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많은 병을 앓았었다. 정월에 우울증이 찾아왔고 7월엔 죽음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는데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인천 작은어머니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새해에는 찾아 뵈어야겠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14년전 결혼하고 처음으로 찾아갔는데 작은아버지의 환대와는 달리 작은어머니는 쌀쌀하게 대해 주셨다. 커피는커녕 냉수만 먹고 쫒겨나듯 나와야만 했다. 이유를 모르는 처는 앙금이 남아 있었다.
작은댁에 처음 찾아간 때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강원도 원주에 갔을 때였다. 육군상사로 월남에 파병으로 가신다고 해서 간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으로 경기도를 떠난 것으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3학년때 작은 어머니가 종철네 돈을 빌려서 갚지를 못해 우리집에 한동안 안 올 때였다. 돼지를 팔아 돈을 갚고 나서 모친은 고기를 사서 추석 무렵에 안양에 사는 작은 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작은댁은 부평으로 이사를 갔고 작은아버지 생신때면 늘 찾아갔다. 내가 사고로 다치고 운둔생활을 하면서 사촌친목회도 깨지고 페인트가게를 말아먹고부터는 아무데도 나가지 안았다가 결혼하고 나서 처음 찾아갔는데 푸대접을 받았으니 처는 황당했을 것이다.
정월 초하룻날 처가 많이 아파 막내 제수씨에게 조금 일찍 오라고 했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받았는데 재현이가 장가를 가더니 많이 달라졌다. 쟁반을 든 것을 처음 본다. 그날 나와 처는 산소에 가지 못했다. 막내에게 작은집에 가자고 미리 말을 했어야 했는데, 바로 집을 나서는 바람에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내 생일에 막내가 장어구이를 사 주었다. 그 자리에서 막내 부부에게 다음주말에 인천 작은집에 가자고 했더니 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처 칠순때 KTX 타고 목포에 다녀 오자고 했더니 반대를 안 한다. 해서 커피를 마신 다음 광명역에 가서 표를 끊었다. 내가 바라던 두 가지 목표를 반쯤 이뤄진 셈이다. 집에 와서 작은어머니께 전화로 토요일 세시경 찾아 뵙겠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효성동이 부평인줄 알고 갔는데 계양구라고 해서 4시가 되어서 찾아 갔더니 작은 어머니께서 버선발로 나와 반기신다. 작은아버지 돌아가실 때와 문수 아들과 딸 결혼식 때는 뵈었지만 이렇게 환영해 주실 줄은 몰랐다. 명희는 파키슨병을 앓고 있었다. 곧이어 경환엄마인 명숙이가 왔다. 명숙이는 나와 동갑이지만 나는 정월생이고 명숙은 10월생이라 서로 이름 부르다가 명숙이 결혼하고부터 오빠라고 불렀다.
수년만에 만난 사촌들간의 이야기는 끝도 한도 없다. 어제 만난 사이처럼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꽃이 끊기지 않는다. 우리집은 큰집이라 방학 때면 큰코모네 둘째 고모네, 둘째 작은댁, 막내 작은댁 아이들이 어울려 놀기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점심을 피해서 왔는데 저녁까지 얻어 먹고 왔다. 선옥누이와 영순누이는 나보도 한 살 많지만 학교는 같이 다녔고 모두들 그만그만 해서 옛날 생각하면 끝이 없다.
짜장면을 먹고 일어났다. 승렬이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하며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시 찾아 뵙겠다고 하고 헤어져 돌아왔다. 정말 잘 갔다 왔다고 생각한다. 신씨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다. 처의 말에 의하면 내가 영원히 안 올 줄 알았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내 마음이 가볍다,
2월부터 가슴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요즈음 안 먹던 심장약을 하루에 두세번 먹는다. 해서 목요일에 가기로 예약을 해 두었다. 이 시련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시술을 해서라도 좋아지면 좋겠지만 장담할 수가 없다. 처나 나나 가족 모두 건강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좋아지겠지. 처는 매일 조상님께 당신의 큰아들 건강하라고 기도하며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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