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용인을 가기로 하고 해서 처음에는 길호가 같이 가기로 했었다. 길호와는 7년 전과 5년 전 두 번 갔었다. 전날 말일이라 바쁘다고 해서 못 간다고 전화가 왔다. 처에게 지혜랑 같이 가자고 했는데 평일인데 낮에는 직장가지 않느냐고 해서 셋이 가려 했는데 아쉬웠던지 처는 안산의 박선생님과 같이 가자고 전화를 했는데 가시겠다고 하여 넷이 가기로 했다. 현숙이가 운영하는 옛날불고기집에 가기로 했다. 박선생님은 우리에게 모두 베풀어 주신다. 장모님 생신도 챙겨 주셨고 심지어 내 생일까지도 챙겨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나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가정 형편상 대학에 가지를 못했으나 꿈은 가지고 있어 부모님의 덕을 안 받고 스스로 대학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때 가축약품 회사에 위험물취급주임으로 들어가서 가축약품 중의 주사제에서 일을 맡게 되었고 4년이 지난 때 공장장님을 찾아가서 가축생리학을 배우고 싶어 대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까 나를 예쁘게 보신 공장장님은 흔쾌히 허락하며 졸업을 하면 모두 인정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현숙이와는 방통대 농학과 90학번 동기생이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뒤늦게 들었갔고 10여명 중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현숙이가 가장 나이가 적어 띠동갑이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그녀는 그날 혜은이의 파란나라를 부른 것으로 기억된다. 기태 준철 호섭 영숙 등 반가운 친구들이었다. 유미는 수녀가 되겠다고 했다. 선친 회갑 때 모두들 와서 축하해 주었고 특히 붓글씨를 잘 쓰는 준철은 만수무강이란 글을 써서 큰 액자로 만들어 왔다. 그 액자는 지금도 내 방에 걸려있다.

방통대는 졸업률이 16%로 졸업하기가 힘이 들다고 한다. 우리는 주말마다 만나 스터디를 했고, 볼링을 치고, 막걸리를 마시고 우리집에 와서 농사일도 배우고 속리산 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했는데, 3학년 다니다가 사고가 나서 50개월간 병원생활을 마치고 재입학하여 준철이와 호섭을 만났는데 준철은 영숙이와 결혼을 했다고 하며 호석은 교제 중이라고 했다. 다 그만두고 자기들은 아직도 졸업을 못했다고 하며 나와 함께 시험도 봤고 인양에 와서 보신탕도사 먹었다. 그런데 현숙이만은 졸업했고, 유아교육과 다닌다고 한다고 소식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무엇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소식이 끊겼다. 아마 모친이 돌아가시고 이사를 하면서 전화번호를 잃어버린 듯하다.

어느 날 현숙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는 부모를 모시고, 화정동에 있는 화장가든을 찾아가서 낙지볶음을 먹고 왔다,.현숙은 유아교육과를 졸업했고 결혼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전화를 해서 안부만 물었다. 나는 9년만에 졸업을 했으나 병원생활 빼면 4년만에 정상적으로 한 것이었고, 나중에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과도 졸업을 했다.

2018년 1월 길호가 동서부부와 우리부부를 태우고 용인에 있는 와우정사를 갔다. 부처님이 누워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오는 길에 현숙이가 생각나 전화를 했더니 안 받았다. 수원에 다 왔는데 전화가 왔다. 음식점을 한다고 하여 다음에 가기로 하고 아쉬움만 남기고 나중에 두 번 가서 낙지탕탕과 함께 맛있게 먹고 온 적이 있다.

현숙이는 쓰리잡을 한다고 한다. 정말 열심히 사는 친구이다. 나에게 꼭 형님이라 부르며 웃는 모습으로 전화를 한다. 12시가 다 되어서 옛날불고집에 도착을 했다. 기분좋게 들어갔는데 현숙이는 안 보인다. 현숙이는 XX화재 RC라 월말은 바쁘다고 하여 종웝원들에게 우리가 온다고 잘 부탁한다고 하였단다.

갈비를 시켰어야 했는데, 불고기를 시키니 처는 잘 먹지도 않고 종업원이 마땅치 않았고 현숙이도 없어 불평만 늘어놓는다. 내 잘못이다. 불고기는 집에서 자주 먹는데 처가 좋아하는 갈비를 깜빡하고 안 시킨 내 잘못이려니 하는데 현숙이가 급히 들어와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도 얼굴을 보니 서운한 감정이 급하게 사라졌다. 그의 신랑도 처음으로 와서 인사를 했다. 된장찌개에 밥을 먹고 인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갔다.

현숙이도 같이 차를 타고 50여m를 거니 바로 옆에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카페 이름이 ‘쉴만한 물가’라고 하는데, 안이 깨끗하고 화초들이 너무나 많아 보기가 좋았다. 현숙이는 딸이 벌써 스무살이 넘었다고 한다. 커피를 시켰는데 커피잔이 따뜻했고, 맛도 좋았다. 무엇보다 주인이 친절하고 안이 깨끗해서 잘 들어 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 좋았다. 화장실을 가 보았는데 더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먼지 하나 없어 우리집을 보는 것처럼 너무나도 깨끗해 우리 모두 흡족해 했다.

집으로 향하는데 처가 개그우먼 김미화의 딸이 카페를 한다고 하여 그리로 가면 어떠냐고 하니까 제수씨는 말없이 찾아보더니 30분 거리라며 주소만 가지고 찾아 갔으나, 조용하다, 주유소에서 물어보니 공사중이란다. 할 수 없이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고, 두 분은 피곤한지 잠이 들었고 제수씨와 나는 두런두런 이야기가 끝이 없다. 나는 주로 듣는 편이고, 제수씨의 말은 유머스러우면서도 재미있다.

아파트에 와서 칼국수를 먹고 헤어졌다. 내 실수도 있었지만, 친구 얼굴을 보니 반갑고 카페 쉴만한 물가를 보니 기분이 좋았고, 처의 친구와 동행을 하는 어찌 아니 좋을 수가 없단 말인가? 4월의 마지막 날 추억에 한 페이지를 남긴 하루였다.
2026년 5월 1일
푸른 오월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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