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역려과객 2020. 5. 9. 17:04


 

장모님 때문에 처제가 고생을 많이 한다. ·대변을 받아내는 것도 모자라 하루에도 수차례 이것저것을 요구하신다. 그 시중을 드는 처제는 말라가고 신경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한동안 코로나19로 노이로제까지 걸리더니 모녀지간에 서로 못 할 일을 하고 있다. 처제는 처제대로 날카로워 동서나 조카들에게 큰소리치며 꼼짝을 못하게 하고 처에게도 자기 집에 못 오게 한다고 한다. 며칠 전에 갔다가 물도 못 먹고 왔다며 어찌하면 좋겠냐고 내게 하소연을 한다. 남의 말은 전혀 안 듣고 헛소리만 한단다. 이러다 큰일 치르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두어 달 전에만 해도 만리포해수욕장에서 회를 사 주던 처제인데 자기 환갑 때는 가족 모두 노래방까지 갔었는데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제 처삼촌이 돌아가셔서 동서와 처가 상가에 다녀오더니 돌부처같은 동서가 처제와 장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죽고 싶다고 하며 장모님이 얼른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전 처음으로 말하더란다. 이러다 장모님보다 처제가 더 큰일 생기겠다고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처는 처제 어떻하냐고 매일 울면서 나보고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당사자인 동서나 조카들도 처제에겐 꼼짝을 못하는데 나인들 뾰족한 일이 있을까?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엄마를 같이 죽겠다고 한다. 어제 길호 생일이라 문자를 보내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뒤로 하고 감정 앞세우지 말고 설득해 보라고 했다. 혼자 안 되면 형과 아빠와 같이 엄마를 달래 보라고 하고 안되면 내가 일요일에 갈테니 같이 노력해 보자고 했다.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이 나 울컥했다. 담대하고 강인하셨던 어머니 조부에겐 효부이셨고 음식이며 가정일이며 농사일이며 모든 것이 완벽했던 어머니이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담임인 원용례선생님이 내 준 미술숙제를 안 해 갔는데 집으로 쫓아 버리면서 숙제를 해 오란다. 그 당시 학교와 집은 4킬로였다. 울며불며 집에 갔더니 화를 내면서 옷을 벗기고 밖으로 내 쫓으셨다. 그리고 바카스 병에다 인형을 만들더니 나를 씻기고 학교로 보낸 강인한 어머니셨다. 나 때문에 많이도 우셨던 어머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셨다. 언제나 인자하셨다. 동네에서 처음으로 군대 가셨고 예비군 초대 소대당 새마을지도자로 맣은 일을 하면서도 우리에겐 따뜻하셨다. 조부님은 회초리를 드셨고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었어도 우리에겐 매 한번 안드셨다. 조부님 돌아가셨을 때에도 안 우셨던 아버지 내가 다쳤을 땐 통곡을 하셨다, 내게는 부모님이 산이요 바다요 해요 비빌 언덕이셨다. 그런 아버지 어머니 결혼 50주년 금혼식때 장미 50다발을 선사했는데 이제 드릴 사람이 없다. 장모님은 병환중이고....




 

곧바로 이발을 하고 작은 집에 찾아갔다. 처는 한 달에 한 번 찾아가지만 난 특별한 날 일때나 찾아간다. 효를 아는지 말이 없으시던 작은 어머니도 처에게 수고한다며 고맙다고 하신다. 이것이 보람이 아닌가 싶다. 모처럼 나왔으니 공원에서 바람을 쐬고 제육볶음과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왔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나는 해마다 카네이션을 달아 주었는데 난 누구에게 받아보나 혼자 중얼거렸는데 막내 제수씨가 꽃다발을 들고 재영, 준호와 함께 찾아왔다. 갑자기 뭉클해진다. 온누리에서 오리구이를 먹고 연꽃마을에 갔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아직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고 화분도 빈 상태이다. 그래도 좋았다. 조카들이 찾아주고 바깥 구경도 하고 이것이 사람이 살아갈 여명이요 운명일진데 그들을 보며 그래도 헛되이 살지 않았구나 싶다.

    



 

오늘 아침에 생전 처음으로 장모님께서 전화를 하셨단다. 이것 저것 먹고 싶으니 사 오란다. 해서 갔는데 밤늦게 술 한 잔 하고 온 처는 엉엉 울기만 한다. 하나뿐인 혈육인 처제가 죽으면 자기는 못 산다고 한다. 가여운 처를 달랬으나 살려 주라고 하며 몇 시간을 울기만 한다. 인명은 재천인데 내가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코로나19가 처가는 물론 우리집에도 이렇게 강풍이 몰아칠지 한 달 전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중증 우울증이란다. 이러다 처까지 헤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지 생각하기조차 싫다. 일요일인 모레 처가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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