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호는 내 속을 들어갔다 나온 사람같다. 젊은 사람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내 자신도 놀랄 때가 많다. 생각지못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간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물론 친족들도 이민을 생각해 본 일이 없기에 놀랐는데 막상 도착을 해 보니 잘 왔다고 스스로 느끼는바 감회가 새롭다. 멀리도 아닌 월미도에 있었다. 월미도는 예전에 자주 왔던 곳인데도 이곳은 처음이었다. 가면서 이민에 관한 것을 핸드폰으로 검색해 봐도 별로 와 닿는 것이 없었는데 정작 들어가 보니 역사가 꽤나 오래된 듯하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 선조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개척하고 삶을 그리고 그 발자취를 더듬어 후손들에게 인천시민과 해외동포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역사적인 박물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세워 100년의 이민역사를 체계화하고 700만 동포들의 삶과 애환이 그려지고 동시에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역사와 긍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매주 월요일은 쉬고 입장료는 무료인데 직원들이 참으로 친절하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아담하다. 우리는 지하부터 내려갔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자는 1903년 그러고 보니 조부님이 태어났던 그해이다. 미주 하와이로 떠난 102명이라고 한다. 당시의 사람들의 복장과 준비물을 챙긴 것을 보니 놀랍기만 하다. 쌀가마니 됫박도 가지고 갔다고 한다.
우리는 지하부터 지상 2층 1층을 샅샅이 둘러보며 사진찍기에 바빴다. 그당시 귀중한 전시자료로 오늘날의 여권과 같은 집조가 특이하게 보였다. 그것은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니기에 불편했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민자들에게 목숨만큼이나 소중했을 것이리라. 그즈음 하와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동남아는 물론 남미 그리고 쿠바까지 갔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700만 동포가 해외 모든 나라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측은하고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만 하다.
2층에는 조선말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조신인의 모습과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인천항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 그리고 하와이의 정세를 소개하고 있다. 1900년대 초기의 지폐도 볼 수 있었다. 102명이 타고간 배 갤릭호도 있고 배 안에 있는 전시물과 함께 이민한 할머니 한하나씨의 고생담의 증언과 함께 사진이 있어 찰칵. 탑승한 배의 화물칸에 소와 말이 같이 타고 그 냄새로 인해 기름냄새로 인해 고통을 받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그 시절의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한국이민사발물관 안에 교실이 있었다. 그당시 고육열에 불타던 이민 한인이 세운 하와이 한인학교라 하는데 처도 이곳에서 또 한 번 찰칵.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노총각들이 결혼문제로 한국땅에 있는 신부를 편지로 사진으로 보내 결혼했다는 이야기 등 소설에서나마 볼 수 있는 글들이 소개되고 있어 그 시절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1층에는 각종 나라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멕시코에서 선인장을 재배하는 모습 지상낙원을 꿈꾸며 도착한 그곳에서 뜨거운 불볕더위와 보도듣도 못한 에네켄 밭으로 끌려가 고생을 하는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각종 나라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모습들이 비교적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어찌 되었든 모든 이민자들이 피와 땀으로 일으킨 한인들의 삶이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감동으로 전해져 우리나라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이곳에서 새삼 알게 됨에 나 나름대로 성과를 보게 되어 좋았다.
고국을 등지고서 이역만리 타관살이
지치고 쓰러져도 또다시 일어나는
피와 땀 그 삶의 애환은 한인들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 곳을 나와 동서에게 정문을 촬영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서는 나와 동갑이지만 모든 면에서 나보다 어른같다. 논리정연한 말솜씨며 일하는 모습이 언제나 밝다. 아무리 처제가 싫은 소리 해도 묵묵히 이겨내는 아름다움 내가 배우고 존경하고 싶다. 우리는 월미도에 있는 등대로 향했다. 처와 처제가 토스토와 커피를 사 오고 휠체어는 동서가 밀었다.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해 본 적이 없다. 10년을 보아 왔지만 큰 소리 한 번 안내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이다. 술을 좋아하여 핀잔을 듣지만 여유로운 모습 정말 보기 좋다. 등대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자매의 생일을 자축하고 있었다.
실개천 흘러 흘러 강물 되고 바다 되듯
아기가 자라나서 어른 되고 노인 되네
수 많은 사연 속에서 엮어가는 인생길
등대에서 저 멀리 보이는 서해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없이 펼쳐지는 바다 그 원천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바다처럼 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돌아간다. 자연이 이렇게 넓고 끝없는데 우리네 인간은 왜 싸우고 이겨야 하고 전쟁을 하는가? 자연의 섭리로 포용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서로 아끼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처는 나와 결혼한지 10년이 넘었다. 주사가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초월해 서로 믿고 의지한다. 이처럼 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헌데 병이 자꾸 찾아와 걱정이다. 올해는 더 건강해졌으면 한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없다. 단점만 있는 사람이 없고 장점만 있는 사람 없다. 그러함에도 유독 나는 단점이 많다. 말도 못해 늘 꿀먹은 벙어리처럼 살았다. 왕따 생활도 수십년 병원생활도 수십년 그 아픔과 고통의 순간속에서 빼내 준 사람이 처이다. 내 수많은 단점을 극복하게 해 준 사람인 처를 어찌 사랑 안 할 수 있겠는가?
드넓은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네
자연을 본받아서 이해하고 노력하자
존엄한 인간이기에 사랑으로 안으리
올해 육순을 맞이한 처제 또한 대단한 사람이다. 가족이란 미명아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처제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참아야 하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힘들어 동서에게 싫은소리를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애정이 넘쳐서 그런 것 같다. 효심이 지극한 처제에게 허리가 안 좋아서 걱정이다. 이제 60 한창 나이에 빨리 고쳐 완쾌되면 얼마나 좋을까? 처제에게 할 말이 없다. 어쩌다 우리 부부싸움을 하면 언니 편을 안 들고 내 편을 든다. 늘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인데 처제는 내가 무한대의 정을 쏟는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길호는 고집이 센 편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보면 자기 주관이 강하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보물같은 존재이다 어디를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고 안 가본 곳을 선택한다. 직장 다니며 학교 다니는 그는 일어에도 능통하고 장학금을 받는 수재이다. 내가 차에 타거나 내리면 가장 먼저 달려온다. 어디를 가도 장애인화장실이 있으면 처가 없으면 늘 길호가 옆에서 부축을 한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시키면 단발로 끝나지만 매 번 그런다. 그것이 인성이다. 인성은 부모에게서 배운다. 길호에게 늘 배우고 산다.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순번째 처제생일 기쁨으로 맞이하고
건강 빌어 처의 생일 사랑으로 승화하니
가족의 끈끈한 힘은 노을처럼 빛나네
우리 일행은 장모님을 안주삼아 오이도로 향했다. 오이도는 자주 왔지만 20여년전에 장애인모임에서 조개구이를 팔려고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길호가 온 곳 오이도에 덕섬조개구이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갔다. 나도 경치 좋은 그런곳이 있는 줄을 몰랐다. 칼국수도 팔고 회도 팔고 조개구이도 판다는 것이다. 조개구이를 먹기로 했는데 처제가 생선회로 바꾸었다. 파전에 산낙지에 소주가 겯들인다. 생일 케이크에 초 두 개의 분위기는 제법 근사하다. 안주속에 술은 잘 넘어가고 노을이 지는 석양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이렇게 자매의 생일은 석양에 빛나는 노을처럼 평화롭고 아름답게 펴져 건강과 행복을 덤으로 얻어 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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