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나오는데 길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 화요일에 만났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처에게 전화를 넘겼다. ‘모레 바쁘지 않느냐’고 묻는다. ‘모레 이모 안산 병원에 간다’고 하니까 갑자기 형이랑 같이 익산에 간다고 같이 가자는 것이다. 해서 갑자기 일정을 바꿔 어제 병원에 다녀 왔다. 지난 월요일에도 순환기내과 교수를 만나고 왔다. 부위가 너무 안 좋아 수술하기는 너무 위험하고 약으로 일단 치료하자고 한다. 약만 타 왔다. 내 컴퓨터가 해킹을 당해 길호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자기가 와서 직접 봐 주겠다고 하며 달려왔다. 내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조카들이 고맙기만 하다.
사고와 병 역경딛고 일어서는 새옹지마
약으로 치유하고 운동으로 극복하매
천사인 동반자 만나 백년해로 꿈을 꾸리
익산 하면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77년 이리역 폭발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재물 손실이 커서 그 이후로 지명을 익산으로 불리게 되었고 또 하나는 백제 왕궁으로 동양에서 가장 큰 미륵사지 석탑이 있었는데 고려 때 전쟁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하는 내 얄팍한 지식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혼자 생각했는데 길호는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잔뜩 기대하고 그들을 기다렸다.
조카들의 도음으로 전라도를 밟아 보네
볼 것도 먹을 것도 아름드리 수를 놓네
구월 초 맑은 하늘이 여행길을 재촉하네
정확히 아침 아홉시에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서가 안 보인다. 갑자기 일이 생겨 회사에 출근했다고 한다. 아쉽기만 하다. 조카들하고만 여행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길호와는 많은 여행을 했지만 광호의 차로 먼 거리 여행 또한 처음이다. 광호가 기사 노릇을 하고 길호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광호는 연차를 내고 길호는 모든 것을 기획했다. 몇 시에 어디에 도착하고 언제 무엇을 먹는 등 일일이 조사하여 우리를 안내한다. 정말로 고마운 조카들이다.
9월 초가을 날씨는 쾌청하다.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한 초가을 날씨는 화창하기만 하거니와 바람도 적당히 불고 하늘의 구름은 가히 환상적이다. 아마 이런 구름은 평생 처음이 아닐까 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전라도로 달려가는 고속도로 내내 뭉게구름이 되었다가 꽃 구름이 되었다가. 조각구름이 되었다가 하며 우리 네 명을 감동시킨다. 마치 맑게 자란 어린이가 수채화를 그려 놓듯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동서가 같이 못가서 미안하다며 잘 다녀오라는 안부 전화가 왔을 뿐 우리는 구름을 감탄스럽게 예기하는 동안에 익산에 도착했다. 11시 40분이다.
화창한 가을날씨 구름은 흩날리네
꽃 구름 조각구름 수채화 된 뭉게구름
구월초 자연 앞에서 감동받는 나그네
우리나라에 보석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1인당 입장료가 3000원인데 1인분만 냈다고 한다. 나는 보호자가 필요하고 처는 장애인으로 세 명이 무료란다. 박물관이라서 조그만 건물인 줄 알았다. 우리는 입이 벌어졌다. 보석은 여자들에겐 보석하면 사족을 못 쓰지만 남자들에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 자수정부터 순금에 이르기까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보석들이 여기에 다 모였다.
보석박물관은 우리나라에 이곳 밖에 없는데, 2005년도에 개관하여 약 12만점의 각종 희귀한 보석과 진귀한 화석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처는 처제가 왔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는 보석들을 보며 사진속에 담기에 바빴다. 견물생심이라 했지만 정말 갖고 싶은 것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내가 두 번째로 존경하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생각하며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용임 현숙 등 수 많은 연예인들이 기증한 물건들도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비취에 사파이어 자수정에 에메랄드
수 많은 보석들이 예서제서 광을 내네
무소유 가르침 받아 마음속에 간직하리
우리는 눈이 즐거움에 모두들 싱글벙글하며 박물관을 나섰다. 내가 차에 오르고 내리면 세 사람 모두 내 곁으로 달려온다. 처는 늘 그렇지만 광호나 길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느 땐 미안할 정도로 나를 부축이며 휠체어에 태운다. 아무리 조카라 해도 어떻게 저렇게 반듯할까? 두 조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길호의 안내로 손두부를 먹기로 하고 미륵사지에 가기로 했는데 가다가 처가 잠시 멈추란다. 주차장에 차가 많다고 그리로 가자고 한다. 해서 차를 돌려 그 곳으로 들어갔는데 금요일인데도 식당 안은 시골치고 꽤 넓은데 사람이 무척 많다. 우리는 김치찌개를 시키고 처는 고등어구이를 시켰다. 김치를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다. 서로 맛이 있다고 잘 왔다고 한마디씩 거든다. 서동생선구이찌개라는 식당인데 이곳을 지나간다면 다시 들르고 싶은 맛집이다.
박물관을 뒤로 하고 먹을 것을 찾아가네
시골의 정을 느낀 먹거리가 꿀잼일세
구름과 김치찌개가 미소로 선사하네
길호가 미륵사지에 두시에 예약되었다고 시간이 조금 남아 커피 한 잔하자고 해서 광호가 찾은 찻집이 10여분을 달려갔다. 커피 한 잔 마시러 이렇게 멀리 가냐 했는데 찾아가길 잘했다. 찻집이 고풍스러운 왕궁다원이라는 초가집인데 초가 여러 채를 찻집으로 만들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찻집이었다. 내가 조금 불편할 뿐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차도 품격있게 고급스런 찻잔으로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차를 마시며 우리는 조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광호가 동적이라면 길호는 정적이라 할 수 있다. 처는 동적이고 나는 정적인 면이 비슷하다. 광호는 이번 영어 시험에 4급을 땄다고 한다. 3급이 목표인데 다음 달에 도전하겠다고 하며 내년에 기능장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길호는 전국 박물관 투어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생각은 모두 다르나 주관이 뚜렷하다.
고풍스런 왕궁다원 정성이 맛깔나고
젊은이의 열정들은 파도파도 끝이 없네
조카들 착한 효심은 대로 이은 미덕이리
처가는 처남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 남자들이 없다. 동서는 조씨가 아닌 도씨 집안에 근 40년을 아들 겸 사위로 많은 일에 힘써 왔다고 한다. 처가 늘 말한다. ‘제부는 우리 집안의 기둥이요 아버지요 오빠 같다’고 이야기한다. 25년을 장인의 산소에 말없이 벌초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인가를 대충 알 수가 있다. 처제는 90이 넘은 장모님을 모시고 산다. 이런 것을 보면서 자란 조카들이 무엇을 볼까? 광호는 직장생활 10년만에 빌라를 사서 세를 주고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엔 운동을 하며, 밤엔 공부를 하여 카이스트에 졸업을 했고 친구들 결혼 축가는 도맡아 한다고 한다. 길호는 일어를 완전정복하고 라이센스를 땄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이모와 이모부를 감동시킨다.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두시 반에 익산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익산은 경주 부여 공주와 더불어 대한민국 4대 고도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옛날 벡제의 왕궁임을 보여주듯 옛 궁터답게 꾸며져 있다. 국립 익산박물관안으로 들어갔다. 각종 문화재와 사리와 사적 등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하다. 2009년에는 석탑 헤체보수과정에서 수많은 사리 등이 발견되어 이곳이 미륵사 창건 사실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선조들의 지혜로움 지금도 알 수 없네
미륵사지 박물관에 묻혀진 혼령과 넋
아무리 살펴 보아본들 그 뜻을 알겠는가?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을 보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선조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었고 많은 유물들을 보며 감탄을 했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미륵사지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출입금지란다. 멀리서 미륵사지 석탑을 볼 수밖에 없었다. 관람하고 나니 세시 반이다. 우리는 길호의 안내로 군산을 가기로 했다.
군산은 20여년전 페인트가게를 할 때 몇 번 왔던 곳이다. 페인트 100말 신너 100말을 실고 직원과 함께 두어 번 갔었는데 콘테이너 사장님이 멀리서 왔다고 회를 사 주셔서 먹은 기억이 있다. 군산은 우리나라 4대 항구였다. 김제 평야가 있어 곡창지대로 그것을 싣고 일본으로 내왕했던 곳으로 지금도 일본식 건물이 다른 곳보다 유달리 많다.
미륵사지 못 가보고 멀리서만 바라보네
머릿속에 그려 놓고 가슴속에 담아 놓네
추억을 남기고 나서 군산으로 향하네
군산으로 가는 도로 위에서 차 안에서 구름을 보니 더더욱 아름답다. 이 가을이, 이 여행이, 전라도행이 우리를 반기는 냥 시시각각으로 변하게 하여 우리를 흡족하게 한다. 첫 번째 가는 곳이 박물관이라 하니까 광호가 웃는다. 웃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몰라도 동생이 하고픈 대로 형은 운전만 하고 우리는 구름속을 바라만 본다.
세관원에 주차를 하고 우리는 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갔다. 가는 곳마다 코로나검사로 우리를 멈추게 한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아니 올해는 안 끝날 것 같다. 역사박물관은 1930년 약 10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한다. 군산이 그 당시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알 수가 있었다. 그 시절의 풍습은 마음속으로만 새겨야 했다. 2층과 3층을 돌아보고 근대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옛날에 이곳이 일본은행이라 한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많은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군산을 바라보니 옛 생각이 떠오르네
역사는 어디가고 일본풍만 남아있네
그래도 추억을 더듬어 향수를 느끼노라
다음으로 향한 곳이 일본풍 절인 동국사였다. 계단이 있어 안 간다고 하니까 처는 덩달아 조계종이 아니라고 안 간다고 한다. 길호가 갔다 오더니 계단도 낮고 조계종이라 하며 휠체어를 꺼낸다. 할 수 없이 절에 들어가니 처는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전에 그리고 이곳 저곳에 절을 한다. 나도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길호는 일본을 많이 좋아한다. 혼자 일본도 다녀온 적도 있다. 절을 안하고 사진만 찍는 것이다. 5시 반이 되어 음식점을 찾았다.
일본풍의 동국사에 잠시동안 머무노라
우리는 절을 하고 조카들은 구경하네
그래도 이 순간만은 마음이 숙연하네
광호는 이곳에도 왔었다고 하며 중국음식점이 맛이 있다고 한다. 지린성을 찾아갔으나 네 시에 문을 닫는다고 써 붙이고 문을 닫았다. 다른 곳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서 다른 곳으로 찾아간 곳이 진성원이라는 중국집이다. 우리는 삼선쨤뽕과 간짜장과 백알 하나를 시켰다. 하루종일 짠 길호의 안내는 우리에게 어깨춤을 추게 하였다. 배가 고픈지 모두 맛있게 먹는다. 백알 두 잔이 짜릿하게 한다.
마지막 코스인 초원사진관에 들렀다. 한석규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촬영된 이곳이 명소가 되어 늦은 저녁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여러 포즈를 취하고 흔적을 남겼다. 이곳은 영화도 여러 편이 촬영되었다고 하며 명승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 저곳 잘도 찾는 조카들이 고맙구나
영화로 명소되어 관객들이 붐비노라
우리도 사진관앞에서 흔적을 남겼네라
나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5대 제과점이 있다고 한다. 이성당이라는 곳이 이곳 근처에 있단다. 길호는 그 곳에서 할머니 드린다고 빵을 5만원 어치를 샀다. 오전에 기름값 10만원을 썼는데 오늘 과잉한다. 길호가 돈 쓰는 것을 처음 본다. 기사는 돈 쓰는 것이 아니라며 돈을 내는 길호가 다시 보였다. 돌아오는 길은 한산하기만 하다. 나는 야구 중계를 보면서 오니 지루하지가 않다. 하루 온종일 기쁘고 놀랍고 감격스런 날이다. 특히 조카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다니 횡재한 날이 아닌가 싶다. 그들에게 글로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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