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청남대와 응급시술

역려과객 2018. 12. 11. 17:18


 

청남대는 지난 봄 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친목회는 물론 내가 아는 분 중에 안 가 본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들꽃사랑마을이란 카폐에서 여러 번 소개되어 내 가까운 사람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곳이다. 헌데 숙원이었던 그 곳을 찾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처가 병원에 있으니 영 내키지가 않았다. 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수선했는데 인숙이가 처에게 전화를 했나보다. 처가 기분도 그런데 바람이나 쐬고 오란다. 해서 인숙이는 친정에 갈까하다 곧장 달려왔다. 정말로 고맙고 반가웠다. 나도 탈출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10시에 도착하여 바로 출발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많은 곳을 여행했네

올해의 숙원이던 청남대를 밟았네라

인숙아 네가 옆에 있어 오빠가 호강한다

    




 

처와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입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내가 입원하면 처는 의례히 간병을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고 많이 아프면 간병인을 부치기도 하지만 늘 함께 한다. 처가 간혹 여행을 하게 되면 나 혼자 집에 있지만 처를 두고 나 혼자 여행을 해 본적이 없다. 아마 10년 만에 처음인 듯하다.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출발하였다. 아침과는 달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하늘도 푸르고 상쾌하기조차 하다. 움츠렸던 내 날개가 펴지는 기분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죄를 짓는 기분을 감출 수 없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올해를 돌아보면 지난날을 회상하네

병마와 악전고투 낭만 또한 곁들였지

상쾌한 햇살 아래서 조여오는 먹구름

    




 

두 시간을 넘게 달려 청주에서 청남대 가는 산길은 가로수가 너무도 아름다워 차를 세우고 탄성을 질렀다. 비록 단풍은 졌으나 자연에 취해 사진 찍기에 바빴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중 하나인 청남대는 역사의 숨결과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다. 청남대는 1983년에 완공되어 대통령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대통령이 개방한 곳으로 하루 8천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성인은 오천원인데 복지카드를 내미니 그냥 들어가란다. 한 달 전에 산 휠체어를 타고 대통령기념관(별관)에 들어섰다. 처음 본 것이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와 국새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정해졌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고 국새는 국사에 사용되는 관인으로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며 그 나라의 시대성과 국력, 문화를 반영한다고 한다.

    




 

들어가는 산책길은 가로수가 뽐을 내고

기념관의 전시물이 저마다 유혹하니

청남대 기다림 끝에 눈요기를 만끽하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내 조부이시다. 그만큼 나는 조부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두 번째가 법정스님이고 세 번째가 박정회 전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의 기록이 모두 전시되어 있는데 다른 것에선 그분의 기록물을 잘 볼 수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분의 싸인이며 휘호 등등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들이 각 나라에서 받아온 선물들이 아름답고 예쁘게 전시되어 있었고 각 대통령마다의 생활상을 그려내고 있다. 역사관에서 나오는 길에 붓글씨로 쓴 삼사일언이란 수묵서를 사고 인숙이도 하나 사 주었다. 세 번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뜻인데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새기려 다짐을 해 본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기록물을 살펴보네

휘호며 싸인등이 내 마음을 뒤 흔드네

애국의 영전 앞에서 머리숙여 절합니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을까 하다 호두과자를 먹었더니 배가 고프지 않아 우리는 정문을 지나 휴양소로 올라갔다. 휴양소에 올라가니 감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인숙이가 이사가면 감나무를 사 달란다. 그러마 대답을 하며 정문을 지나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오각정을 지나 먼저 간 곳이 전두환 길이었다. 대통령들은 휴가를 갔다 오며 정책을 바꾸거나 인사를 단행하곤 한다. 전두환 전대통령때부터 이곳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대청호와 맞닿은 곳 전나무와 아름드리 산책길은 정말 조용하고 멋있다 처에게 전화를 거니 많이 아프다고 한다. 호흡이 가뿐지 얼굴이 벌겋다. 빨리 나아서 같이 다녔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청남대 본관으로 들어갔다. 본관 옆에 무척 큰 모과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200년이 넘은 모과나무는 이곳에서 가잘 오래된 나무란다.

    




 

감나무는 손을 벌려 인숙이를 유혹하고

오각정 전두환길 조용하고 운치있네

대청호 맞닿은 산책길에 불길한 처의 호흡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인 청남대의 본관은 휠체어를 타고 갔는데 관리인이 친절하게 맞아한다. 본관을 관람할 때는 신발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실내화를 신어야 하고 사진촬영도 금지되어 있다. 대통령은 이런 멋진 곳에서 휴가랄까 휴양을 즐기는구나 하고 부러움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지상2층 지하1층으로 2층은 대통령과 가족의 전용공간이고 1층은 접견실 회의실 거실 등으로 되어 있는데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아쉽기만 하다. 이곳에는 테니스장 수영장이 있어 휴양도 하고 수영도 하고 잔디밭에서 산책도 하게끔 잘 구비되어 있었다, 비록 단풍은 지고 쓸쓸하지만 배경만은 최고였다. 본 청와대의 60%로 지어진 청와대인 대통령역사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안내가자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으나 비탈길이 너무 심해 내려오다가 붙잡지 못해 둘 다 넘어졌다 주위 분들이 도와주어서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큰일 날 뻔 했다. 장애인이 다니기엔 너무 가파르다. 잉어장을 지나 청와대로 들어갔다

    




 

따뜻한 청남대는 휴양소로 최적이네

본관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엄숙하고

친절한 안내와 더불어 별장을 탐하노라

    




 

물 한잔을 먹고 1층부터 2층 지하까지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그대의 역사적인 기록을 자세하게 사진과 한께 전시되어 있었고 대통령집무실 회의실 등 각종 도서 등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안 먹었다.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 사 주어야지 생각을 하니 배가 고프다 인숙이가 가져온 사과를 먹으니 힘이 난다. 인숙이가 휠체어를 밀다 걷다 하니 어느새 세시가 넘었다. 몇 군데 더 들릴 수도 있겠으나 차가 밀릴 생각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한 번 도 아니 세 번 더 생각하여 판단하자고 스스로 결심하였다.

    




 

점심도 굶어 가며 청와대를 관람하고

볼 것은 무궁무진 사과로 당분섭취

인숙아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렴

    




 

오다가 배가 고파 밥을 먹기로 했는데 천안을 못 왔는데 네시가 넘어서 병원에서 빨리 오라고 한다. 직감이 이상하다. 처제가 전화를 안 받으니 내게로 온 것이다. 인숙이가 입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당이 떨어진 것이다. 빨리 가야 하는데 천안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배고픔도 모르거니와 인숙에게도 미안하고 헌데 차는 막혀 저녁 6시 반에 병원으로 돌아왔다. 처가 호흡이 안되고 까무러쳐서 죽기일보직전까지 갔단다, 처제가 와서 CT를 찍고 급히 사인을 받고 시술실에 들어갔다, 처제는 내가 술 취한 줄 알았다고 한다. 비틀거리고 술 냄새가 난다고 한다 시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처제가 가져온 약밥을 먹으니 나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급하게 연락받고 정신이 혼미하다

당 떨어져 입냄새에 갈피를 못 잡는구나

급한 불 껐다 하지만 가슴속은 타들어가네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려 의사가 나온다. 피는 어느 정도 지혈되었다고 한다. 간병인을 부치고 의사는 처에게 매달려 있다. 처는 초주검이 되어있고 아프다고 신음소리만 낸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내가 죽일 놈이다. 처는 피주사까지 링거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의사는 괜찮을 것이라 했는데 웬지 모르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처가 손 좀 만져달라고 해서 만졌을 뿐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처제가 가자고 한다. 해서 밤늦게 집으로 왔다.

 

사랑하는 반쪽이여 동반자여 힘 좀 내소

당신이 있었기에 내 삶의 의미이니

죽일 놈 내 탓을 하고 힘을 내어 일어나소

 

다음날 아침밥을 먹는데 처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빨리 병원에 가 보란다. 장모님은 배가 아파 병원에 왔는데 응급실이 부족하여 한림대병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담석이란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가 기다린다. 횡경막 아래 여러 군데가 터져서 다시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입원한지 8일째 바로 시술했으면 이런 일이 없을텐데 하며 혼자 중얼거리며 근 세 시간을 기다려 시술이 끝났다 중환자실로 가야한단다. 기가 막힐 뿐이다.

 

어쩌다가 나를 만나 이 고생을 하고 있소?

팔사구생 나도 있소 눈물로 호소하니

삶의 끈 잇기를 바라며 남은 평생 해로해요

 

    

 

여보 사랑해요

 

201811. 29 못난 남편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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