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내가 살아가는 이유

역려과객 2023. 12. 2. 16:12

 

 

부질없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활달하고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가장 존경하는 조부님께 예의범절을 배웠다. 그래서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옛날 봉급을 타면 모친께 다 드리고 용돈을 타 썼다. 대신 상여금은 절반만 드린 걸로 생각난다. 그 돈으로 여행도 하고, 책도 사고, 친구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하고, 각종 자격증 따러 다니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웅변도 배웠고 주산도 배웠지만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 꿈은 세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족이 불편하고 언어장애로 인하여 그 보상심리로 의사가 되고 싶었고, 발음이 면사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며 공무원의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희곡 새로 나온 달님의 연기를 하며 글을 써 보고 싶었었다.

 

 

부모님은 고등학교를 인문계로 보내고 싶어 하셨다. 내가 원 채 약해 대학을 가서 더 공부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부모님의 마음이었으나 그 당시 안양에는 대학교가 없어 부모님은 혼자 자취를 못 시킨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안양공고에 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체력장이었고 적녹색약이라는 것이었다. 색명은 갈 수가 없었고 커트라인이 160이었다. 체력장이 20점 만점인데 거의 모든 이가 19~20점인데 반해 나는 12점이었다.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을 해 조부님께서 가장 기쁜 날이라며 기념으로 제기용품을 샀고 생전 처음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반에서 4등 안에 들었다. 네 명이 반장 후보였는데 그 안에 들었던 것이다. 그중의 한 명이 고종사촌인 이흥석이었다. 우리 둘은 반장도 부반장도 안 되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제일화학에 다닐 때인 것 같다. 출퇴근 때에는 일어 테이프를 사서 공부를 했는데 다 잊어버렸다. 무균실에는 일주일에 두 번 들어갔는데 그날은 물도 안 먹었다. 오전에 들어가면 점심때나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주택청약을 들었고 30여년 만에 주소를 목감에서 안산시 선부동 회사 동료의 집으로 옮겼다. 나름대로 살 길을 찾은 듯하다. 이수경이라는 제품 담당 친구와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접수를 했는데 사흘만에 사고가 나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내가 장손이요 장자인데 그 역할을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손이요 장자이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맡은바 모든 것에 앞장서야 했는데 워낙 약골인데다 소심한 성격에 사고까지 당하고 보니 모든 이에게 눈치를 봐야 했을 뿐 아니라 짐이 되어 있었다. 내 나름대로 마음을 닫았고 아우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것은 훗날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우들이 오면 반갑게 맞이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아쉽기만 하다. 맏이의 역할을 못하면 그것이 곧 찬밥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아우들은 나를 탓하지 않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각종 큰일에는 모두 참석을 한다. 그런 면에서 아우들에게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젊어서 내 자신을 알기에 의사는 이미 접었고, 공무원은 발음이 장확하지 않아 면접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포기를 했다. 그리고 40년이 흘러 처가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라는 것이었다. 내 딴엔 시조도 꽤나 많이 써서 문학과를 졸업한 동서의 도움으로 21년말 응모를 했다. 연초에 신문을 봤는데 역시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가 넘보기엔 실력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당선자들은 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석사 이상이고 기자 혹은 편집인이었다. 스스로 벽을 느끼고 순수한 아마추어가 한 번 도전했다는 것의 의의를 두고 싶다.

 

 

옛날부터 나는 쉰 김치를 좋아했다. 김치를 좋아해서 동네에 소문이 잦았다. 모친은 배가 고프면 밥을 더 먹으라고 야단을 치셨다. 모친이 끓여 주신 김치찌개는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그런데 당뇨를 앓고 나서 김치 먹는 양이 절반으로 줄었고, 요즘엔 매워서 못 먹을 정도이다. 옛날의 1/10도 못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 당뇨를 재는데 당뇨는 물론 혈압도 높아지고 있다. 맥박은 더 안 좋다. 맥박이 높다는 것은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약을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보통 성인의 맥박은 60~70인데 나는 85~90이나 된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처는 매사에 긍정적인 말을 꺼낸다.

 

 

내 나이 환갑 진갑을 넘겨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효도는커녕 불효만 저지른 장애인이요 남들은 80대에 앓고 있는 병을 가진 못난이가 되어 버렸다. 정말 내가 봐도 답답할 때가 많은데 나를 바라보는 처의 마음은 오죽 답답할까? 약을 너무 많이 먹어 입에서는 아무리 닦아도 냄새가 난다. 넘어지기 일 수이고, 모든 것에 손이 가야 하는 나를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나를 처는 반 간호사, 반 간병인이 되어 나를 위해 식단을 짜고 약을 챙기고 이부자리를 챙긴다.

 

어제도 안산에 있는 병원을 가면서 새참과 저녁을 챙기고 갔다. 저녁 전에 초밥을 사 왔다. 그리고는 당혈소판이 6.7이 되었다고 울먹이면서 코로나 주사를 맞고 왔단다. 처는 밤새도록 끙끙 앓는다. 워낙 약한데다가 코로나 주사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국을 데워 먹으란다. 그냥 먹겠다니까 자기가 아프면 내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핀잔을 주면서 일어나 아침을 챙겨 준다. 처는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워 일을 한다. 그러면서 용기를 준다. 그리고 늘 말한다. “우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삽시다.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내가 70까지 살지는 장담을 못 하겠지만 그때까지 산다면 아우님 내외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일 것이다. 비록 장삼이사이지만 그래도 행복한(?) 늙은이가 아닌가? 처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운동하리라 다짐을 해 본다. 비록 처에게 도움은 못 될지라도 마음은 처를 위해 최선을 다 하리라 굳게 마음을 다져본다.

아자 아자 회이팅!!!

 

 

2023122

처의 마음을 헤아리며

'해운의 일기 그리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96회 장모님 생신  (2) 2023.12.18
빈 공간  (4) 2023.12.11
후원과 봉사  (2) 2023.11.28
취미생활과 깊어 가는 가을의 한복판  (2) 2023.11.24
만남과 이별  (2) 202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