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을사년 설을 맞이하며

역려과객 2025. 2. 1. 14:50

 

 

 

우리나라는 설날과 추석을 가장 큰 명절이라 한다. 설날은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께 세배하고 떡국을 먹고 성묘에 다녀와서 동네 웃어른께 세배하는 날이다, 세대가 흐르니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뀌지만 고유의 풍습은 변하지 않고 살아왔다.

 

 

 

나는 조부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제와서 말하지만 모친 앞에서는 누워 있었어도 부친 앞에서 한 번도 누워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부님과 부모님 세 분의 임종을 지켜 본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모든 것이 조부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옆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한다. 그런데 이번 설에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내 집에서

 

 

 

생일이 빨라서 일찍 초등학교에 갔다. 부모님은 가장 약하고 말도 잘 못하는 나를 안 보내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데 나는 왜 안 보내주냐고 떼를 쓰며 울었더니 마지못해 조부님께서 나를 이끌고 학교에 갔다. 줄을 서고 반을 배정받았는데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또 울었더니 할 수 없이 학교 측과 합의를 봐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이러다 말겠지 하는 부모님 생각과는 달리 6년 개근을 받았다. 150명의 동급생 중 내가 유일하다.

 

 

 

20096월에 선친 장례를 치르고 우리에게 남은 돈이 100만원이었다. 내가 자식이 없어 산소 자리 100평을 두 아우에게 넘겨주었는데 막내마저 둘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재현이는 군대 들어간다고 해서 처가 50만원을 주었는데 고맙다고 하면서 휴가 나오면 꼭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설날과 추석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이나 후에도 들이 인사하러 온 적도 없었다. 그에 비해 재민이 내외는 결혼하겠다고 찾아오고 결혼한 후에도 인사를 하러 왔다. 당질도 인사차 오는데 인사를 받아서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늙은 탓일까? 모자란 탓일까? 알 수 없다.

 

 

 

아무리 세대가 바뀌었어도 MG들의 인식은 다른가 보다. 올 설은 세 명이 빠져 아쉬움이 남았다. 장조카 내외는 골프를 치러 해외로 나갔고, 준호는 직장 때문에 참석을 못했다. 지금까지 재현이나 호연에게 큰아버지 큰엄마라고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호연이가 오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불러서 호통을 칠까 하다 모처럼 온 애에게 벽두부터 큰소리 내기 좋지 않을 듯하여 참았다. 안녕하세요?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너무 섭섭했다.

 

 

 

떡국을 먹고 세배하고 덕담하고 이런 모습이 얼마나 정겨운가? 세배도 안 하고 산소에 간다고 일어선다. 처가 부른 고용인이 와서 그런가? 다 커서 세뱃돈을 안 주니 그런가? 하는 서운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30여년을 봐 왔는데 제사상에 무엇을 어디에다 배치하는지 아는 조카들이 없다. 우리가 죽으면 누가 하든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늙어서 이렇게 서러운 적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용인에 업혀 산소에 갔더니 영미가 작은어머니 중환자실에 있다고 소식을 전한다. 감기로 입원했는데 심정지가 왔다고 하신다. 밤에 미연에게 전화를 해서 근황을 살폈다. 언제 병실로 옮길지 의사를 만나 봐야 한단다. 이튿날 사촌 제수씨께서 오셨다. 연명치료에 하겠다고 하며 그 집안도 난리가 아닌가 싶다. 어느 집이나 건강과 돈 때문에 조용한 집안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 집도 빚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걱정이다.

 

 

 

다들 돌아가니 처가 병이 났다. 70을 넘긴 할머니가 되어 안 아픈 곳이 없나 보다. 밤새도록 끙끙 앓는 소리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타이레놀과 쌍화탕과 판피린을 끼고 산다. 그래도 내 밥과 약을 챙겨 주려고 일어나서 밥을 챙겨주고 또 잔다. 처 앞에서 할 말이 없다. 2월에는 아마 팔에 수술여부를 결정해야 할 듯하다. 그렇게 아파도 나만 아니 내 건강만 생각하는 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낮에 명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하며 웃으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한다. 처를 바꿔 주었더니 통화 속에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재작년부터 작은어머니를 찾아 인사를 올렸는데 토요일인 오늘 가기로 했는데 파키슨병을 앓는 명희가 코로나에 걸리더니 작은어머니까지 옮긴 듯하다. 다음에 만나기로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당초에 설 다음 날에 처갓집을 가로 했는데 우울증이 심한 처가 오지 말란다. 그러더니 어제 문자로 내일 오라고 한단다. 어떤 가족이든 근심 걱정이 없는 가족이 어디 있을까 마는 사는 것이 너무 메말라 가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 인천에 가기로 했는데 처는 아프다고 누워있고 처제는 언제 변할지 모르고, 사거리 작은집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어 처가 전화를 했는데 중환자실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연명치료 안 하겠다고 이미 서명을 했다. 오늘 인천 작은집에 가서 사촌을 만나 모처럼 회포를 풀까 했는데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사인가 보다. 건강이 최우선인데 한해 두해 나이가 들수록 불안하기만 하다.

 

 

 

202521

 

건강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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