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삶에 지쳐 무너지고 싶을 때 말없이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 마음 든든한 사람이 되고 때때로 힘겨워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려서는 나이를 먹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나이 먹는 것이 무섭고 하루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이것 또한 인생인가 보다.
매사 나는 소극적이고 말을 잘 못하는 데다가 병이 들고 지난해부터 점점 더 심해지더니 이제 처도 못 알아들어 다시 물을 때가 점점 더해진다. 그러니 남과 대화할 때가 점점 더 줄게 된다. 반사신경으로 마음을 일기에 담곤 한다.
한국 속담에는 부부에 관한 속담이 많다. 남편은 두레박이요 아내는 항아리다. 악한 첩과 더러운 처도 빈방보다 낫다. 여편네가 귀여우면 개죽을 쑤어도 맛이 있다. 영감 밥은 아랫목에서 먹고, 아들 밥은 윗목에서 먹고, 딸 밥은 부엌에서 먹는다. 계집은 젊어서는 여우가 되고 늙어서는 호랑이가 된다. 달 밝은 밤이 흐린 낮보다 못하다. 짝 잃은 기러기. 아내 없는 처갓집 가나 마나. 십년이나 데리고 산 아내 나이도 모른다. 등등 수없이 많다. 그만큼 부부가 소중하다는 뜻이겠다.
부부에 관한 고사성어도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성어가 애급옥오이다.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에다 절을 한다. 처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 처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혼 기념일과 생일을 챙겨 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결혼 100일, 1년, 천일을 챙겼는데 2천일, 3천일, 4천일, 5천일은 병원에 있는 관계로 챙겨 주지 못했다. 내년 5월이면 6천일이 된다. 그때까지라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2017년 겨울, 내 생일 선물로 처가 책을 사 왔다. 영국의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라는 책이다. 부커상은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노벨문학상과 프랑스 콩쿠르상과 더불어 값진 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받아보는 상이다. 노벨문학상은 우리나라에서 후보자로 고은 시인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는데 그 외에도 내가 생각하기로 황석영, 이문열 등 여러 후보가 거론되었으나 불발이 되었다.
요즘 들어 나라에 웃음거리가 없었는데 전 국민이 염원하던 노벨상이 나왔다. 한강이란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 축제가 일어났다. 2016년도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나도 보았는데 내가 봐도 난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쓸 수가 없을 만한데 한강은 4년간 채식을 했다고 한다. 아무튼 역사에 평가할 만한 기쁜 소식이다. 이렇게 빨리 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교육계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 그녀의 책을 받아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처가에 갈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갈 일이 생겼다. 막내 처제의 아들이 결혼을 신행길에 작은이모인 처가에 오겠다고 하여 찾아갔다. 처가는 그야말로 4인 4색이다. 네 사람 모두가 특색이 다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모두가 말을 잘 할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가 뚜렷하다. 처제가 아프고 난 이후에 많이 수척해지고 야의었을 뿐 세상을 잘도 돌아간다.
모두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굳이 뽑으라면 동서에게 정이 더 간다. 동갑인데도 나를 손윗사람이라고 예우를 갖춘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을 놓지 않고 형님 대접을 한다. 내가 아는 주위 사람 중에 신언서판을 고루 갖춘 대인이라 할 수 있겠다. 틀린 말이 하나 없고 모든 일에 앞장서며 일솜씨가 뛰어나고 유머가 풍부하며,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총명함과 더불어 솔선수범하는 자세야말로 내가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 25년간을 장인어른께 벌초를 했다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동서에게 단점이 있다면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술 때문에 두 번이나 입원한 적이 있다. 그가 건강이염려가 되어서 하는 바람이다.
처제는 처제가 아니라 내 장모님 같다. 언니와 잘 사는 모습에 반해 나를 극진히 대접한다. 아집이 있어 동서와 다투기도 하지만 집안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프고 나서 처제의 여윈 모습이 나를 아프게 하고 처는 처제를 생각하며 눈믈을 흘릴 때가 많다.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리라 굳게 믿는다. 추석때 보다 많이 좋아졌음을 느끼게 한다.
광호와 길호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광호는 처를 많이 닮은 듯하다. 광호는 맏아들답게 호탕하며 진취적이다. 옳고 그름이 얼굴에 씌여 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계획을 세우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리더쉽이 있다. 빠른 시일내에 결혼을 하여 가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호는 형과 정반대이다. 모든 것이 빈틈이 없고 논리적이다. 모든 일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후에 판단을 내리는 재판관처럼 행동한다. 그런 면에서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와 고쳐준다. 처제가 빨리 쾌차하여 길호가 취직을 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지난 일요일 막내 동서와 하람이 그리고 주영이 부부가 찾아왔다. 막내동서는 두 번째로 본다. 워낙 말이 없는 나와 인사만 할 뿐이다. 이윽고 점심 파티를 열었다. 이 집에서 10명이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란다, 뷔폐식으로 차린 음식은 맛이며 기분이 최고였다. 나는 양주 한 잔에 취기가 오른다. 내가 안 마셔서 그런지 소주는 안 보인다. 주영이는 장가를 잘 간 것 같다. 질부는 연예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달갈형의 미인이다. 말도 차분하고 신행이라 그런지 조심스러워 보였다.
처는 웃어른답게 행동했지만 슬이 문제였다. 몸이 안 좋아 요 근래에는 안 마셨는데 그날은 너무 많이 마신 듯하다. 막내 동서는 나와 두 번째 보는데도 서로 말이 없는데 비해 처와는 잘 통하며 술도 주거니 받거니 한다. 고스톱을 치면서도 둘의 술자리는 길어지고 그리하여 실수가 나오고 신행을 온 부부와 모든 이에게 이맛살이 찌게 해 내 마음은 펺치가 않다. 그래도 오직 하나뿐인 내 편인데 그 점이 아쉬울 뿐이다. 신혼부부가 돌아가고 나서 동서가 잘 설명하니 수긍한다. 처는 자기의 잘못을 금방 인정한다. 그것이 처의 장점이다.
처제는 내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가 보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남은 이야기를 하다가 듣기만 하는 내가 힘이 들어 집에 가자고 했더니 막내 동서도 일어난다. 그는 조치원까지 간다고 했다. 내가 말만 잘 하면 주거니 받거니 했을텐데 그런 면에서 아쉽기만 하다. 집에 오니 7시가 되었다. 처가 내 방에 오며 광호에게 서운하다고 말을 한다. 거기에서 내가 뭐라 하겠는가? 베이붐세대와 MZ세대차이가 아닌 견해차이일 뿐이다. 시간이 가면 해결될 일이다. 아무튼 10월의 첫 외출인 그날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모든 이가 건강하고 보다 행복하길 기원한다.
2024년 10월 16일
신혼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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