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관한 이야기

와인과 온도

역려과객 2014. 9. 12. 16:19
와인과 온도
 
와인을 마실 때는 와인이 적당한 온도로 되어 있는지 상당히 따지게 된다.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굴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꼭 와인만 온도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음식을 먹을 때 그에 맞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맛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뿐이다. 맥주나 콜라는 차게 마셔야 맛있고, 커피나 차는 뜨거워야 맛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미지근한 커피나 뜨뜻한 맥주를 맛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온도가 음료의 맛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더욱 예민한 맛을 지닌 와인에 있어서 적정 온도를 지키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적절한 온도의 와인을 서비스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특히 고급와인은 마실 때의 온도의 영향을 현저하게 받는다. 화이트 와인이 너무 온도가 높으면 생동감이 없어지면서 밋밋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지고, 레드와인이 너무 차면 무감각하고 전체적으로 부케나 텁텁한 맛이 거칠어진다. 일반적으로 와인의 온도가 낮으면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맛이 생기며, 신맛이 예민하게 느껴지고, 쓴맛, 떫은맛이 강해지지만, 온도가 높으면 향을 보다 더 느낄 수 있으며 숙성감이나 복합성, 단맛이 강해지고, 신맛은 부드럽게, 쓴맛, 떫은맛은 상쾌하게 느껴지지만, 섬세한 맛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와인의 온도는 에티켓에 관한 사항이 아니고 실질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보통 화이트 와인은 7-15 ℃, 레드와인은 15-20 ℃, 그리고 샴페인은 10 ℃ 이하의 온도로 마신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해진 법칙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타닌 함량이 많은 떫은 와인일수록 마시는 온도가 높아진다. 그러니까 보졸레나 루아르 같은 가벼운 레드와인을 차게 마실 수 있으며, 또 주변 기온에 따라 온도 감각이 달라지므로 더운 여름에는 화이트, 레드 모두 차게 마실 수도 있다. 그리고 와인을 감정하기 위한 테이스팅(Tasting)을 할 때는 온도가 너무 낮으면 향을 느끼지 못하므로, 화이트 와인도 차게 해서 맛을 보지는 않는다. 화이트 와인은 온도가 낮을수록 신선하고 델리케이트 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아로마나 부케는 덜 느껴지므로, 화이트 와인을 차게 해서 마시지 않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와인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들 인식하면서도, 와인의 운반이나 보관에는 아직도 수준 이하다. 그 동안 많은 와인이 아무런 장치 없이 장기간 항해를 거치면서 높은 온도로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유럽의 와인은 인도양을 거쳐 적도를 통과하기 마련이라 재수 없이 컨테이너가 가장 위에 실릴 경우 열대의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고, 국내에 도착해도 보온이 안 된 창고에서 또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비로소 숍이나 레스토랑에 왔을 때 그것도 비싼 와인만 냉장보관을 하니, 현지에서 마신 것과 맛이 다르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고, 수명이 짧은 화이트나 로제는 맛이 변해버린 다음이 될 수밖에 없다. 와인은 살아있는 술이라고들 말한다. 이 말은 와인에도 수명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와인의 종류에 따라 그 수명이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지만, ? 渚럿?높은 온도에 와인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니 기하급수적으로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말이다.
 
와인은 온도가 낮은 곳에서 일정한 상태로 보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진정 이를 실천해야 하는 수입업자나 판매상들이 그렇게 와인을 취급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비싼 와인 냉장고를 구입해서 와인을 보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마실 때는 화이트는 몇 도, 레드는 몇 도가 좋다는 등 호들갑을 떨면서 운반, 저장에서는 “나 몰라라”는 태도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얼마 전에 국내 한 업체에서 와이너리부터 국내 창고까지 완전 냉장으로 들여오니까 통관 관계자들이 이럴 필요가 있느냐면서 처음 봤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이렇게 들여 온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좋은 와인은 포도재배, 양조과정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입에 들어갈 때까지 사후관리도 철저하지 않으면 그 명성이 깨지기 마련이다.
 
김준철 원장 /한국와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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