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는 남은 세월을 황금같이 여기지만 젊은이는 남은 시간을 강변의 돌같이 여긴다. 또한 세월이 촉박한 매미는 새벽부터 울고, 여생이 촉박한 노인은 새벽부터 심란하다. 그래서 삶이란 복잡하고 어렵고 정답이 없다. 평생을 살았어도 이번 여름만큼 폭염과 열대야가 긴 적이 없다. 그만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모기의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건만 무더위는 식을 줄 모른다. 아마 이런 날씨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해지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풍이 와도 폭염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유산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모든 이가 겪는 일 이겨 내야지 방법이 없다.
달포 전부터 박선생님이 우리 부부와 처제와 함께 21일 대부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풍 종다리가 온다는 소식에 취소하고 22일 동서가 휴가라 길호가 랜트를 해서 동서네 가족이랑 대부도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가 하루 종일 온다고 해서 찜찜했는데 하늘이 도왔다.
병원 가는 일 빼고는 두 번째 외출이었다. 첫 번째 외출은 막내네와 점심을 같이 했다. 그리고 바닷가는 올해 들어 처음이다. 동서네 가족이 아침 9시 반에 왔다. 처가 준비한 김밥을 먹었다. 처의 준비성은 언제 어디서나 완벽하다.
차에 타려고 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길호는 바다향기수목원에 가자고 한다. 수목원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길호가 태워서 왔고, 진범이 도움으로 왔었다, 진범은 휠체어를 밀고 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등산로 끝에 상상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어 수목원을 둘러보면서 산책을 겸할 수 있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길호는 언제나 듬직하다. 길 안내하랴 운전하랴 자기 엄마 돌보랴 가끔 휠체어 밀랴 각종 심부름하랴 혼자 바쁜데 늘 앞장서서 움직인다. 한없이 고맙고 미안하기만 하다. 나야 운동을 해서 많이 좋아졌지만, 처제는 쉬 좋아지지 않아서 처가 처제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하나밖에 없는 핏줄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이겠지.
차에서 내리니까 우리를 축복하는 냥 비가 그쳤다. 여름이라 꽃들이 만발하다. 특히 연꽃과 페추니아가 바람결에 우리를 반긴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나는 사진찍기에 바빴다. 점심 겸으로 간식을 먹었다. 처가 준비한 음식과 술 한잔하고 우리는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으로 향했는데 차를 타니 또 비가 온다.
십리포해수욕장은 열 번은 넘게 온 듯하다. 윤봉이와도 왔었고, 한울방 가족들과도 여러 번 왔었고, 장모님과 일박도 하였고 재작년엔 막내네와도 왔었다. 신기하게 우리가 내리니까 비도 그쳤다. 우리를 환영하는 듯하다. 때마침 민방공훈련이 시작되었는데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고 썰물이라 바닷물도 없다.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처제는 병색이 완연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커피 한잔을 하니 모든 시름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온갖 사물을 보니 무더위에 지쳐있던 내게 가슴이 활짝 펴진다.
대부도에 와서 단골인 수호할머니집에서 칼국수를 먹으려 했는데 쉬는 날이다. 바닷가를 가니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햇볕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바닷가를 걸으며 지친 몸을 치유하려고 했고 사진속에 추억을 담았다. 칼국수 대신 오리구이를 먹기로 하고 물왕동으로 향했다.
온누리 장작구이는 맛이 있다. 술 한잔과 함께 먹는 오리구이는 모두들 잘 먹는다. 후식으로 나온 잔치국수의 맛에 흠뻑 젖었다. 당뇨만 아니면 국물을 다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 하늘이 도왔고 비가 도왔고 자연이 도왔다. 생각지 않았던 짧고 아름다운 여름휴가였다.
우리가 살면서 좋은 인연으로 만나 사랑과 정을 나누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족이 있고 벗이 되어 마음의 상처는 치유가 되고 기쁨은 두 배가 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지금 이순간도 마음속으로 미소를 머금고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내 건강도 많이 좋아지고 더불어 처도 많이 밝아지기는 했으나 처제의 건강이 우리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무더위와 폭염을 잠시 잊게 한 모든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2024 08 24일
짧은 바람을 쐬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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