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해의 여름과 달리 올해의 여름은 지리한 병마와 싸워야 했다. 6월부터 배앓이를 시작하더니 급기야 응급실로 실려갔고 7월에는 화장실에서 넘어진 것도 모르고 일주일간을 지체하다 응급실에 실려 가더니 정신을 잃고 중환자실에 신세를 져야 했다. 정신을 잃은 것은 30년전 사고이후 처음이다.
지지난 주에 막내네와 여행을 가고 블로그에 올렸듯이 나는 내 모든 것을 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기대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요즈음처럼 피부에 느낀 적은 없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지만 근근이 모아두면 한꺼번에 병원비를 다 들어간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안타깝고 가엾기 그지없다. 내가 오래 못 살 것 같아 모친과 처에게 고맙고 송구하다고 블로그에 쓴 글을 보여 주었더니 왜 그러냐며 한참을 운다.
지난주엔 우리 집안에서 가장 큰 행사가 있었다. 우리 집안의 장손인 재현이가 결혼을 했다. 지난주 초 고대병원에 새벽 7시에 갔다가 오후 세시에 집에 왔다. 요즈음 처가 피곤하다고 하여 주사를 맞고 오라고 했더니 병원에 가니까 코로나 걸린 것 같다고 하여 다른 병원에 갔더니 양성이란다. 지지난 주 금요일에 걸렸다고 한다.
그날은 작은 집에 가서 인사드리고 처 임플란트 할 곳에 소독약을 바르고 집에 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둘 다 넘어져 젊은 대여섯명이 우리를 도와 주었다. 이곳 저곳이 많이 깨졌지만 처 역시 많이 다쳤다. 그 이후로 많이 아파했다.
문제는 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차질이 생겼다. 재현이 결혼식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에게도 제수씨에게도 재현에게도 미안하기 짝이 없다. 할 말이 없고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동생에게 서운하다. 저승과 싸우고 있는 와중에서도 전화나 문자 한 글자 없다. 형은 맨날 아픈 사람이라도 치부해도 할 말은 없다. 전화를 해서 “형 친지 어른께 연락을 해 주어요” 하면 기뻐서라도 작은집과 고모님들 이모님들께 안부 삼아 전화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고모님께 들으니 카톡으로 보낸 청첩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다. 나는 그래도 작은집과 고모들에게 전화를 하고 못가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라도 잘 치뤘다고 전화를 하는 것이 어른께 대한 예의인데 그나마도 없다. 그것도 내 부덕의 소치이겠거늘
처는 일주일 내내 무척 아파했다. 밥을 못 먹었다. 처에게 의지하던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많이 아픈데도 안 아프다며 빈 말이나마 따뜻하게 말하고 비록 밥은 따로 먹고 잠도 따로 자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기운을 차리려면 밥이든 뭐든 먹여야 했다.
코로나에 확진된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처가 너무 아파한다. 가뜩이나 약한 처도 여러 가지 병으로 수술도 받았지만 이보다 더 아픈 적은 없다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서 먹고 싶은 것을 찾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처의 친구의 박선생님이 안산에서 죽을 사서 현관 앞에 놓고 가고 맨날 전화를 해 주신다. 라라라 커피숍의 친구가 된장찌개를 사서 현관에다 놓고 가셨다. 매운탕 사장님이 아파트까지 손수 배달해 주셨다.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 잊지 못할 분들이시다.
일주일을 앓고 나던 처는 조금씩 차도가 있는 듯 했다. 오전에는 빨래하고 매일하던 뽀뽀도 일주일 만에 하고 목욕도 해 주고 내가 등도 밀어주는 등 많은 일을 했다. 점심 먹고는 농협에 가서 현미등 필수품을 사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오늘이 며칠인지 자기가 코로나에 걸렸는지조차 모른다. 갑자기 머리가 하 해지고 무엇을 했는지 전혀 모른다. 두 시간을 애를 태웠다. 코로나 후유증인 듯 하다. 보건소에 물어보니 가까운 내과에 가보란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저녁을 먹고 나니 조금씩 돌아온다.
나는 어려서 잘 넘어져서 건달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왼발잡이였던 내가 오른쪽 다리를 잃고 나니 넘어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요사이 말이 점점 더 어눌해지는 것을 스스로도 알겠다. 어떨 때에는 처도 잘 알아 듣지 못해 다시 되 묻는다. 밥을 흘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맨날 사랑한다고 노래를 한다, 처는 주사를 맞고 조금 나아졌다.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다. 훌쩍 약해진 처를 바라보며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다짐을 늘 새로이 하지만 그때 뿐. 그런데 약해져 가는 처를 보니 이래서는 안 된다. 나도 나지만 처를 지키려면 내가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더욱 더 운동하고 정신력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생로병사는 누구나 있다지만 언젠가는 죽겠지만 마음이나마 처가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기도하고 기원한다. 곧 9월이 온다 초하루인 내일은 경주고모 생신이시다 매일 카톡을 하지만 그래도 안부라도 전하고 싶다.
22년 팔월 끝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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