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숨 가쁘게 병원에 들락달락 하였는데 반해 이번 가을은 소리소문없이 지나간다. 결혼기념일 전날 처의 친구 박선생님이 소래에 데려가 주시고 생선회를 사 준 것 이외엔 주일마다 공원에 간 것 빼고는 외출을 겨의 하지 못했다. 올해는 인터넷에서나마 단풍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새벽마다 가슴이 통증이 온다. 눈떨림과 더불어 왼손등이 시리고 나도 모르게 손떨림 증세가 왔다. 남들 7~80대에 나타나는 증상이 60대 중반에 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지만 어쪄겠는가? 더불어 마음마저 약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모든 것이 처에게 의지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처가 나를 두고 나가면 어떻하나 바보같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처는 날마다 “건강하고 행복해집시다”라고 하며 매일 아침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본다.
지지난 주에 인간극장에 94세된 할아버지 어부가 그려졌다. 황해도에서 넘어온 홀로 그는 늘 고향을 그리며 사셨고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는데 작년에 부인이 돌아가시고 61살 된 따님이 그를 돌본다. 송도 앞바다에서 70년을 망둥어를 잡고 일손을 바쁘게 움직이신다. 그의 가족사진을 보니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파진다.
그 이야기를 들은 처는 부친 회갑때 찍은 사진과 부모님이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찾아 액자로 만들어 내 방에 걸어 놓는다. 처 앞에서 무슨 말을 못하겠다. 이제는 힘에 부쳐 공원에도 밀고 나가기가 벅찬가 보다. 물왕저수지는 아예 꿈도 못 꾼다. 그래도 내가 옆에 있어서 좋다고 하며 세심하게 나를 관찰한다. 내가 운동할 때 옆으로 쏠린다며 적당히 하란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
내겐 부친 회갑때 찍은 사진이 첫 번째 찍은 가족사진이이었다. 모두가 바쁘게 살았으며 가족사진 찍울 여유가 없었다. 두 동생 결혼식에도 동셍 결혼식에 결혼 못한 형이 끼는 것이 아니라며 모친은 내게 음식접대나 하라고 하셔서 동생들 결혼식에는 찍어지 못해서 내가 없을 것이다. 부친의 회갑 때가 최초였고 새마을연수원에서 찍은 사진이 기억속에 많이 남는다.
해마다 가을에 단풍구경을 했었다, 그리고 음력 10월에 두분 제수씨의 생일에 즈음하여 파티를 열었었다. 올해도 통보를 하였더니 바쁘다고 하여 미루다가 어제 갈비를 먹으면서 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제수씨들도 우리 집안에 시집온 지 30년이 넘었다. 아우들은 제수씨들이 차려 주는데 제수씨들 자신들의 생일을 차리기가 무엇해서 하는 의미라 생각해서 늘 그리 해왔다. 동생들 보려고 이발까지 했다. 이젠 동생들을 보는 것이 낙이 되었다. 고맙게도 재영이가 참석해 주었다.
추석날 보고 두 달만에 본다. 모두들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에 왔다. 내가 얼마나 살 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족을 위해서 처를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내게 있어서 어제가 1년중 가장 행복한 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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