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부산에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두 달을 처와 나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는 간암 나는 간경화로 놀랐는데 끝내 골수검사끼지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퇴원을 하며 쉬고 있었다. 10주년으로 동양란을 사 주고 외식을 했을 뿐이다. 그래도 아쉬워서 인사동이라도 갈까 하다가 안양유유원지에 있는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어디 가는 것도 문제다 차가 없는 관계로 택시를 이용하고 또한 휠체어를 처에 맡기니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다. 그런 날 밤엔 나 몰래 끙끙 앓는다. 내가 미안해 할까봐 숨을 죽일 뿐 그런 것을 아는 나로서는 어디 가는 것이 겁이 난다. 박물관에 갔다가 우리를 중매를 해준 현석엄마를 찾아 가기로 했다.
안양은 내게 제 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와 군대생활 그리고 직장생활까지 10년을 넘게 살아서 구석구석 많이 다녔다. 고등학교까지 안양이 읍이었는데 74년 성남 부천과 함께 시로 되더니 40년 동안에 안양은 참 많이도 컸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고모님들과 자취를 했었는데 막내고모님이 유유산업을 다녔었다. 그 유유산업 자리에 안양박물관이 생겼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택시를 불러 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빨갛고 노란 단풍잎이 하나 둘 지고 있었다. 처가 말하는 만추의 계절 11월의 중순 날씨는 참으로 따뜻하다. 3층으로 되어 있는 박물관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유적을 살피며 안양이 자리를 잡게 된 경위와 아울러 유물들을 살피며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가 다니던 시절은 삼원극장이 가장 큰 건물이었는데 하며 지난날을 되새기며 세세히 살펴보았다.
이어 우리는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갔다. 그의 유명한 말씀 한 구절이 있다. ‘삶이란 사는 이에게 중얼거리고 때로는 아양도 떨며 계절과 시간이 바뀜에 따라 꾸준히 인상을 바꾸어가며 정이 깊이 속으로 숨어드는 그림으로 잊혀질 수 없는 시간들이 축적되여 삶에의 신비와 조화를 인간의 근원의 착함을 되새겨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건축가로서 세계를 다니며 많은 것을 배우며 삼일로 프랑스대사관 등 많은 것을 건축물을 남겼다.
우리는 특별전시관으로 향했다 그림을 모르는 문외한으로 무엇을 알겠냐마는 낙원의 이편이란 제목으로 특별전시를 하고 있었다. 미술, 그림 나에게는 다른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그림이 참으로 마름답고 멋지게 그렸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안양유원지는 안양예술공원으로 탈바꿈 되었다. 옛날에 병목안과 더불어 산막사등 안양유원지는 소풍을 많이 갔던 곳이다 예술공원은 관악산 둘레길과 관악수목원이 있고 경기도 문화재인 만안교 그리고 삼막 먹거리촌 등이 있다. 그옛날의 포도밭은 아예 자취를 감추었고 많고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만추의 아름다움이 가을 정취를 더하게 한다. 우리는 콘 하나로 냇가에 흐르는 물을 감상하며 현석이네로 갔다.
현석엄마는 처의 중학교 동창이란다. 조그만 식당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녀에게 늘 빚진 마음으로 산다. 오리백숙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맛있게 먹고 인사하며 가을밤을 불빛에 의지하며 휠체어를 몰며 걷고 또 걸었다. 처가 살던 곳 아름드리 숨어있는 옛 추억을 더듬으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만들었다. 처는 정말 마음이 고운 아름다운 여자였다. 10년을 금이야 옥이야 하며 불평 없이 살아준 고맙고 소중한 사람 우리는 박달시장까지 와서 택시를 탔다 장장 6시간을 밀었으니 내일은 못 일어 날 듯싶다. 처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여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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