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무리했나 보다. 다리는 허벅지까지 부어 올랐고 아침엔 코피까지 터졌다. 나흘 연속 취해서 자야했고, 어제는 산정호수에 다녀왔으니 겹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신행에서 돌아온 이후로 친구들이 찾아 왔고, 산소에도 들렀고, 찾아 주신분들께 인사를 했다. 가족모임도 있어 기분 좋게 마셨다.
동네에선 매월 정초에 척사대회를 한다. 10여 년 전부터 총무를 봐 왔다. 통장님이 이번에 처음으로 동네에서 야유회 가는데 나 때문에 낮은 코스로 잡았다고 신부 인사 시킬 겸 해서 같이 가자고 하신다. 처음엔 볼 일이 있어 찬조만 하고 못 간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오히려 좋겠다 싶어 친목회엔 못 간다 양해를 구하고 가기로 했다.
17명의 동네분 중에 여자는 내 아내 혼자였다. 노인들께는 전날 절을 올렸고, 주민들은 차에서 편하게(?) 인사를 올렸다. 늦게 시작했으니 잘 살라고 모두들 덕담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관광에는 음주가무가 늘 따라 다닌다. 주는 사람이 여러 명이라 금방 취기가 올랐고, 아내도 노래 한 곡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환호성이다. 두 시간 반을 달려 산정호수에 도착하였다.
거의 대부분 명성산에 등산을 하고 나와 몇 분만 산정호수를 관람했다. 조각공원은 깨끗하고 소담스럽고 아기자기하다. 공원에 담긴 작품들을 감상하며 이 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산 위에 호수가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맑은 호수와, 단풍으로 얼룩이 된 주위의 산들, 공원의 잘 배치된 작품들이 인심 좋은 상인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화를 연출한다.
국화 꽃잎과, 장미 꽃잎을 사니 늙은 할머니는 더덕 한 뿌리를 까서 입에 넣어 주신다. 지나 오는 길에 그 할머니는 대추 몇 개를 손에 쥐어 주시니, 이것이 할머니의 아니 이 곳 주민의 인심인가 보다. 우리는 풍선 터뜨리기도 하고 배를 타기도 하며 여유를 만끽했다. 옛 소품을 좋아하는 아내의 말 한마다에 조그만 거울이 달린 화장대 하나를 샀다. 다리가 아팠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10여 년을 등산만 하던 아내가 산을 코 앞에 두고 등산을 못하고 나랑 호숫가를 걷는 자체가 미안하고 안스러운데 내 생각과는 달리 같이 있는 것이 행복한지 마냥 즐거워 한다.
시험이다 과제물이다 할 일이 태산 같이 많은데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이 내 성격상 안 맞지만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마음일 뿐이다. 우리는 이동갈비와 함께 두꺼비로 흥을 돋구었다. 족구를 하는 모습을 일일이 카메라에 담았다. 집에 오는 길에 통장은 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고 제의한다. 통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힘이 들어도 말없이 따라 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인간은 더불어 산다. 비록 짧은 여행이라도 서로 도와 가며 살아가는 소박한 정이 구김살없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내게 주어지는 이 삶이 가정과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전해졌으면 한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대추 몇 알을 쥐어 주는 할머니의 후한 인심처럼 세상을 그렇게 더불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