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부친 15주기를 맞이하며

역려과객 2024. 6. 17. 16:51

 

 

 

꽃은 꿀이 없으면 벌이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에게 따뜻함이 없으면 사람이 찾아오지 않고, 꽃에 향기가 없으면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것처럼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머물러 있는 사람이 없게 된다. 꽃이 시들면 벌 나비가 떠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적막하면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나도 이제 나이가 먹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의 죽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조부님 돌아가실 때에는 그러려니 받아들였었다. 39년 전이니까 28세 젊은 청년였다. 모친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항상 젊을 줄 알았는데 나를 가장 많이 걱정해 주셨고, 늘 나를 지켜 주실 줄 알았었다. 당뇨 합병증인데 모친께서 허리 아프다고 수술해 달라고 하셨다. 동안산병원의 세 의사분(척추과, 내과, 마취과)이 모여 많은 의논 끝에 나와 상의를 했고 수술 후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

 

 

많이 울었다. 모친의 소원을 무시했더라면, 합병증이 없었다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죄인이 되어 시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모친은 저혈당이 자주 왔었고 전에 있었던 내 가게 옆에 있는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었다. 음식을 잘 못해 드리고 제대로 간병을 못한 내 잘못이 크다. 효부였고, 부지런하고, 집안일과 농사 모든 일을 쉽고도 빠르게 하셨으며, 음식솜씨가 남달랐는데 그때가 72세였다. 내년이면 벌써 20주기가 된다.

 

 

선친께서는 담배와 커피와 막걸리를 좋아하셨다. 특히 담배는 하루에 한 각 반을 태우셨다. 19502월에 동네에서 최초로 군대에 가셨고, 지리산 빨치산 공비 토벌을 하셨으며 전쟁터에서 수류탄 조각을 맞고 병원에서 입원을 하셨으며 군생활을 하면서 모친과 결혼하셨다.

 

 

외조부님께서 우리 마을이 평산 신씨가 많다는 것을 아셨고 선친이 같은 집안인 줄 아셨나 보다. 그리고 군인인 점을 감안하여 결혼을 허락하셨는데 결혼식날 신랑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미루고 음력 12월에 다시 했는데 당신 부친은 24세요 모친은 20세라고 하셨다. 내가 부모님 은혼식 때에는 글을 써서 부모님께 읽어 드리고, 금혼식 때에는 장미꽃 50송이를 선물로 드렸다. 모친께서는 장미 선물 처음으로 받아 보셨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량 같았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나 평상시에는 말씀을 잘 안 하시는데 약주 드시면 주로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취해 기분이 좋으면 내게 언주야!”라고 말씀하셨다. 부친은 늙어 가면서 늘 자식들이 보고 싶다고 화를 내시는데 모친은 애들이 바쁘게 일하는데 어떻게 자주 오느냐고 나무라셨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 모양이다.

 

 

한도병원에서 의사와 많이 다투었다. 건강검진 결과 허리가 안좋다고 하여 수술을 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퇴원을 하네마네 하며 많이 싸웠다. 노량진 할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5개월 만인 20082월에 퇴원을 하셨다. 그러더니 결혼한 지 한 달만인 11월 또 입원을 하셨다. 폐암이란다. 주치의가 먼저 그 의사였다. 또 싸웠다. 그렇게 입원을 했는데 그것도 발견을 못했냐고 따졌으나 어찌 의사를 이기겠는가? 벌써 15주기가 되었다.

 

 

문제는 나다. 혼자 자립하려 했지만 워낙에 수동적이라 다룬 분께 의지를 많이 했다. 영원히 건강할 줄 알았던 모친께서 돌아가시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병이 들고, 말도 점점 어눌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점점 늙어 감에 따라 처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된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강해지리라 마음을 다지지만 어쩌다 처가 나가서 늦게 들어오면 돌어올 때까지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남부끄럽지만 인생을 헛 산 것 같다. 그저 가끔 친구들의 안부 전화에 위안을 삼는다. 가족들이 보고파 지고 안부가 그리워진다. 기억력도 점점 희미해 간다. 다음 화요일과 목요일는 병원 예약이 되어있다.

 

 

기고 5일 전인 화요일에 처가 관리사무소 주임을 불러 화단 정리를 했다. 그것을 본 나는 10년은 더 살 것 같다며 시원하다고 했는데 처는 자식처럼 사랑했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괜시리 미안해졌다. 핸드폰 보고 놀랐다. 제수용 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음력 10월 초에 둘째 제수씨와 막내 제수씨의 생일이 하루 차이다.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늘 초대를 하여 점심을 같이 했는데. 지지난 해부터 바쁘다며 참석을 안 했다. 질부를 얻어서 함께 파티하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장모님 장례에 참석한 답례로  사촌까지 우리를 포함 10명을 초대했는데 작은집 가족들은 이래저래 이유를 말하며 참석을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둘째네만 이유도 없이 참석을 안했다. 너무 서운했다.

 

 

지난 조부님 제삿날 처와 둘째 제수씨와 국을 일찍 펐네마네 실랑이를 하였고 처는 방으로 제수씨는 주방으로 갔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생전 처음으로 둘을 불러 화해를 시켰다. 각자 생각이야 다르겠지만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날 처가 제수씨에게 전화를 했는데 두 번 다 안 받는다고 걱정을 한다. 해서 둘째에게 모레 올 거냐며 물었는데 무슨 일이냐며 묻는데 카톡 안 봤냐며 아버지 제사라고 말하니 오겠단다.

 

 

어제 오후 8시도 안 되어 막내네와 재영이까지 왔고, 둘째네가 과일을 사 들고 945분에 왔는데 제수씨는 처와 인사는커녕 눈도 안 마주친다. 내가 또 나서면 불편해 할까봐 가만히 보기만 했다. 제사를 지내고 저녁을 먹고 모든 음식을 세 등분하여 아우들은 돌아가고 처는 힘들어 하며 자리에 눕는다.

 

 

기족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우리네 인생사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형제를 만나고 부부의 인연으로 가족이 된다. 젊어서 일을 하고 서서히 늙어 간다. 그 이후에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멈출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멈추기 전에 안부를 물어오는 이가 있으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그것을 같이 하는 이가 친구든 가족이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다다익선이지만 늙어 가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마음을 주고받는다. 사랑의 마음, 배려의 마음, 용서의 마음, 때로는 미움의 마음도 있다. 좋은 마음은 좋은 마음대로 나쁜 마음은 나쁜 마음대로 되돌려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 베풀면 베푼 대로 인색하면 인색한 대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네 인생살이 마음먹기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눠지듯이 물질로 채워 줄 순 없어도 따듯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채워 줄 가슴이 있지 않은가? 비록 명 들고 늙어 가면서도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 하나가 있다. 가정의 화목이요 웃음 하나이다. 그것이 곧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부친 15주기에 참석한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건강하길 기원한다.영화을 깔아준 재영이에게도 고맘다고 전하고 싶다.

 

 

   

2024. 06.17.

부친 15주기를 기리며

당신의 장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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