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아무런 의미가 없이 손이 부자유스로워져 글이 잘 써지지도 않고 한 번 쓸 때 마다 자주 틀려 글 쓰는 것도 자제해 왔고 밖에 나가는 것도 될 수 있는 한 밖에 나가는 것도 자제를 했다. 지난 1월엔 병원에 가는 것 이외엔 딱 한 번 밖을 나갔다. 지난해 재민이 결혼식때 입은 상처가 큰 충격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작년 크리스마스날 사촌 제수씨가 찾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세 시간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의 보답으로 10월 말에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게 할 수 있었다. 사촌 제수씨가 내 생일날을 기억하며 문자를 보내왔었다. 그의 답례로 제수씨 생일날 재민이 내외까지 초대를 하여 점심을 먹고 집에 와서 고스톱과 함께 짜장면을 먹어 보낸 적이 있다.
지난 12월에 류마티스내과에 가서 약을 타왔는데 1월부터 통 먹지를 못하고 배가 아파 고생을 했다. 매일 그러니 밥 먹은 것이 고욕이고 겁이 나서 소화기내과에 갔는데 약의 부작용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강직척추약을 줄이라고 하시며 구토증세 약을 주신다. 강직성 척추약을 먹으면 밥을 못 먹고 안 먹으면 허리와 무릎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 밟는 기분인데도 처는 매일 긍정적인 말로 나를 달래지만 처 역시 환자이다. 큰 병은 아니지만 거의 사흘에 한 번 병원에 다닌다. 나 때문에 신경을 쓴 탓인지는 몰라도 어지러움증이 재발한 듯싶다. 자주 넘어진다. 요새는 점점 더하다.
지난달 말 조상님을 뵙고자 이발을 하고 작은어머니를 찾아 뵙고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고 점심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처는 차례준비를 틈나는 데로 준비를 했는데 설을 사흘 앞두고 98세 장모님께서 입원을 하셨다고 연락이 왔다. 장모님께서 허리가 아프다고 수술시켜 달라고 하신단다. 그래서 시술을 하고 입원실에 계신다고 한다. 신경 쓸 것이 더 늘었다. 처제에게 위로의 문자를 보냈다. 처도 충격을 받았는지 자주 쓰러진다. 이석증이 재발한 것 같다.
처에게 차례는 다음에 지내고 응급실에 가자고 하지만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달랜다. 누가 누구를 보살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암튼 설날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내게 오매불망 바라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처는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나를 씻긴 다음 처도 씻고 나서 음식 준비를 하는데 또 쓰러진다.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생들에게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려는데 못하게 한다. 조금만 눕겠다고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마음만 바쁠 뿐인데 막내네 가족이 왔다. 재영이가 취직이 되었다고 한다. 둘째네 가족이 와서 함께 차례를 지낼 수 있었다. 차례는 예전과 달리 과일이 새개가 올라갔다. 재현이가 결혼을 하더니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 사람은 결혼을 해야지 달라지나 보다. 우리 가족 중에 준호만 빠졌다. 준호는 직장 때문에 참석을 못했다. 질부는 내가 보아도 귀염받게 한다. 밝은 미소와 함께 상냥하고 무엇보다 일을 알아서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아침을 먹는데 술이 운다, 나이 먹었다는 뜻이겠지. 막내도 횐갑이 지났으니 옛날 같으면 한 발 물러나 있고 지금쯤 조카들이 알아서 해야 될 나이인데 그런 면이 아쉽다. 내가 나서면 하지도 못하면서 꼰대 행세를 한다고 할까봐 나서지도 못하고 전전긍이이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날 큰소리 안 내는 것이 좋을 듯 하지만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이 든다.
상을 치우는데 사촌제수씨가 재민이 내외와 함께 찾아왔다 얼떨결에 세배를 받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늘 꿀 먹은 벙어리였다. 옛날엔 산소에 다녀온 이후로 집집마다 세배를 다니곤 했는데 그런 풍습은 사라져 어린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나도 처도 몸이 안 좋아 성묘에도 참석을 못해 아쉬움만 남는다. 불효자는 나이 먹어 늙은이가 되어도 불효자이다. 동생들이 가고 나니 집이 절간처럼 고요하다.
이튿날 처는 장모님께 병문안을 다녀왔다. 97세인 장모님은 시술 이후로 치매끼가 찾아온 모양이다. 15년간 극진히 모신 처제에게 엄한 말씀을 하신단다. 장모님 입이 까탈스럽다. 하루에 열 번의 상을 차린단다. 처제 허리는 점점 휘어가는데 정모님 왈“네가 지금껏 내가 뭘 해 주었냐”며 상처난 곳에 약을 바르려 하는데 독약을 발라 죽이려 하느냐면서 나무라신다고 하신다. 효녀로 자자한 처제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요양원에 보내면 당신을 죽이려 한다고 하신단다. 처가 집에 오더니 나에게 안기면서 통곡을 한다. 하나뿐인 동생이 가엾단다. 자식을 셋이나 앞세운 장모님 때문에 동생이 큰일이 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 또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어제인 월요일 새벽 몇 십년만에 좋은 꿈을 꾸었다, 맨날 악몽에 시달렸었다.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친구에게나 항상 왕따를 당하는 꿈과 병원생활 등 좋은 꿈은 안 꾸어지고 항상 악몽에 시달려야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병원생활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복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승진이 되었다고 파티까지 열어 주어서 좋게 꿈을 꾸어서 나도 이런 꿈을 꾸었다는 것이 여간 기분좋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 처에게 말해 주었다.
설 마자막 휴일인 어제 인천 작은 집에 찾아갔다. 처는 신혼 때에 이어 세 번째 방문이다. 처는 영문도 모르고 신혼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작년엔 겁을 먹었는데 올해는 기분이 좋은 듯하다. 재작년 여름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다툴 때 우리 집안에서 가장 윗사람을 생각한 분이 작은 어머니이시다. 내가 죽기 전에 찾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작년 설날이 지난 후에 찾아간 곳이 작은어머니 댁이었다. 병이 깊게 든 내가 죽음을 많이 생각하게 했었다.
네시 반에 도착하니 작은어머니와 두 여동생이 격하게 환영한다. 명희는 파키슨 병을 앓고 있는데 작년과는 달리 더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니 너무 고마웠다. 작은어머니와 두 여동생과 우리는 이야기 끝이 없다. 나는 말이 별로 없지만 사촌형제는 너무도 가깝고 찐했다. 저녁은 주로 명희가 차렸는데 그 몸으로 애를 쓰니 무한한 감동을 준다.
소갈비에 더덕무침, 잡채와 작은어머니께서 담근 김치에 밥을 먹으니 정말 맛이 있다. 가족과 함께 우리 집에서가 아닌 곳에서 먹는 밥이야말로 얼마 만인가? 정말 꿀맛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맥주 반 잔을 마시니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처는 김치 한 포기를 달라고 한다. 다시금 가족애를 느낀다.
후식으로 차와 과일을 먹고 일어날 즈음 내년에 다시 오겠다고 하니까 추석에도 오고 자주 오라고 하신다. 올해 구순이 된 작은어머니는 약을 하나도 안 먹는다고 하신다. 막내의 말대로 100세는 넘길 듯하다. 그만큼 건강하시다. 나도 여건만 되면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건강이 허락될지는 미지수다. 명희의 말이 나를 감동시킨다. 자기와 내가 보다 더 건강해져 오래 봤으면 좋겠다고 하며 내 건강을 염려해 주니 그 말에 울컥했다.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향해 5년을 간병하는 가수 태진아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뜻깊은 하루였다. 막내 내외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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