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차를 본 것과 기차여행을 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68년이였다. 50여년 전이다. 그 당시 둘째 고모님은 서울 현저동에 사셨다. 여름방학을 겸해서 혀를 고친다고 고모님댁에 열흘간 있었다. 한의사에게 혀에 침을 놓고 안면에 침을 놓았다. 혀 놀림을 부드럽게 하려고 했던 것인데 굳은 혀가 풀어질 리 만무다.
둘째 작은아버지는 직업군이셨다. 원주에 사셨는데 월남 간다고 해서 조부님과 모친과 함께 쌀가마니를 가지고 원주로 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경기도를 벗어난 것도 처음이었고 대교와 굴을 세며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굴과 다리가 28개와 31개로만 기억난다. 암튼 좋은 경험을 했다.
내가 두 번째 원주와의 인연은 93년도이다. 인천 산업재활원에 있을 때 같은 병실에 나보다 네 살 더 먹은 승희형과 3년을 함께 지냈다. 낮에는 물리치료 하며 원예공부를 하고 장기를 두고 밤에는 오징어를 씹으며 가끔 술 한 잔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하루에 한 두권의 책을 읽었다. 태백산맥, 아리랑객주 등 주로 대하소설을 많이 보았다. 거의 같이 시기에 퇴원을 하고 원주로 찾아가 강릉에 같이 가기도 하며 우정을 같이하기도 했다. 원주는 왠지 모르게 친근한 도시로 여겨진다.
11시경 길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12시 반까지 오겠다고 한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처와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준비를 하고 나갔다. 다섯 달 만에 처제를 보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으나 처제는 별로 말이 없다. 이 근방 어디에 갈 줄 알았는데 원주에 간다는 것이다. 서로 말이 없고 처만 혼자 떠든다. 처제는 핼쑥하고 많이 여의었다. 이름도 생소한 뮤니엄산을 간다고 한다. 과연 그곳엔 뭐가 있을까?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길호가 복지카드를 달라고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요금이 생각보다 꽤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뮤니엄산은 산속에 감춰진 것이란다.
건축물의 대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2013년에 개관했다고 하는데 이런 좋은 곳이 있는 줄 전혀 알지를 못했는데 길호는 휠체어가 가는지부터 확인한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뮤지엄은 오솔길을 따라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스톤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어졌는데 본관은 네 개의 윙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되어 있고, 여름속의 물이 시원함과 함께 자연의 예술로 승화시켜 삶의 여유와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다. 소중한 자원이 웃음 속에서 마음마져 풍요롭게 한다.
우리는 플라워가든에 들어섰다. 순수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붉은 패랭이 꽃과 하얀 자작나무 길이 있는 향기로운 플라워가든은 자연과 예술 조각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이 솟아나는 듯하다. 워터가든은 본관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눈부신 물의 정원이다. 우리는 본관으로 들어섰다.
종이 박물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종이로 된 모든 물건과 옛날의 인쇄기부터 모든 것이 구비 되어 있었다. 국보부터 보물 등 다량의 지정문화재와 더불어 다양한 공예품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1층과 2층을 번갈아 돌아다니며 사진찍기에 바빴다. 미로속에 빠진 것처럼 길호 아니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짜여진 본관은 웅장하고 화려하고 감칠맛이 난다.
우리는 창조갤러리인 미술관으로 향했다.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회화작품과 종이를 매체로 하는 판화 등 여러 작품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근 현대적인 서양화 한국화를 비롯 미술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등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영상관과제 임스럴관은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1인당 28000원이란다.
우리는 스톤가든으로 향했다. 그곳은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했는데 산책길로 아름답게 만들었고 여러 종류의 조각품을 만날 수 있었다. 대지의 평온함과 돌, 햇빛, 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여러 곳을 관람할 수 있었다. 처는 연신 환호성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오랜만에 밖을 구경할 수 있었고 처가의 안부를 알 수 있었고 마음으로부터 힐링할 수 있었고 처제를 보며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고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볼 수 있었고 산 위에서 산속을 볼 수 있었고 풍경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쉴 참에 승희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올라올 때 전화를 했으면 밥이라도 같이 먹을 걸 그랬다고 서운해 하신다. 30년이 되어도 변치 않는 정에 감사드린다오는 길에 길호가 좋아하는 경양식집에 들어갔다.
함박스테이크와 함께 맥주를 시켰다. 오랜만에 마신 맥주는 시원하고 좋았으나 스테이크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삼겹에 소주 한잔이 낫지. 그래도 처는 마냥 좋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보니 마냥 좋은가 보다. 자매의 대화가 끊기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자연이 너무도 아름답다. 곳곳에 많은 자연들이 서로 오라고 손짓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부를 위해 모든 것을 세심하게 살피는 길호가 고맙기만 하다. 집에 오니 6시가 넘었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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