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오월의 푸르름과 장모님 49재

역려과객 2024. 5. 27. 17:24

 

 

청자빛 하늘을 보니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 가벼워진다. 소싯적에 부르던 동요 우리들 세상이라고나 할까? 오월은 어디를 가나 계절의 여왕 냄새가 난다. 하지만 내 젊음의 꿈이 서서히 퇴색되고, 한 알의 약을 더 먹는 순간 모든 것이 무색해진다.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향수를 뒤로 한채 먼 하늘만 바라본다.

 

 

오월의 넘치는 기운은 활기차게 느껴진다. 화초들은 갖은 색으로 환한 미소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나무들의 잎새마다 연두빛으로 싱그럽다. 길호 생일날 차 한 잔을 마시며 물왕저수지를 바라보며 현재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처제도 나아지고 나 또한 많이 좋아졌다. 이 계절 아래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것을! 요즈음 이런 생각을 많이 해 본다.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것은 내가 많을 때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을 때이라는 것이다.

 

 

늙음이란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고 처음 가는 길이요, 방향도 예측도 못하고,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서툴기만 하겠지.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서툴고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할 것이지만 누구든 한 번은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뚜벅뚜벅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련다. 늙어가는 처가 동반자가 되어 같이 걸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가다가 힘들면 한 박자 쉬면서 걸으면 그 삶의 여유는 곱빼기가 되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주에는 비교적 많이 움직인 한 주였다. 봄꽃을 많이 본 듯하다. 꽃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까마득히 잊었다. 기침이며 가래가 끓는다. 해서 정신과, 안과 내과를 다녔고, 장모님을 뵐 겸 다음 달 선친을 뵐 겸 해서 15년만에 염색을했다. 처가 하라고 부추겨서 하긴 했는데 어쩐지 이상하다. 속은 다 썩었는데 겉만 젊어 보여 나답지 않고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화장실 가기가 어려운 이 나이에 겉만 반지르르하면 무엇이 달라질까마는 처는 젊어 보여서 좋다고 하니 헛웃음만 나온다.

 

 

난 토요일 10년만에 인천에 사시는 처형께서 직접 만드신 게장을 들고 동서와 처제가 왔다. 게장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생전에 소식을 하는 내가 밥을 더 먹을 정도로 맛있게 담가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였다. 고스톱을 치며 놀다가 통닭을 시켜 먹고 동서 내외는 돌아가고 내일 오전 광호가 우리를 태우러 오기로 했다. 처형은 우리집에서 주무셨다. 이웃마을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많은 돈을 땄는데 밤이 되어 신발은 잊어버리고 집으로 오는데 집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깨었는데 꿈이었다.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 알 수가 없다. 괜한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제 정확히 9시에 왔다. 비가 다행히 오지 않아 다행이다 바로 안양 예술공원 보장사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처남댁 가족 모두모이니 장모님께서 남기신 가족 12명이 모두 모였다. 처조카인 현준이는 인사는커녕 아예 외면을 한다. 정말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나 큰일을 앞두고 마음을 삭혔다. 이윽고 10시에 49재가 열렸다. 스님 두 분과 보살님 덕으로 약 두 시간에 걸친 의식은 천수경을 따라 부르고 스님의 반야심경을 따라 하려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중에서 배운 탐잔치만 생각이 났다. 탐진치의 탐은 탐욕을 버리고, 진은 증오심이나 노여움을 버리고, 치란 어리석음을 버리라는 불교 용어인데 신이 아닌 이상 어디 그게 뜻대로 되겠는가?

 

 

83년도 28세때  조부님도 돌아기지고 교통사고로 인하여  공허할 즈음  쉬고 있을 때 여동생의 권유로 한 달동안 전남 송광사에서 불교 하계수련회에 120여명이 참석을 했었다. 그 당시 수련원장 스님이신 법정스님의 제자 중의 한 분이신 법흥스님께서 나만 따로 부르시더니 바다의 뜬구름처럼 멀리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결혼도 늦게 하라는 말씀과 함께 해운이라는 수계명을 지어 주셨다. 훗날 생각을 하니 스님은 내 미래를 예측하신 것으로 보였다.

 

 

지장전 법당 안은 목탁소리, 징소리, 볼경소리가 때로는 폭풍처럼, 때로는 시냇물처럼 고요하기도 하더니 정적을 울린다. 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우리는 절을 하며 장모님 편안하게 가시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불경소리와 함께 스님의 안내로 법당 안을 돌고, 법당 밖에 나와 복전함으로 가서 모든 것을 태우고 끝이 났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처는 아프다며 내일 병원에 가겠다고 한다. 내가 도울 수가 없는것이 안타까울 뿐인데 처가 일어나더니 언니도 있으니 친정에 가자고 한다, 그녕 지나치기가 아쉬운가 보다. 택시를 불러 처가에 가니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장모님 마지막 생신 때 왔으니 반년만에 온 셈이다. 동서와 처제의 알뜰한 성격이 처제의 그림과 함께 잘 배치되어 있었다. 이윽고 술과 중국음식을 시켰다.

 

 

소맥 반 잔을 곁들여 짬뽕과 짜장, 탕수욕과 양장피를 시켰는데 모두 맛이 있다, 양장피는 매워 처에게 넘겼다. 맛있게 먹고 고스톱을 치는데 화투를 못치는 처 혼자 맥주를 계속 마신다. 처가 말이 많아졌다. 취기가 오른 모양이다. 인천 처형의 말씀에 처의 과거를 엿들을 수가 있었다. 처의 고생했던 40여년전 이야기인데 처는 계속 마셨다. 내가 그만하라고 소리치니까 잠시 조용하더니 금방 또 취기에 또 말이 많아지고 비척거린다. 택시를 불러 집에 오더니 왜 자기편 안 드냐며 따진다. 자기는 안 취했다며 실랑이가 계속되었고, 저녁 이후엔 아무것도 안 먹는데 떡과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막걸리 반 잔에 침대로 갔고 처는 맥주와 막걸리를 모두 마시고 12시가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에 밥을 차려주고 싫다는 나를 탕 속으로 밀어 넣어 씻긴다. 부부싸움이랄것도 없지만 매 번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일까?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을까? 10대로도 돌아가고 싶고, 30대로도 돌아가고 싶기도 하지만 궂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을 하니 이 순간의 삶이 생각하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되었으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이기 들어서 알게 된 행복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고생하고, 사랑이 있는 고생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젊어서 인생의 쓴맛, 단맛, 매운맛을 다 겪고 나니 인생 60대 중반을 넘겼다. 그래도 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서로에겐 문안 인사가 있어야 따뜻해지고, 길은 함께 하는 시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은 걱정해 주는 이가 있어야 행복해진다. 떠나기신 장모님을 뵙고 나니 감사함을 느끼게 하고 다음 달 선친을 뵐 것을 생각하니 더 죄송하기도 한 반면에 더더욱 그리워진다. 이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동서는 내게 처형은 처에게 안부 전화가 왔다. 이런 것이 사랑이요 행복이 아니겠는가?

 

 

장모님 편안하게 안녕하 가세요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정말 뵙고 싶어요

 

 

2024527

'해운의 일기 그리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창 친구네를 다녀오며 2  (4) 2024.06.12
보고싶은 한울방 가족들  (0) 2024.05.30
5월 보름간의 희노애락  (0) 2024.05.18
기다림의 미학  (2) 2024.04.26
장모님을 떠나 보내 드리고...  (1)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