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을 살아도 이렇게 더운 날씨는 처음 본다. 올해는 유난히도 덥다. 거의 한 달이 넘게 폭염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코로나가 갈수록 태산이다. 하루 신규확진자가 2000명이 넘어섰다. 무더위와 코로나로 인해 고생하는 서민들이 고통을 받는데 이런 피해는 누가 보상할까? 갈수록 태산인 것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데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은 하루 10만명, 일본도 2만명을 넘었다니 그것에 위안을 삼을까? 답답하기만 할 뿐 뾰족한 묘수가 없다.
나는 스포츠를 매우 좋아한다. 비록 할 줄도 모르고 하지도 못하지만 어려서부터 육상의 한국신기록은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다. 축구 야구는 물론 농구 배구 골프 바둑 장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스포츠는 거의 다 좋아하고 시청한다. 이 무더위에 그래도 올림픽을 보면서 즐기곤 했다. 첫날 양궁 혼성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며 웃음과 환호와 감동을 만끽했다. 마지막 전날 근대5종에서 동메달을 딸 때까지 마지막 날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까지 모두 시청했다.
꼴등을 했는데도 여자농구는 칭찬을 받았고 같은 4위를 했는데도 여자배구는 칭찬을 받았는데 야구는 갖은 비난을 받았다. 왜일까? 국민들은 알고 있다. 누가 지는 것을 좋아하겠냐마는 야구인 김응룡씨가 한 말처럼 배에 기름이 들어가서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헌데도 개운치가 않다. 선수 뽑을 때부터 잡음이 많았다. 그런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최선을 다했겠지. 그러나 여운이 무척 남는 것은 왜일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스포츠는 더 만약을 생각한다. 승부가 나고 결과가 나타난다. 가령 축구에서 수비수 김민재가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필요가 없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기고 지는 것은 물론 운도 따라야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안 된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축하를 받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4위라는 좋은 선수들에게 국민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었다. 특히 비인기 종목에서 많이 나왔다. 육상에서 수영에서 역도 등 여러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프로야구 후반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롯데가 요즈음 잘 나간다. 지긋지긋하던 투수 층이 두터워져 그래도 5강 싸움엔 해 볼만하다. 10여년 전부터 이대호를 좋아했다.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때 추신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갖은 봉사와 후원으로 타의 모범이 된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1대의 장효조, 2대의 김경기를 지나 이대호가 속해있는 롯데를 응원하기 위해 저녁마다 TV 앞으로 다가선다. 매번 꼴찌를 밥 먹듯이 했는데 저만치 5강이 보이니 자연 신이 난다.
시흥시에는 요즈음 아파트 붐이 한창이다. 장현지구 목감지구 배곧지구 은계지구 등 여러 곳에서 아파트를 짓고 분양하고 한참 활동하지만 LH사건으로 주춤하는 시점이다. 인구도 많이 늘어났다. 내가 살고 있는 목감도 10년전에 비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건강이 안 좋은 나는 어쩌다가 나가면 목감 신도시는 매번 다르다. 주민센터가 새로 지어졌고 공원이 들어서고, 파출소와 도서관 등 많은 시설이 들어섰다. 논과 밭이었던 이 곳이 저렇게 변할 줄은 전혀 몰랐다.
어제는 처 이모님이 시골에서 오신다기에 20개월 만에 처가에 가서 장모님과 이모님께 인사드리고 저녁까지 얻어먹고 왔다. 동서가 와서 바둑을 두고 갔다.
오늘은 광호가 바닷가를 구경시켜 준다더니 저녁 5시 반에 왔다. 코로나 4단계라 저녁엔 음식점도 못 들어간다. 바닷가 구경
같은 시흥시이지만 시흥시는 주로 세 군데 권역으로 나눈다. 가장 큰 곳이 안산시와 가까운 정왕동 쪽이고 부천시와 가까운 신천동 쪽이다. 옛날에 군청이 들어섰던 곳이다. 그리고 안양시와 가까운 목감동 쪽인데 같은 시흥시라도 중고등학교를 따로 다니니 별로 왕래가 없다. 나만 해도 중고등학교를 안양으로 다녔을 뿐 신천동이나 정왕동은 별로 가 본 적이 없다.
오이도를 못가서 배곧동이라는 곳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는데 그 곳에 한울공원이라고 요즈음에 생겼다. 광호가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보통 낮에 왔었는데 오늘 저녁노을을 보니 황홀하기만 하다. 언제 이런 곳을 다시오나 생각하니 가슴 쓰리지만 그래도 바다 풍경을 보니 날아갈 듯 기쁘기만 하다. 광호는 우리에게 사진 찍어주기에 바쁘다. 먼 하늘과 바다풍경을 머리와 가슴속에 새겨 넣기에 바쁘다.
코로나가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오이도를 지나 대부도로 들어섰다. 우리의 단골집인 수호할머니댁에서 맛있게 먹을 텐데. 처와 처제만 들어가서 칼국수를 사서 집에 와서 끓여 먹기로 하고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처가의 담화는 늘 재미있다.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차 안에 있는 내 귀는 언제나 즐겁다. 집에 와서 끓여 먹으니 정말 맛이 있다. 고스톱을 치다가 9시가 넘어 그들은 돌아갔다.
처가 사다 준 여름바지를 입고 다녔던 생각을 할 즈음에 여동생에게서 2년여 만에 전화가 왔다. 땅 팔고 남은 돈에 대해서 자기 신랑이 고생했다고 하며 자기가 다 갖겠다고 한다. 빌어먹을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 다 가지라고 하고 욕을 한바탕하고 끊어 버렸다. 괘씸해서 잠이 오지 않아 소주 반 병 먹을 잠을 청했다. 인생사가 날씨만큼이나 개었다가 흐리기도 하고 그러려니 만감이 교차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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