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추석과 모친 기고일

역려과객 2022. 9. 21. 17:20

 

코로나 때문에 3년만에 추석을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명이나 빠졌다. 장손인 재현이는 신혼여행으로, 막내의 막내 준호는 직장일로 인하여 못 보게 됨이 아쉬울 따름이다. 순서가 뭐 그리 중요한가?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차례를 지내니 좋기만 하다. 웃음꽃을 피우며 밥을 먹고 정리하는 다른 때보다 늦어 12시가 다 되었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성묘에 참석하고 싶어서 가겠다고 했다. 그것이 무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길은 없고, 비탈길에 풀은 많고, 몸은 시원치 않아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다. 두어 사람이 앞뒤에서 붙잡아 보지만 너무 힘들어 조부님 묘 앞에서 한참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하며 빌어 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모기는 왜 그리 극성인지.

 

작은집과 왜 사이가 나빠졌는지 그것을 풀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무엇이든 자기 편에서만 생각한다. 작은 아버지께 절을 하고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광수네 작은집에서 온 흔적을 찾을 길 없다. 둘째가 농사를 지은 포도만이 입을 즐겁게 한다. 막내가 나를 업고 내려왔다. 또다른 곳에 포도밭이 있다. 나는 그 곳을 다친 이후로 처음 가 본다. 둘째도 건강하면 얼마나 좋을까? 둘째네와 헤어지고 막내네와 밥 대신 커피 한 잔 하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주로 처와 제수씨가 이야기하고 우리는 듣는 편이었다. 우연히 306번지 땅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고 일어나면서 주민센터에 들러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기로 했다. 309번지 796평은 막내가 포기각서를 쓰고 물러났는데 306번지는 농협의 채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그때 16년도에 그것까지 여동생 앞으로 되어 있다. 기가 막힐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마음이 아파 한 숨 자고 일어나 컴퓨터를 켜는데 처가에서 연락이 왔다. 동서 생일 겸 오늘 한다고 광호가 올테니 같이 오란다.

 

추석날에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주인공인 동서와 함께 생일 파티를 열었다. 광호가 여자친구와 함께 지난 주에 베트남으로 여행을 했는데 거기에서 사 온 21년산 로얄살루트라는 양주를 개봉했다 수 개월동안 입에 안 대었던 술을 한 잔 하니 그 향기가 너무 좋다. 취기가 올라 30분을 자고 일어났더니 석양의 노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렇게 직접 노을을 구경한 적이 언제였던가? 그런데 집에 앉아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니 모처럼 뿌듯한 느낌이 든다. 롯데는 NC와의 경기에서 무사만루를 두 번씩이나 못 살리고 63 역전패를 당했다. 가족들과 고스톱을 치다 9시에 일어나 집으로 왔다. 잠자리에 누우니 오늘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런데 뭔가가 찜찜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달에 신경외과 선생님이 약이 너무 늘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하신다. 뺄 것은 없고 약만 늘어나는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 그 분은 내 10년 주치의 의사이다. 그 말이 새삼 느끼게 한다. 약을 너무 먹어서인지 아니면 심근경색인지 모르겠지만 새벽마다 가슴이 조여든다. 처도 코로나를 앓고 나서 많이 수척해졌다. 가뜩이나 약한 사람이 먹지를 못하면서 나를 캐어 해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링거 주사를 두 번 맞고 나서 조금씩 나아져 간다.

 

나에게 매주 전화를 해주는 보험설계사가 있다. 15년여를 한결같이 해 준다. 고마운 분이다. 아픈 것은 어쩔수 없지만 보험이라도 타야 한다고 하면서 뇌출혈이라고 하니까 약 1000만원은 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 병원비는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뇌출혈도 두 가지가 있어서 나는 상해로 인한 뇌출혈이라 해당사항이 안 된다고 의사는 한 번만 봐달라고 오히려 우리를 설득하며 다른 것은 다 들어 주겠디고 하며 미안하다고 한다. 보험회사에서 200만원뿐이 보상을 못 받았다. 처는 내가 어찌 될지 몰라 정기예금을 헐었다. 병을 얻고 돈 잃고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

 

눈이 잘 안 보여 책도 못 보고 30년 된 신문도 끊었다. 내가 봐도 발음이 점점 더 어눌해지고 부자연스럽다. 병이 한 두가지 라야 말이지 이건 끝도 한도 없다. 패치며 파스며 온몸에 도배를 한다. 창피해서 말도 못 하겠다. 그래도 처는 이겨 낼 수 있다며 안심시킨다. 매사 긍정적이다. 항상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이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살아 주어서 고맙고 행복하다고 한다. 젠장

 

 

어제는 모친 17주기 기고일이다. 내가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으나 사는 날까지 내가 할 일은 해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 제사때가 되면 모친께서 만든 두부며, 녹두 빈대떡이며, 콩고물로 묻힌 쫄깃쫄깃한 인절미가 생각난다. 이번 제사엔 일러서인지 과일도 떡도 부실하다. 세 동서들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이야기가 끝이 없는데 우리 삼형제는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별 말이 없다. 내가 잘못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느낀다. 그래도 가족 모두 모여 절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매 조상님께서 노 하셨을까? 흐뭇해 하셨을까? 그 대답은 조상님만 아시리라, 아무튼 일주일 만에 가족 얼굴을 보니 좋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