 채팅방에 들어갔다. 사자성어 끝말잇기 방이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거의 초보 수준이었다. 2년여의 꾸준한 노력 끝에 지신이 생겼다. 번개모임도 자주 했지만 나는 딱 한 번 가 보았다. 숨은 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중에는 스님도 계셨고, 소라라는 분도 있었다.

 

 

아파트로 이사 온 다음 해부터 소위 채팅이라는 것을 했다. 맨날 인숙이는 나보고 느림보라 했다. 15년도에 우연히 장애인 방에서 대호를 만났다. 처음엔 대호가 다니는 방을 찾아가다가 대호가 음악방송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 우리끼리 방을 만들어 음악방송을 하게 되었는데 한울방을 만들었다. 나는 멘트는 못하고 신청곡을 주로 노래만 틀었다. 한울의 한은 바른, 진실한, 가득하다는 뜻이고 울은 울타리 우리 터전의 의미이고, 씨밀레란 영원한 친구라는 뜻이다. 그 첫 손님이 닉네임이 맑은호수인 영숙이다.

 

 

뜨내기 손님도 있지만 10번 이상 들어온 분들은 거의 기억을 한다. 달덩이나래, 로즈마리, 찔레꽃, 천상, 화이트, 올리브, 아이린, 무진 등등 기억속에 멀어져 간다. 10여년만에 사자성어방에 있던 소라가 나를 찾아 우리방에 찾아왔고 내 생일전이라고 부산에서 나를 찾아왔다. 밤에 방 식구둘에게 소라가 집에 왔다니까 이튿날 한울방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발렌타인데이라 해서 모두에게 초코렛을 선물했고, 대호는 로또복권 하나씩을 선물했다. 그들은 케잌을 준비해 왔다. 만수동에서 해물찜을 먹고, 노래방도 갔다. 부산에 사는 소라는 한 번 더 올라왔고 뇌종양이라고 말한 다음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우리집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모여 대부도도 가고, 봉주르도 가고, 도봉삼봉도 가고, 12일로 안면도도 갔었다. 우리집과 가까운 인숙이와 진범이가 차주 찾아 왔었다. 결혼전에는 정말 많이 놀았는데 세영이가 강북 삼성병원에 있어서 문안차 갔었는데 돌아가신 선친께 꾸중을 엄청 들었다.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새댁에게 예의가 아니라며 나무라셨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음방이 깨졌다. 하지만 가끔씩 어울려 술 한잔 하기도 했고 내 결혼식에, 부친 장례식에 모두들 참석해 주었다. 개인적으는 만났다. 진범이랑 부천생태공원, 바다향기수목원, 물향기수목원등 여러 곳을 다녔고, 세영이 부부랑 강릉에도 갔었고, 인숙이 세영이랑 두물머리와 용문사에도 갔었는데, 단체로 만난 것은 18년 송년 모임이 마자막이었다. 자주 오던 인숙이도 세영이도 본지 오래되고 훌라를 하던 진범이도 19년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영숙이도 멀어서 못 오고 대호 부부와 가끔 만나 밥 먹는 것이 전부이다.

 

 

지난 4월에 장모님 상 당할 때 방 식구들이 왔고 조의금으로 성의를 보였다. 고마음에 밥을 사겠다고 카톡방으로 연락을 취했는데 모두들 바쁜가 보다. 매일 톡하는 석열은 바쁘고, 세영이는 시어머니 병환으로, 윤주는 남편 간병하느라 바쁘고 인숙은 자기도 아프면서 일에 어머니 간병까지 한다.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산다. 어느 날 세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한가해서 오겠다고 한다. 그날은 병원 예약이 잡혀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모두들 톡 방이 닫혀있다.

 

 

장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일주일 후에 가장 친한 친구의 별세 소식을 받았다. 그 이후로 보름간을 잠을 못잤다. 모든 것이 귀찮고, 싫어졌다. 이렇게 살 바에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의 도움으로 정신과를 찾았고, 아우의 도음으로 식물원에도 가고, 경주에 사시는 고모님댁으로 여행도 하니까 조금씩 나아졌다.

 

 

스쳐 지나가는 것은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움도, 사랑도, 때로는 슬픔도, 희열도 멋진 한울방의 추억도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놓아두고 가야 할 길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그리움에, 슬픔에 넘어지고 만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반드시 꽃길만은 아닐 것이다. 들길 산길, 강길을 다 지나고 봄길, 가을길을 다 지나서 고희를 바라보는 자금은 마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길은 한도 끝도 없다. 부모님과의 길, 가족과의 길, 친구와의 길, 모두 다 다르지만 그 또한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길 아니겠는가? 그 길은 영원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인생은 내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부모님도 뵙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다. 특히 가장 화려하게 보냈던 한울방 가족들이 더 보고 싶다. 인석들아 연락좀 해 다오

 

 

 

  오월의 끝자락에서

  2024.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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