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와 들기름
2006.10.26.
입맛이 없을 때 양푼에다 밥과 각종 나물을 넣고 고추장으로 비비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거기에 반드시 들기름을 치고 계란을 풀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양념으로 청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시골에서 살아서 들기름이나 참기름 등 각가지 곡식과 야채는 별로 사 먹어 본 일이 없는 듯하다. 제철에 나는 농작물은 항시 밭에 있으니까 신선하고 풍요로웠다. 상추와 부추는 기본이고 어쩌다 씀바귀 냉이 달래가 밥상에 올라 오기도 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특히 농부들은 바쁘기만 하다. 벼 탈곡부터 고구마, 참깨, 들깨, 팥, 콩에 이르기까지 정신이 없다. 콩도 종류가 너무나 많다. 백태, 흑태, 서리태, 홀애비콩 등 종류별로 분리해야 한다. 조금 후엔 배추와 쪽파, 갓, 무를 뽑아 김장도 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해까지만 해도 배추 160포기정도로 김장을 했다. 헌데 벌써부터 걱정만 앞선다. 과연 모친이 안 계신 그 빈자리를 누가 해 낼 수 있을까?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마는 구경만 해야 하는 이내 심정은 답답하기조차 하다.
지난 여름 장마 때 비가 온 이후로 서너달 가뭄이 계속 되었다. 그로 인해 농작물의 피해가 적지 않다. 배추도 파도 무도 예전만 못 할뿐 아니라 곡식도 수확이 상당히 줄었다. 올핸 일손이 많이 가는 녹두나 수확량이 적은 팥을 심지 않고 콩도 적게 심으셨다. 그리고 들깨를 많이 심으셨다. 헌데 가뭄이 지속되어 별로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가령 작년엔 들깨를 100평 심어 한 가마를 했는데 올핸 500평을 심고도 한 가마 반 뿐이 수확을 하지 못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달리는 현상이다. 내 것을 가지고도 인심을 잃게 생겼다.
들기름은 들깨기름이라고도 한다. 조제품은 짙은 갈색이고 정제품은 담황색의 액체이다. 들깨는 인도 ·중국 등이 원산지로 현재는 한국 ·일본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재배된다. 들깨는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들기름에서도 그 향기가 난다. 들깨에 들어있는 지방산은 고도의 불포화산으로 영양적으로 보아 필수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므로 질이 좋은 기름에 속한다. 그러나 그 성질로 보아 건성유에 속하므로 공기 중의 산소와 쉽게 결합하여 굳어진다. 유럽 지역에서는 들기름을 주로 공업용으로 사용하나, 한국에서는 참기름 대신 식용유로도 쓰고, 유지용, 페인트 ·니스 등의 재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들깨도 쓰임새가 다양하다. 각종 나물을 무칠 때는 항상 들어간다. 찹쌀들깨 옹심이. 생각만 해도 군침이 든다. 순대국에 비린내를 없애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깨를 첨가한다. 보신탕을 끓일 때나 추어탕을 끓일 때에도 항상 들깨가 필요하다. 이렇듯 들깨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항시 식탁에 올려져 있지만 그것도 중국산이 판을 친다고 한다. 중국산의 맛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제철에 나는 국산이 으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에 적당한 저온처리를 하고 기후에 알맞게 파종을 하고 제때 수확을 하고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작물은 음식이 아니다. 약이다. 보약이 따로 없다 그러길래 신토불이라 하지 않는가? 들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참깨며 고춧가루가, 대표적인 주식인 쌀도 미국산 먹어 본 사람은 아마 찾지 않을 것이다. 그 찰기 있고 윤기 나는 쌀을 삼사년 후엔는 우리도 사 먹어야 할 판이니 아찔하다.
농촌을 살리려고 국가에서 많은 정책을 썼다고는 하나 FTA와 더불어 정부에선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 밀려오는 농산물을 어떻게 감당 할 것이며. 농촌사람들의 심각한 고령화와 함께 사라지는 현실을 안이하게 대처하지 않았는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할 농민은 검게 타들어 가는 속마음을 표현할 길 없어 자살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나부터 반성을 해 본다. 대대로 이어 온 농토 아버지 때에 끊어질 판이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전에 마음의 수양부터 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훗날 마음의 수확을 거두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더 정진해야하는데 마음만 앞선다. 벌써 10월도 다 간다. 곧 겨울이 닥치겠지. 오늘 저녁엔 삼겹살이라도 구워서 들깻잎 상추와 더불어 부친과 함께 두꺼비라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