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두 밤 그리고 사흘
2007.06.22
1. 첫날 '꿔다 놓은 보릿자루'
5년 전 중국 보름간 다녀 올 때 보다 더 설레였다. 전날 밤에 우리 한울방 식구들이 모두 잘 다녀오라고 선물 잊지 말라고 협박(?)을 한다. 가기 전 두 가지 염려는 모두 해결되었다. 음방은 풀뿌리님께 맡겼다. 기꺼이 해 주시겠단다. 또 부친의 식사 문제도 막내가 알아서 하겠단다. 그러면서 기계치인 나에게 디카를 전해준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잠시 잊고 떠날 수가 있었다. 또 하나 생전 처음으로 받아 보는 아버지의 용돈이 내 가슴을 적신다. 되찾은 부친의 건강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처음 본 은경이는 스스럼없이 대한다. 중증장애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밝다. 가끔 내게 할아버지라 부르지만 꿈 많은 대학생 그 자체였다. 복지관을 처음으로 찾았다. 10여년전부터 안산에서만 활동을 했었다. 시흥시 장애인복지관의 48명의 우리는 나이와 장애를 초월하고 하나가 되었다. 발달 장애인들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인솔교사는 그들대로가 아닌 하나가 되어 버스 두 대에 올라타고 김포로 향했다.
모두들 다 아는 사이 같았다. 나만 유독 혼자인 듯 했다. 아는 분이라고는 최팀장 뿐이 없었는데 누가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한다. 내가 가끔 차량봉사하는 할머니의 자제분이신 유기영씨가 같이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속을 끝내고 이윽고 비행기에 처음 밟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대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구름 밑으로 보이는 산하는 평화롭다. 개발중인 곳은 땅색으로 나머지는 신록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가끔 우리를 따라다니는 비행기 그림자가 집채 만하기도 팔뚝만하기도 하다. 그리고 위에서 바라보는 내 마음속엔 초연해지기조차 하다. 이렇듯 비행기의 신비는 껍질을 벗기었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제주자원봉사단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들은 사흘내내 우리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다. 그 분들이 있기에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가이드 안내원을 따라 처음 가 본 곳이 도깨비도로였다.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사람들은 착각 속에서 산다. 매직월드에 가서 쇼를 구경하였다. 일종의 서커스였다. 중국소녀들의 묘기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자전거든 공이든 자유자재이다. 얼마나 연습을 했기에 저런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헌데 오토바이는 너무도 위험하다. 보는 사람이 아찔하다.
저녁을 먹고 방을 배정받고 들어오니 9시가 넘었다. 유기영씨와 전직 경찰관이자 태권도 국가대표서수였던 박상규씨와 같은 방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덜 하지만 원체 말이 없는 내가 박상규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의 구수한 입담에 금방 친해졌다.
2. 중간 날 '두꺼비 한잔에 하나가 되고'
아침을 잘 먹고 우리는 목석원으로 향했다. 제주도엔 정말로 돌이 참 많다. 어디를 가도 돌이 지천이고 흙이 검다. 나무와 돌이 어우러진 목석원은 사람이 살아가는 지혜를 가져다 주었다. 목석원은 여성스러움이 나타난다. 조용하고 아담하다. 디카를 선생님께 내맡겼다.
우리 나라의 차 문화는 7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오천 년 문화이지만 그릇이나 맛은 일본이 단연 돋보인다. 오설록은 깨끗한 이미지이다. 녹차가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였다. 이렇듯 우린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여행을 통해 관람을 통해 체험하고 터득하고 소화하여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든다.
점심 먹고 찾아간 곳이 TV로 많이 보았던 동물쇼였다. 일본산 원숭이, 바다사자와 함께 돌고래가 쇼를 부린다. 따라 하지 못하는 돌고래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 돌고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인내의 고통속엔 주어진 명제인 낙을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우리에게 웃음을 보이기 위해 그들은 얼마의 땀과 노력을 투자했을까? 제주도는 자치도이다. 논농사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자구책이 필요하다. 말도 키워야 하고, 관광자원도 마련해야 하고,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한다. 제주도는 그래도 복 받은 곳이리라.
제주도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천제연폭포이다. 그런데 가이드가 안내한 곳이 천지연폭포이다. 시원하게 내리는 폭포수에 발 담그고 싶은 심정이야 이루 말 할 수 없지만 그 배경을 뒤로 한채 사진 한 장으로 만족해야 했다. 목석원이 여성이라면 폭포는 남성미가 흐른다. 깨끗한 물에 잉어며, 비단 금붕어의 한가로움이 우리 내 인생사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발길을 돌려 횟집으로 향했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비록 많은 양은 아닌 횟감의 안주와 함께 두꺼비 한잔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 아니 이튿날이라도 낯설기만 했는데 두꺼비 한잔에 더 친근감과 동질감이 가고,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방에 와서 샤워를 하니 한잔 생각이 또 입맛을 당기게 한다. 우리의 호프 박상규씨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해서 옮긴 곳이 옆방. 그 곳에는 선생님과 함께 동료들이 벌써 한잔 기울이고 있었다. 이젠 초면이 아니요 정겨운 친구로 변해 있었다. 서먹서먹했던 그들과의 관계는 이제 내가 복지관을 찾는 것으로 답을 내리고 있었다.
3. 끝날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하늘이 우릴 도왔을까? 첫날부터 장마라고 해서 긴장을 했는데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았다. 둘째 날도 서귀포엔 아침에 비가 왔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땐 구름만 끼었을 뿐이었다. 마지막 날도 30mm이상 온다고 했던 비가 우리 음방 식구들의 기가 닿았을까? 제주도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아마 미천굴이리라. 다른 것은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 들었으나 미천굴만은 전해 듣지 못했다. 가이드가 미끄럽다고 못 들어가게 말렸지만 보고싶은 욕심에 박태복씨와 함께 기어이 들어가 봤다.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미천굴은 내 상상을 초월할 절경이었다. 다른 곳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었으나 미천굴만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위험함을 감수하고 들어가 직접 보니 황홀 그 자체였다.
가이드의 안내로 민속마을을 찾았다. 육지와 다르게 제주도 풍속은 너무나도 판이했다. 사투리를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살아가는 모습도 우리 육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붕이며 사는 모습이며 살아가는 방식이 제주도 고유의 색깔을 드러나게 했다. 마지막 코스인 코끼리 쇼를 보고 우리는 귀행길에 올랐다.
헤어질 무렵 가이드가 이런 말을 한다. 일십백천만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일은 하루에 한 번 선한 마음을 베풀고, 만은 하루에 만 보를 걸으라는 것이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실천을 안 한다. 이제라도 가슴에 새겨 실천해야겠다.
길고도 짧은 제주도여행, 첫 비행기 미지의 세계는 그렇게 벗겨졌지만 그 시간적 공간적 여운은 평생 함께 하리라. 돌아오면서 내 자신을 뒤돌아봤다. 좁은 울타리에서 발버둥치며 살았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들에게 아무 말없이 묵묵히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이도 있고, 그들을 돕는 후원업체가 있는가 하면 그들을 행정적으로 도와주는 선생님도 계시다.
자연은 위대하다. 구름사이로 내려다 보는 황홀한 대자연이 있는가 하면 공을 들여 만든 관광지 또한 우리가 관람하기에 필요충분한 자원요소가 아닐 수 없다. 훗날 다시 찾게 되면 보다 더 여유롭게 구석구석을 살피리라.
또 하나 제주자원봉사단원들에게 고맙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최팀장을 비롯한 복지관 관계자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다. 내가 늘 말했던 것처럼 나도 장애인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리라 다시 한번 가슴속에 새겨 본다. 말없는 나에 비해 호기심 많은 은경이와 함께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 잊지 못할 추억의 2박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