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회와 나와의 관계는 꽤나 깊다. 20대 초반 그러니까 40년도 훨씬 지난 때였다. 목우회를 만들고 우리 동네 초등학교 56회 졸업생과 모임을 만들었다. 그 당시 총무를 맡았는데 화투를 치다가 돈을 잃어 돼지를 팔아 메꾼 적도 있었다. 그러한 모임이 흐지부지 없어졌다가 30년전 57회 졸업생과 뭉쳐 부부동반 모임을 만들었나 보다. 그 당시에 나는 산업재활원에 입원 중이었다. 30년 전이었을 것이다.
50개월의 투병 끝에 퇴원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입할 수 있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결혼한 상태였는데 전부 집에서 갖는 모임이었나 보다. 12가족 모임이었는데 첫 번째로 간 곳이 진문이네 집으로 기억된다. 두달에 한번 모였는데 우리집에서 모일 때에는 늘 모친께서 개고기를 잡이 보신탕으로 대접하고 안 먹는 사람은 삼계탕으로 대신했다.
주로 동네에서 많이 했고 안양에서 많이 살아서 안양에서도 했고 윤봉이가 청주로 가서 그 곳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불화설이 생겨 현승이가 나가고 뒤를 이어 강호를 비롯하여 하나둘 빠져나갔다. 그러더니 2016년엔 다 빠져나가고 현재의 다섯 가족으로 조촐한 모임이었으나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목우회는 17년에 남이섬 그리고 19년엔 강화도 고인돌 무덤에 다녀왔고 두달에 한 번 계속 모였으나 코로나로 3년 못 모이다가 지난 연말부터 다시 모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루었다. 지난 18년 60년지기 친구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1년에 한 번만이라도 만나자고 간곡히 부탁했는데 답이 온 것은 현승이가 놀러간 사진을 보냈을 뿐이었다. 대답없는 메아리였다. 정말 애석할 뿐이다.
그제 25일날 새벽에 현석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신랑이 일을 나가서 늦게 온다고 우리와 함께 못 간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답하길 나도 아프고 처도 못 일어나 오늘 못 간다고 했다. 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9시 반경 가겠다고 해서 내가 택시를 부를 테니까 현석엄마에게 우리집에 5시 반까지 오라고 전화를 걸어서 모두 참석하게 되었다.
장수촌의 능이백숙은 네 번째인 듯싶다. 세 번은 모임에서 한번은 처가 식구들이랑 제부도에 갔다오며 들렸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으나 나이를 먹어서인지 병들이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모두 좋아하던 술을 이번에는 아무도 안 마신다. 놀랍기만 하다
주로 처와 현석엄마, 이슬엄마가 말을 하고 남자들은 먹기에만 바빴다. 말을 잘 못하는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인사만 하고 참석하는데 의미를 둘뿐 할 말이 별로 없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더 나아질리 만무다. 우리가 놀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당초 지난주에 모이기로 했으나 우리가 칠순겸 목포여행 간다고 해서 일주일을 늦춘 것인데 이슬엄마가 잊지 않고 기억을 해 두고 생일케잌을 사 오셨다. 목포여행중에 가장 아쉬운 것이 해결되어서 그저 고맙기만 했다.
후식으로 케잌을 잘랐다. 치현의의 색소폰 연주와 더불어 케잌 점화에 이은 노래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덕환이 처가 가족 모임이 있어서 참석을 못해 아쉽지만 새 가족이 된 문용이 처까지 함께 박수를 치니 처가 눈물을 훔친다. 기억에 남을 모임과 생일케잌이었다. 올 때에는 진문이 덕으로 편히 올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조부님의 기고일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약한 나를 채찍과 당근을 주며 예의 바르고 강건하게 키우려고 하셨지만 조부님의 기대를 못해 드려서 지금도 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밤에 찾아올 아우들을 기다리며 겸허한 마음으로 조상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해운의 일기 그리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입가경 (0) | 2023.07.16 |
---|---|
처 내시경 검사와 작은어머니 생신 (0) | 2023.03.04 |
처의 칠순과 목포여행 (0) | 2023.02.21 |
14년만에 작은집을 찾아가다 (0) | 2023.02.06 |
가을이 소리없이 지나가네 (0) | 2022.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