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어머님 전 상서

역려과객 2013. 9. 5. 15:17

 

어머님 전 상서
2006.10.13.

 

 

    
  가을 하늘이 드높아요 푸르러요 맑습니다. 전형적인 가을이네요. 마치 어머니 마음을 보는 냥 아름답네요. 이렇게 평온한 하늘은 마음속에 만이라도 있는 어머님을 그려보게 됩니다. 그 동안 안녕하셨지요?

 

  어머니! 오랜만에 불러보네요. 언제 들어도 정겨운 글자입니다. 49제 때 뵙고 오늘 두 번째로 뵙네요. 세상 그 어느 단어보다도 고귀한 단어요 이름이요 부르고 싶은 말입니다. 그 단어가 이렇게 가슴 깊이 절여 올 줄 몰랐네요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다정하신 어머니 그리며 명상에 잠기곤 하지요.

 

  어머니! 오늘은 늦잠을 잤네요. 일어나니 6시 30분 평소 같으면 6시에 눈이 떠졌는데  지금껏 보이지 않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려졌어요. 새벽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네요. 부친도 편찮으셔서 새벽 네 시에 일어 나셨는데 오늘은 저보다 늦게 일어나셨네요. 많이 안 좋으세요.

 

  어머니! 오늘이 어머니 보내신지 1년이 되었네요. 어머니 돌아가시면 저도 따라 죽겠다고 했었지요.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헌데 슬퍼할 겨를도 없이 숨가쁘게 달려왔네요. 가장 아닌 가장, 주부 아닌 주부로 부친과 내 보금자리를 새로 꾸미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생전에 말씀 안 하시던 아버지도 오늘은 어머님이 그리웠나 봐요. 아무런 음식을 다 먹어 봐도 어머니의 맛이 안 난다고요. 왜 안 그러겠습니까? 저도 그런데요. 50년 먹었던 입맛이 어디 가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반찬을 해 주어도 그 손 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특히 김치찌개는 아무리 끓여도 그 맛이 나지 않네요.

 

  어디 김치만 그럽니까?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이젠 그 맛을 찾아 볼 수가 없네요.  철마다 담그는 메주, 고추장... 아니지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어머님이 해 주시는 녹두 부침개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유명했었지요. 우리 집의 기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녹두와 쌀을 3대 1로 섞은 어머니의 노하우는 당신의 동서도 딸도 며느리도 모른답니다. 그 맛은 과거로 돌아갔네요 어머니.

 

  약하다는 이유로 맏이라는 이유로 장애라는 이유로 당신은 저를 부엌으로 보내지 않으셨지요. 그 덕(?)으로 라면 한 번 안 끓여 봤지요. 빨래 한 번 안 했습니다. 지금도 밤이면 과일을 들고 나가 아버지께 깎아 달라곤 하지요. 지방을 안 쓴다고 작은아버지께 혼나기도 하지요. 그러던 제가 살림을 맡아 한지가 오늘로 1년이 되었네요.

 

  어머니! 저는 늘 불효만 저질렀지요. 아파서, 약해서, 다쳐서 늘 가슴을 졸이게 했을 뿐 아니라 당신의 가장 큰 소원인 맏며느리도 안겨 주시지 못했습니다. 물론 손자도 안겨 드리지 못했지요. 어디 그 뿐입니까? 못 난 자식을 위해 큰 일 때면 정한수 떠놓고 빌어 주신 어머님은 정말 하해와 같습니다. 그 은혜를 만분의 일도 못 갚았는데 이젠 뵐 수가 없네요.

 

  그런데 이번에 또 큰 죄를 또 저질렀습니다. 몇 개월만에 찾아온 여동생 경희를 내게 대든다고 싸워서 기고에 참석도 못하게 쫓아 보냈습니다. 장자로서의 포용력을 당신의 만분의 일만이라도 알았다면 그냥 참고 넘어갈 일인데 저는 아직도 수양이 부족한가 봅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용서를 빕니다. 엎드려 절하옵니다.

 

  아버지와 동생들에게도 용서를 빌었습니다. 당신은 늘 그러셨지요. 잘못도 없는데도 잘못했습니다. 그것이 가정에 구순해지기 위함이라고요. 헌데 저는 일 년만에 대형사고를 쳤으니 언제나 철이 들까요. 제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네요. 막내가 가면서 한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형 다 좋은데요 방법이 틀렸습니다'라고요. 그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둘째 작은 어머니, 큰 이모, 셋째 고모님이 전화를 주셨고 셋째, 넷째 이모님과 막내 외삼촌 내외와 막내 작은 아버지, 그리고 문수 내외와 동수내외 등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셨어요 물론 동생들과 제수씨 그리고 사거리 작은 작은 어머니와 미연이가 수고 해 주셨지요. 이렇듯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네요. 당신의 어지신 모습을 떠 올리며 말입니다.

 

  어머니! 뵈고 싶습니다 단 한 순간만 이라도요. 아니 단 1분만 이라도요. 뵈 올 수만 있다면 수많은 불효를 조금씩이라도 만회하고 싶습니다. 머지않아 결혼도 하고 더욱더 부친께 정성을 다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제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세요.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십니다. 봄 여름에 사골도 사서 끓여 드리고 보약도 지어 드리고 주사도 맞혀 드렸는데도 제 손이 닿질 않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머님의 품이 그립네요. 그렇게 바가지를 긁어 댔는데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품이 그리운가 봅니다. 칼질 가위질도 못하는 제가 드높은 어머니의 사랑을 어떻게 쫓아 가겠습니까 마는 자꾸 약해지시는 그 모습을 뵐 때마다 가슴이 아려 오네요.  그 많은 농사를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해야 하시는 모습을 뵐 때마다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어머니!  촌초심이라 했지요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도 큽니다.  불효자는 그 자리를 메울 수가 없네요. 막내 말 마따나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부친께서 저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여유와 힘이 필요합니다. 열피파각이라는 말이 있지요. 남을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나 자기 생각없이 따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하지요. 50년을 헛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동생들과 고스톱을 치면서도 여동생으로 인해 가슴이 메워집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따뜻한 정이 그리운 겁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의 손 맛도 원인이요 제가 부족한 것도 그렇기도 하지만 입 맛을 잃고 허리도 안 좋고 천식도 심하고 목 디스크가 와도 그래도 일을 하러 가십니다.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하고 바라 봐야만 하는 이 불효자는 가슴 저 밑이 타 들어 갑니다. 몇년을 더 사시겠다고 저렇게 일을 하시니 병이 더 깊어 집니다.  늘 일과 담배에만 취미인 듯 그래도 지치셨는지 이젠 화도 안 내십니다. 그래서 뵙기만 더 민망스럽습니다.

 

  어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아버지 좀 돌봐 주세요. 담배 좀 줄이라고 하시고 일도 적게 하시라고 말씀해 주세요. 부족하나마 저도 전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비록 부서지고 망가졌어도 마음만은 건강합니다. 제 소원이 있다면 단 하나 아버지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도록 사시는 것 외엔 없습니다. 저는 아무 여한도 없습니다. 저는 제 일을 스스로 찾아 합니다만 아버지의 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수 있다면 저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께 힘도 불어 넣어 주세요. 1년 전 보다 더 여의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못 보겠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어머니! 그 곳은 춥지요? 그래도 이젠 덜 외롭겠네요. 훗날 아버지 돌아 가시면 합장해 드릴께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럴 수만 있다면 훗날이라도 따라가서 못다 한 효 다 해 드릴께요. 다시 찾아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셔요. 어머니 뵙고 싶어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2006 음 8월 스무 하룻날

 

     당신의 큰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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