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남이 쓴 내 일기 생사의 일주일(1)

역려과객 2013. 6. 15. 16:18

 

남이 쓴 내 일기 생사의 일주일(1)
2006.03.31

 

 

 

오늘도 일기를 쓴다. 다시 뛰어 보자고....
중3인 72년 사월부터 써온 올해로 벌써 삼십년이 넘었으니 오래도 썼다. 파란만장한 일기 두 번의 중단 끝에 다시금 펜을 드니 감회가 새롭다. 첫번째 중단은 사고로... 두번째 중단은 부도의 위험 속에서...
나중에사 안  일이지만 동생이 그 일기를 대신 써 주었으니 그 우여곡절이야말로 30년의 숨은 공로라 하겠다

 

92년 4월 3일

 

사고!
돌이키고 싶지 않은 하루
오후 2시경 응급조치 후 고려대 병원 옮김. 10시 수술
절망적.
엄마 아빠의 절규!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우리에게 오빠를 앗아 가지 마옵소서!
우리가 그동안 소홀했던 모든 걸 용서하시고 다시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평생 오빠를 잘 받들것을 약속합니다.
모두들 착한 사람에겐 아무일도 없을 꺼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4월 4일

 

새벽 4시30분경 수술 끝남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음
계속 수혈. 자기 몸의 피는 남아있지 않았슴.
자기피로 만드는 의지가 생기기를 우리 모두는 빌고 또 빌었음.
아침 7시경 잠깐 의식이 있었다고 의사가 말해 주었다.
동네 분들이 와서 같이 울어주고 제발 살려 달라고 같이 기도했다.
오후5시 의식을 되찾았다. 우린 기뻤다. 의사 말로는 2주는 두고 봐야 한단다. 그치만 우리는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다리는 일주일 두고 봐야 하지만 제일 좋은 약은 다 투입한다고 하니 우리에겐 희망이 있었다.


4월 5일

 

모두들 알아보고 엄마에겐 '울지말자'고 약속까지 했단다.
가슴이 짓눌러 온다.
다리를 절단할지 모른다고 승희아빠가 얘기한 후론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오빠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염려스러운 점도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닐꺼야 희망은 몇 %야 계속 물어봐도 대답이 시원치 않다.
그래도 아니겠지.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벌은 제가 받아야 하는데 왜 오빠에게 내리시나이까?
밥 한번도 제대로 차려 주지도 않고 방 한번 치워 주지도 못하고 상냥한 웃음한번 던져 주지 못한 이 누이동생이 받아야 할 고통을 못난 동생들을 대신해서 그 착한 사람은 병원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모두 죄인입니다
관세음보살


4월 6일

오빠가 엄마에게 안심시키려는 듯이 생기가 있었다.
친구들과 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갔다.
오빠가 엄마에게 "울지 말자고 약속하자"고 했다며 아버지가 말씀하시며 흐느끼신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에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던 아버지께서 연신 흐느끼신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하시다.
병아리 한마리가 죽었다. 마음속으로 오빠 대신 죽었다고 생각하며 극락에라도 가라고 빌며 병아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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