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부터 처는 바쁘다. 그제 오전에 우리 두 부부가 대청소를 했는데 오늘 혼자 또 쓸고 닦고 장에 다녀오더니 음식을 만든다. 처 보고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더니 새벽부터 축하한다면서 늘 하던 버릇처럼 뽀뽀를 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그런 처가 고맙기만 하다. 새벽 7시 반에 조합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님 생일 축하한다면서 건강하시라고 한다. 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축하를 해 주니 기분이 좋다. 아침상을 보니 가지 수는 별 차이가 없지만 내용이 다르다. 홍어회무침에 북어찜에 소고기볶음 등등 그리고 잡곡밥이 아닌 흰쌀밥이 올라왔다. 예전의 모친께서 달걀 후라이에 김 구이를 구워 주시던 생각을 해 보았다. 이렇게 처가 있어 생일상을 받아보니 새삼 감개무량하다.
재봉이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에게서 전화로 혹은 문자로 축하해 준다. 재봉이는 슬슬 나를 놀려 가면서 축하를 해 준다. 막내와 막내재수씨에게서 저녁 같이 하자고 카톡이 왔다. 처는 농협좌담회 때문에 목감에 들어 갔다가 왔다. 출자를 더 하라고 한단다. 최소한 일천오백만원은 넘기라는데 난 일천만원뿐이 안 되니 그럴 법도 하다. 해서 농협에 가서 간신히 백만원을 만들어 출자를 하니 그래도 기분이 개운해진 느낌이다. 집에 오니 대호 병환 등 여러 친구들에게서 축하문자를 보내왔는데 정작 매번 와서 축하해주던 여동생인 경희에게서는 전화도 문자도 없다. 오누이의 인연을 끊으려나 보다 서운하기만 하다. 내가 지에게 무슨 큰일을 저질렀다고 넉달 째 연락을 끊고 산단 말인가? 어려울 때마다 찾아와서 울면서 도와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살 만 하니까 발을 끊고 산단 말인가? 큰 이모 말씀 마따나 병신 오빠하고 살아 준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하야 하지 않은가 정말 여자의 마음 알 수가 없다. 하긴 모친께서 오죽 했으면 장례식장에도 오지 말라고 했을까? 동생들에게 생일때마다 문자를 보내도 답도 없다 기대도 안한다. 하지만 많지 않은 가족인데 정작 동생들에게 문자 한 마디라도 받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처제가 7시에 온다고 카톡이 왔다.
막내가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하는 듯 하다. 어차피 동서네 가족이 오면 못 나가니 집에서 차리자고 해서 생선회를 떠 왔다. 국 있겠다 홍어회 있겠다 조개무침 북어찜 등등 있겠다. 간소하게나마 차려서 손님에게 먹이고 싶었다. 오후 6시가 넘어 준호에게 전화가 왔다. 큰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가려고 했는데 오늘 제 생일이라 친구들과 놀기로 했어요 하는 것이다. 자기는 양력을 쇤다고 한다. 아무튼 축하를 해 준다고 잘 놀다 오라고 말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번도 보지 못한 손위 처남 기고일이다. 지난달 처남댁 생일에 축하문자를 보냈을 뿐이다. 준호는 오늘 장학금을 탔다고 제수씨에게 들었다. 다시금 축하를 마음속으로 전했다.
7시가 되니 막내와 동서네 가족이 왔다. 동서는 나 때문에 일찍 퇴근한 모양이다. 막내가 사 온 양주와 함께 저녁을 같이했다. 동서네와 막내네는 처음으로 겸상을 한 것이다. 막내가 저녁 예약을 취소하고 합석하니 그럴 듯 하다. 양주에 맛을 축이니 기분이 좋아진다. 길호가 사 온 케잌을 자르고 몇 순배 도니 모두들 취기가 온다. 주로 처제와 막내, 동서가 이야기하고 양념으로 처가 끼어든다, 막내 제수씨와 길호와 나는 말없이 먹기만 한다. 양주를 비우고 소주 네 병에 맥주 두 병에 농담반 진담반 가족애로 뭉쳤다. 화두는 장모님이다. 처제가 가엽고 동서가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통닭 두 마리를 시켜 한 마리를 길호에게 먼저 보내고 취함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어 벌어진 고스톱 사돈간에도 잘 어울린다. 누가 따고 잃고가 중요하지 않다. 제수씨도 처제도 좋아하니 밤 12시까지 취한 채 뭇음꽃을 피웠다. 갈 판에 끓이 라면의 맛 그 향기가 코를 찌르지만 나는 참아야 했다. 참으로 유쾌한 하루였다. 이런 날이 다시 돌아올까? 기분 좋은 그러나 어디엔가 씁쓰름한 하루였다. 최근 10년간 술을 가장 많이 한 행복한 날이었다.
幸福이란 명제 앞에 유쾌함이 무엇인가?
오가는 정 대화속에 웃음꽃이 피어남에
생일 상 차려준 처와 家族愛가 萬事로다
'해운의 일기 그리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이민사박물관과 자매의 생일 (0) | 2019.02.26 |
---|---|
외암촌과 신정호수를 다녀와서 (0) | 2019.02.19 |
정초 나들이 (0) | 2019.02.07 |
장모님을 찾아 뵙고 (0) | 2019.01.14 |
목우회원들과 시조 (0) | 2018.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