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빈 공간

역려과객 2023. 12. 11. 16:49

 

 

 

매주 한 번 밖에 나갈까 말까 하는데 지난주에는 세 번이나 밖을 나갔다. 흔한 일은 아닌데 이제 스스로 늙은이가 되어가는 모양새이다. 이런 내가 싫기도 하지만 내 일거수일투족이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나이는 별로 안 먹었는데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기댈 곳도 별로 없고 점점 뒷방 늙은이가 되어 가는데 처는 어제도 오늘도 하는 말이 우리 부부가 서로 아끼며 존중하며 살아가자며 애정표현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아우들이나 사촌 형제들의 자식들이 장성하여 하나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나는 그들에게 축하를 해 줄 뿐 아무런 역할을 못해 주어서 아쉽기도 하고 체면이 서지를 않는다. 그래도 참석해 주었다고 반갑게 맞아주는 아우들이 고맙기만 하다. 재현이, 재형이도 결혼하여 살림을 차렸는데 소심한 나를 닮은 재영이는 확실한 기반을 잡고 멀지않아 결혼을 해야 하는 생각에 못내 안티깝기만 하다. 처가의 석종이나 광호 현민이도 빠른 시일 내에 결혼하여 2세를 봐야 하는데 나이만 먹어갈 뿐 정적 본인들은 걱정을 하지 안는다. 역시 MZ시대는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지난 월요일 새벽부터 고대안산병원을 찾았다. 체혈과 소변검사 그리고 사진과 심전도 검사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신경외과 교수님께 장기요양신청서에 필요한 서류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써 주셨다. 내분비내과 교수님께서는 담백뇨가 빠져나간다고 더 두고 보자고 하신다. 그만큼 신장이 나빠져 간다는 것이다. 병원 뒤를 돌아 산책을 하며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순환기내과를 끝으로 해서 집에 오니 네시가 다 되었다.

 

 

 

화요일은 처의 이가 안 좋아 안양의 치과에 갔는데 임플란트를 세 대나 해야 한다고 울면서 전화를 한다. 처나 나나 병원에 가지 않으면 큰일이 날 듯하다. 그 전 주에 안산의 내과를 갔는데 당 혈소판이 지지난달 5.46.7이나 되었다며 의사에게 혼났다면서 울먹이며 들어왔다. 나로 인해 간병을 하느라 운동도 못하고 스트레스가 쌓여 단 것을 많이 먹은 모양이다. 내가 죄인이다.

 

 

 

목요일은 능곡동 건강보험공단을 찾았다. 두 부부가 연명치료 포기각서를 썼다. 그리고 장기요양신청서를 제출했더니 이번 주에 심사가 나온다고 한다. 3급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나도, 처도 조금은 편해질 것이다. 휠어를 미는 처가 힘이 부친다는 것을 3년전부터 느껴왔다. 그때만 해도 매주 물왕저수지까지 가서 바람을 쐬곤 했었다.

 

 

토요일 오전 11시 반에 막내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항상 기사 역할을 하는 막내에게 늘 고맙기만 하다. 사촌인 광수의 아들 재민이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하기 전 두 번이나 찾아왔다. 고마워서 밥을 사 주기로 했는데 내가 다치는 바람에 취소까지 해야 했다. 상처가 달포가 지나가는데도 아직 남아 있다. 요새 젊은이들은 개성이 뚜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주례사 없이 식을 거행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상상할 수도 없다. 그만큼 세대가 바뀐 것이다.

 

 

재민이는 자기 아버지에게 간을 떼어 주는 효심이 가득한 청년이다. 또한 나에게 특별히 정이 가는 친구이다. 가령 성묘에 가거나 차를 타게 되면 달려와 나를 붙잡아 주는 고마운 당질이다. 재민이도 그렇고 처조카들도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그런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나에게 가끔 전화해 주는 분이 제수씨이다. 생일 때에도 축하전화를 해 주는 분이 고마운 제수씨이다.

 

 

 

예식장에는 하례객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제수씨가 교회 권사라서 그런 듯하다. 잔치에 가면 가장 반기는 사람이 경주 고모님과 사촌인 경환이 엄마 그리고 제수씨이다. 항상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또 한다. 그날도 그것을 느꼈다. 경주 고모님은 편찮으셔서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항상 먼저 찾아와 인사를 하는데 우리가 앉은 자리에 바라보면서 인사를 할 뿐이다.

 

 

 

식장이 복잡하여 우리는 먼저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넓게 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회와 초밥을 가지고 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외에는 아무도 내 옆으로 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십수 명의 가족들은 우리를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내 옆으로 지나가면서 재현이와 민주가 인사를 할 뿐이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거니와 장애인이요 별로 말이 없는 내가 창피한 것인지 미운털이 된 모양인지 알 수는 없지만 스스로 답답함을 느꼈다. 넓디넓은 식당이 갑자기 텅 빈 공간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한없는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신씨 집안 남자 중에 내가 가장 큰 어른이 되었는데 이런 대접을 받다니 처에게 느끼지 않게 서운하고 쓸쓸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모든 이가 축복할 그 순간 빈 허공만 바라봐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꼰대인가? 나를 바라보는 처의 마음은 오죽 답답했을까? 처는 내 마음을 아는 양 화이팅을 외치며 힘을 실어 준다. 우리가 일어서려 하는데 사돈(광수 외가댁)들이 모두 일어나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막내를 기다렸다. 그 곳에서 목감에서 살던 광수 친구인 현승이 동생과 원용이 동생이 인사를 하고 갔는데 이어 고종사촌인 상배를 15년만에 만났다. 그도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몰라보게 되었는데 내게 와 인사를 하며 휠체어를 밀며 2층 주차장까지 밀어준다. 처는 처음 본다며 고마워한다.

 

 

 

38년전 많은 자식을 낳은 조부님은 80을 넘기고서 돌아가셨다. 동네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하며 많은 분들이 조의를 표하셨다. 4남매를 낳으신 선친은 지인들이 많이 참석하셔 애도를 했는데 70도 안된 나는 정작 죽으면 처만 울어줄 뿐 아무도 없는 쓸쓸한 주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가 차기만 하다. 처에게 내가 죽으면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다. 하늘의 뜬구름처럼 죽어서라도 훨훨 날아가고 싶을 뿐이다.

 

 

 

막내가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처는 막내 제수씨에게 올해가 가기 전에 여주에 바람 쐬러 가자고 한다. 내 속에 들어가 본 듯한 처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집에 와서 잠을 청하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마음속에 남은 상처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어제 일요일 아침 일찍 작은 어머니께 전화가 온 모양이다. 매달 찾아가 인사를 했었는데 지난달은 아픈 관계로 찾아 뵙지 못했다. 그리고 식장과 식당에서 우리를 본 모양이다. 처가 받았는데 울면서 이야기를 한다. 처도 많이 말은 안 하지만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매스컴에서는 고독사 이야기를 한다. 조부님과 부모님은 내가 바르고 잘되기를 바라셨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이 나이 먹도록 불효만 저질렀으니 유구무언이다. 지금껏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처를 만난 행운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한 내게 죗값을 치루는 모양이다. 그젯밤도 잠을 못 잤다. 세상의 현실을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기에 내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을 한다. 이다음에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면 건강하고 능력있고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못다한 꿈을 실현하고 처를 맞이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젯밤에도 이런저런 생각에 새벽 네시 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고등학교 단짝인 관명이에게 안부를 하며 딸이 결혼한다고 전화가 왔다. 그도 약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모두들 잘 지내는데 나만 뒤 쳐진 느낌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남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를 되찾아 처와 함께 모든 것을 벗삼아 여행하고 후원과 봉사를 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열어 보리라 다짐을 해 본다. 내 편이 있어 좋다. 오늘은 오늘대로 내일은 내일대로 나와 처를 위해 다시 뛰어 보자고 힘을 불어 넣는다. 이렇게 글을 쓰면 마음이 평온해 진다. 망각이 주어지기에....

 

 

 

 

 

20231211

당질부를 보게 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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