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강원도 고성을 다녀와서

역려과객 2021. 8. 26. 17:06

 

 

 

지난봄부터 처는 노래를 했다. 여름 휴가를 막내네 가족이랑 강원도에 가자고. 그런데 그게 쉬운 것만이 아니다. 막내네도 고려해야 하고 코로나 때문에 함부로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3년 전 강원도에 다녀온 것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막내네와는 148월에 천리포해수욕장을 다녀왔고, 188월에 평창을 다녀 왔었다. 올해는 23일로 다녀오자는 것인데. 제수씨는 한술 더 뜬다. 고성에 동생네가 사니 거기에 들리자고 한다. 해서 다녀오기로 했는데 코로나의 기승으로 당일에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밤 우리 부부는 거의 뜬 눈으로 날을 세웠다. 처는 어디를 간다고 하면 항상 그렇다. 병원에 간다고 해도 잠을 안 자는데 하물며 놀러 간다는데야 얼마나 신이 날까? 설레임 반 기쁨 반일 것이지만 나는 화장실이 문제이다. 항문까지 다쳐 오전에만 서너 번 큰일을 봐야하기 때문에 아침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데 새벽에 간다고 하니 겁이 났다. 처는 새벽 네시에 움직인다. 나 또한 5시에 일어나서 일을 보고 목욕을 했다. 전날 일기예보를 보니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했다.

 

 

6시에 나가니 막내는 안 오고 비만 내리고 있다. 모처럼 놀러 가는데 비가 올게 뭐람. 하며 20분을 기다리니 막내네가 왔다. 모두들 들뜬 기분이다. 우리는 영동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주로 처와 제수씨가 이야기를 한다. 가족사에 대한 뒷 담화를 하며 여주휴게소에 도착했다. 된장찌개로 아침을 먹었는데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우산 하나를 잃어버렸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강원도로 달려 나갔다. 정말 이상한 것이 비오는 토요일 오전 붐빌 줄 알았던 도로는 한산하기만 하다. 잠깐 조는 사이에 양양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이 열시였다. 일찍 떠나니 정말 일찍 도착했다. 휴휴암이라는 곳인데 나는 처음 들어본다. 낙산사와 하조대는 몇 번 와 봤는데 이런 곳이 있다니 신기할 뿐이다.

 

 

휴휴암에서 초를 사서 처와 막내와 제수씨는 법당으로 들어거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나는 밖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비만 안 왔으면 좋으련만 비가 와서 전화도 못 꺼냈다. 나는 우두커니 경내를 바라보기만 했고 처와 막내 그리고 제수씨는 관세음보살님전 등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막내는 유튜브에서 향어 물고기에 밥을 주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비가 와도 사람은 많이들 찾아 왔다,

 

 

초를 사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기도하네

비 오는 휴휴암의 은은한 풍경소리

평온한 암자에 누워 쉬어가면 어떨까?

 

 

 

나는 우두커니 암자를 살펴보았다. 스치는 바람결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비가 오지 않았어도 비탈길이라 가지 못했을 것이다. 염불소리, 목탁소리, 종소리, 빗소리, 새소리, 가을이 오는 소리, 과일이 익어가는 소리, 스님의 독경소리, 파도 소리가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앙상불이 되고 자연의 소리가 되어 내 마음을 여물어 가게 한다. 정말로 평화롭고 탁 트인다. 15년 전 지리산에 갔다가 전라도 망해암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거시서 서해를 봤는데 이곳 휴휴암에서 동해바다를 보다니 정말로 황홀하고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며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다. 11시가 넘어 고성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고 줄기차고 온다.

 

 

휴휴암은 아름답네 풍경은 천하절경

한 폭의 그림이요 정이요 사랑이라

가을이 오는 소리와 평화로운 염불소리

 

 

12시가 넘어 고성에 도착했다. 막내의 처남이 운영하는 베짱이 문어국밥집인데 리조트를 겸하고 있다. 여기에 온 지 수 십년이 되었다는데 자리를 잡은 듯 하다. 문어 숙회와 문어국밥을 먹었다. 숙회도 맛이 있고, 국밥도 먹을만 하다. 당초에 23일로 잡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당일치기로 했다고 하니까 고성은 2단계라고 한다. 매스컴에서는 고성 양양으로 몰린다고 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렇지가 않아 서운하기만 하다. 사돈은 정말 바쁜가 보다. 배를 타고 나가더니 금방 와서 다른 일을 한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입에 녹는 문어숙회

비가 와도 주인장은 바쁘게 움직이네

구경을 어디서 할까 관전하는 나그네

 

 

우리는 이북에서 온 머구리아저씨네 가려고 하는데 잘 아냐고 물어보았다. 잘 안다며 처음에는 자연산이었는데 지금은 남의 물건을 떼어다 판다고 그럴 것 같으면 아는 곳을 소개하겠다며 저녁에 이곳에서 회를 먹자고 한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사돈에게 물어보길 잘 했다.

 

 

두시 쯤에 우리는 북으로 달렸다. 고성은 우리나라 최북단이다. 삼팔선을 훨씬 지나 이북과 맞 닿은 곳 통일전망대에 가기로 했다. 비는 줄기차게 내린다. 통일전망대 앞에 가서 표를 사야 하는데 그 거리가 꽤나 멀다. 비만 안 오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경 했을텐데 비를 맞고 휠체어를 탈 수가 없다. 밀어 부치기에는 비가 너무 온다. 할 수 없이 발 길을 돌려야 했다.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60평생 처음으로 강원도 고성 최북단을 왔는데 통일전망대를 볼 수 없다니.

 

 

난생 처음 아름다운 고성을 찾았노라

비 오는 바닷가는 파도가 넘실되네

꿈에 본 통일전망대 돌리다니 애석하다

 

 

발길을 돌려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이 바다가 저수지 같기도 하고 만 같기도 한 신비한 곳이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어디를 갈지 모르겠다. 가 볼만한 곳이 너무도 많다. 해양 박물관에 가 보고 싶었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가족들의 처분에 따라야 했다. 이 곳은 볼거리가 많다. 이승만대통령 별장을 비롯하여, 이기붕별장, 김일성별장, 화진포 생태박물관 등 이 곳만 돌아도 두어 시간 걸리겠다.

 

 

주차장에서 내리니 비가 그쳤다. 휠체어를 타고 바다를 보니 서해 바다와는 또 다르다. 넘칠 듯한 가슴은 터질 것 같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저 바다의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은 어디일까? 안개가 낀듯 먹구름이 메아리로 돌아와 비가 되고 파도와 부딪치는 비는 운치를 뽐낸다. 처와 막내네는 김일성별장에 올라가고 올 때까지 바다와 파도를 한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생태박물관이라도 가 보고 싶었으나 비로 인하여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화진포에 다다르니 볼 것이 너무 많네

한 세상 흘러가는 구름인냥 바람처럼

터지는 내 가슴을 보며 자연은 뭐라 할까?

 

 

우리는 황태를 살 겸해서 거진항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이 너무도 아름답다. 가끔씩 나타나는 큰 바위와 파도가 부딪치는 모습이 경이롭다. 우리는 차를 멈추고 파도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 속에 담기에 바빴다. 내 평생 멀리서만 보았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파도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것이 신기할 뿐이다.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자연은 역시 위대하다. 정말 우리나라는 각지에 볼 것이 너무도 많다. 정말 잘 왔다고 재차 말하며 기분을 만끽했다. 강원도 바닷가는 '진' 자가 들어가는 해수욕장이 많은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멋있고 아름답다.

 

 

넘실대는 파도소리 거진항에 멈췄네라

파도는 바다에게 놀이하자 손짓하네

신비한 자연의 소리를 이곳에서 담아가네

 

 

거진항에서 황태와 오징어포를 사고 우리는 고성에서 가장 크다는 커피숍인 바다정원에 도착했다. 수천평이나 되는 정원에 수많은 인파와 황홀한 비경이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어 마음속에 박힌다. 이 넓은 정원이 개인의 소유라니 놀랍기만 하다. 우리나라에도 못 입고 못 먹는 사람이 무척 많은 줄 안다. 그에 비하면 가진 자의 끝은 어디일까? 빈부의 격차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그 옆에 빈 폐가 있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바다정원을 뒤로 하고 사돈댁으로 가려는데 볕이 난다. 햇빛이 조금만 일찍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우리는 사돈댁에 도착했다. 오후 6시였다.

 

쉬는 곳이 이 곳인가? 드넓은 바다정원

꾸민것도 아기자기 구름도 쉬어가네

피와 땀 어우려진 곳에 눈물도 있으리라

 

 

사돈은 우리에게 생선회를 준비했다. 강원도 특산물 여러 개를 준비했다. 술과 함께 먹는 생선회는 달기만 하다. 사돈은 이곳에서 고생을 엄청 했나 보다. 수십년 쌓은 공이 이제 빛을 내는 듯하다. 제수씨보다 막내와 더 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분이 주거니 하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주로 듣기만 했다. 막내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십 수 년만에 웃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로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볼 때 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업 실패만 안했으면 항상 저런 모습일텐데...

 

 

멀리서 찾았다고 사돈께서 반겨주네

수십년을 공을 들여 쌓아 오신 밑바탕은

보람의 영근 탑되어 고성을 빛추네

 

 

사실 나는 말을 할 줄 모른다. 할 줄 모르니 더 안 하게 되고 정말 필요한 말만 한다. 두어 마디만 하면 할 말이 없다. 가장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도 마찬가지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형제와도 만나면 인사만 했지. 농담이나 하다못해 주고받는 대화도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하며 웃으며 한잔하는 모습이 편하고 진지해 보였다. 역시 처남 매부 사이가 형제보다 더 편한가 보다.

 

 

젊어서는 언제봐도 싱글벙글 웃었었지

오랜만에 웃는 얼굴 바라보니 기분 좋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힘을 내자 막내야

 

 

두 시간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도 다섯 잔이나 마셨다. 취기가 와서 차안으로 들어갔다. 모기가 무는 대도 잠이 들었다가 깨 보니 8시 반이다. 막내에게 전화해서 가자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술잔이 길어 9시에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양양 고속도로는 처음 타 본다. 아무튼 오늘 신나는 날이다. 비가 오는 토요일밤 이렇게 한가할 줄 몰랐다. 제수씨가 쉬지 않고 운전을 하니 편하게 다녀왔다. 집에 오니 밤 12시였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막내와 제수씨에게 고마움과 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오늘처럼 막내가 편하게 웃을 날이 빨리 오기만을 간절히 빌어본다. 올해 들어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

 

'해운의 일기 그리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개월같은 12일 그리고 2년같은 이틀  (0) 2021.10.15
익산과 군산을 다녀와서  (0) 2021.09.07
베곧 한울공원  (0) 2021.08.20
조상님이 물려주신 선물  (0) 2021.06.16
못다핀 꽃송이들  (0) 202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