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가을의 문턱에서

역려과객 2013. 9. 1. 15:03

 

가을의 문턱에서
2006.09.06.

 

 


  소리 소문없이 가을이 왔다. 이젠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처서가 지나 백로가 찾아 오니 썰렁하기조차 하다.  아침 6시에 창문을 여니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낙엽을 쓸어 모아 마당 복판에다 불을 지피던 시절.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바라보며 감 잎이며, 콩, 깻잎 등 타는 냄새가 정겨웠다. 이제는 쓸 지도 못하지만 쓸 마당도 없다. 지나간 추억만 자리 잡는다.

 

  군침을 못 이기는 체 풍년이라는 따뜻한 어귀가 드높기만 하다. 뭉게구름에 실리고 저녁 노을에 익는 호젓한 등불로 사색을 하며 앙상히 여미는 문풍지에 귀 기울이며 가을의 향을 맡았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후회와 반성의 계절이기도 하다.  지금 가을 하늘은 푸르다. 벼도 꽃을 피웠고, 고추도 새빨갛다. 하얀 참깨도 소복하다. 예정했던 수확을 거두면 풍성함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나 많다.

 

  지나가 버린 동심의 정취가 문을 두드린다.  수많은 시간을 함께 자리한 일기 나의   '숙' . '숙'과 더불어 생활한지 30년이 넘게 흘렀다. 하루 거른 날 별로 없이 동고동락하면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적당히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그래서 때로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눈물도 흘렸었다.

 

  같이 웃고 같이 바라보고 아쉬움에 몸부림도 쳤었다. 고귀하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와중에 오늘 40년 지기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이렇게 만나나 보다.

 

  일기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욕망을 절제케 하고 기회를 다시금 준다. 반성할 기회를 주고 생각할 여유를 준다. 급한 내 성격에 되돌아 보게 하는 힘과 용기를 준다. 그것은 내게 살아 있다는 증거서류가 됨과 동시에 드넓은 희망이 아닌가 싶다.

 

  욕심을 내서 위를 쳐다 보았다면 과연 나는 존재 할 수 있었는가? 다리가 없다고 불평한다고 해서 다시금 생긴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로 욕망을 줄이고 진솔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앞이 있고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동반자인 '숙'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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