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1983)
모두가 보고 싶음에
반가움을 나누는
벗들의 우정어린 인사
그리움으로 가득찬 눈망울
당신은 지금
한아름의 꽃이 되었는가?
고웁게
고웁게 접은 청초한 마음
펼처지는
옛 사랑의 그림자
수학의 여로에서
돌아와
잠시 머물다 가는
백설같은
동심의 발자취여!
세상은 어지럽게 돌아가도 세월은 멈추지 않고 유행가 가사처럼 잘도 돌아간다. 봄이 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행복의 소리도 들려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 다니느라 바깥세상을 못 봤는데 물왕동에도 벚꽃이 피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청명 즈음에 개나리는 지고 벚꽃은 만발할 무렵인데 올해는 이제야 피기 시작한다.
우리집 베란다의 꽃들도 자기들을 봐 달라며 개발선인장부터 피기 시작하더니 피고 지고 하는 모습이 우리 부부를 즐겁게 한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처는 아침마다 “앵두야 안녕? 잘잤니? 아빠도 건강하게 해 줘” 하면서 맞이한다. 처의 고운 심성이 문안부터 발휘한다. 재작년엔 크로톤과 관음죽도 15년만에 꽃이 피었는데 올해는 소식이 없다. 올해는 동백만 졌을 뿐이다.

1972년 4월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지금껏 쓰고 있다. 92년 산재사고를 당하여 일시 중단하기도 했지만, 집에 와 보니 여동생이 내 일기를 보며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릴 때 일주일 동안 쓴 기록이 남아 있었다. 부모님 은혼식 때 글을 써서 읽은 적이 있었고 말은 잘 못하고 워낙에 약해 동적인 것은 못하고, 정적인 것을 찾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이 되었든 낙서가 되었든, 시조가 되었든, 아니면 수필 혹은 기행문이 되었든 자주 썼다. 옛날 블로그인 통의 구독자가 10만이 넘었으나 통이 없어지고 티스토리로 바뀌면서 많이 줄었다.

56회에 나가 회장인 병환과 총무도 3년 연속 보기도 했었다. 발표는 다른 사람이 했어도 회비 600만에서 2000만을 다른 총무에게 넘겨주었었다. 2012년 뇌경색과 당뇨가 와 내 발목을 잡았다. 차도 팔고 56회도 나가지 않았다. 밖을 나가봐야 남의 신세를 지기 때문에 저절로 거리를 두게 되니, 내 스스로 피하게 되었다.
책은 병원에 있으면서 사흘에 한 권씩은 읽은 것 같다. 요즈음은 눈이 안 좋아 일주일에 한 권을 읽는다, 올해도 열권은 더 본 듯하다. 물왕저수지를 바라보며 시조 한 수 쓰기도 하고 지금은 낚시가 금지되었지만, 초한지에 나오는 한신장군이 젊어서 강태공이 되어 세월을 낚아서 그런지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요즈음에도 세 번째 보는 초한지 8권째를 보고 있다. 9번 읽은 삼국지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을 예정이다.

한국말 중 독특한 표현으로 ‘뜸 들인다’라는 말이 있다. 밥은 물론 간장, 된장, 고추장도 얼마 동안 뜸을 들인 후에 먹는다. 뜸을 들인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는 기다리는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향기 고운 말은 꽃을 피우고 가시 돋친 말은 상처가 남는다. 말은 하되 생각을 먼저 하고 말은 듣되 새겨서 들어야 한다. 산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남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라도 한 가지 일을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고사성어에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성어가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고 어떤 힘든 일이라고 참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말이다. 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마음이 색다르게 보았나 보다.
2008년 10월 주례 선생님은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은 오정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주례사에서 말씀하시기를 호랑이와 암소를 비유하여 결혼해서 뜻이 안 맞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신뢰로 가정을 꾸며야 한다고 하셨다.

지난 6일 결혼 6천일을 맞이했다. 당초엔 부산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작은 어머니도 중환자실에 계시고 처제도 병원에 있고 세상도 어지러워 가을에 가기로 했고, 장미를 사려고 했는데 한 송이에 5000원 달라고 해서 60송이를 포기했다. 처에게 6천일을 자축하자고 톡을 보냈더니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처의 친구와 점심을 외식으로 했을 뿐이다.
장미는 세 여자에게 선물했다. 첫 번째로 부모님 금혼식에 50송이를 했었고, 두 번째로 작은아버지 결혼 40주년 때 작은어머니께 40송이를 했었고, 결혼 1주년 때 백송이로 축하해 주었다.

재작년에 동우가 우리집에 왔었다. 우리 부부의 사는 모습을 보고 무엇에 반한지 모르지만 감동을 받았나 보다. 거기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여러 친구들에게 말을 했나 보다. 어느 가정이나 사는 것이야 거의 비슷할 것이다. 우리집도 특이하지 않게 살아 남들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우리 가정은 남들에 비해 병원비 약값이 많이 들어 내가 타는 연금의 40%를 차지한다. 실비보험 가입이 안 되는 데다가 요새는 약값도 올라 월 150만원이 나간다. 그래서 서로 위하고 아끼며 살아왔는데 친구들은 색다르게 보았나 보다.

동창 중에 친목회가 있었나보다 한 달전부터 우리 부부를 초대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9일 물왕저수지 예원한정식에서 만났다. 상구, 귀철, 경석, 주남, 정금등 6명이 참석을 했다. 상구는 몇 년전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고생했는데, 지난 1월에 종찬이와 같이 방문했었다. 귀철은 사무실이 목감이라 여러 번 봤다.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병원까지 같이 가 주었었다. 경석이는 자주 못 봤고 여자 동창 주남은 내 결혼식에 참석했었는데, 정금이는 초등학교 졸업후 처음 만난 듯하다.
경석은 잊었겠지만 그와의 추억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경석이네 집은 다들 어렵게 살았는데도 비교적 여유있는 집안이었다. 어느날 입학선물로 사 준 구두를 잃어버리고 울며 집으로 왔다. 그 당시 막내 고모와 경석이 큰형님이 6학년이었다. 다음날 막내 고모님이 우리 교실로 찾아와 구두를 찾아 주었는데 경석이와 실랑이가 있었고, 그의 큰형님과 사이좋게 매듭을 지었다. 60여년전 일이다.

동우가 얼마나 칭찬을 했는지 몸둘바를 모르겠다. 그냥 듣기만 하고 필요한 말만 했을 뿐이다. 그 와중에서도 처는 나를 챙기느라 바쁘다.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한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경석은 한달전에 사업장에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사고가 나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못다 한 이야기를 풍경이란 커피숍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데크에서 휠체어에 의지하며 추억거리를 남겼다. 모든 것이 좋았고 행복했다. 동우의 덕분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고 대접을 받았다. 반면에 다른 친구들에 누가 되지 않을까? 처는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참석해 보니 잘 했다고 하면서 다음 달에라도 모두 초대하여 대접하고 싶단다. 남들에게 초대는 많이 했어도 여러 사람에게 초대받기는 처음이라 나도 어리둥절한 것은 사실이다. 오랜만에 본 친구들을 생각하며 반갑고 고맙고 좋았다. 늙어 가면서 뒤늦게 추억거리 하나 생겨서 우리 부부는 행복해했다.

우연한 기회 망설이지 않고 잡아야 한다. 간절할 때는 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다. 작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있어도 큰 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생각 없이 내뱉는 작은 말 한마디에 인간관계와 부부관계가 깨지며 금이 가고 가화만사성이 무너질 수 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말과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장애인이요 병자일지라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다른 이들에 비해 여유롭지는 않으나 결코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다.

결혼 전에 처에게 부탁 하나 했었다. 김치만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복덩이가 들어 왔다고 선친은 좋아하셨다. 비록 밥을 흘리며 먹을지라도 매일 목욕을 시켜줄지라도 그리고 약을 챙겨 줄지라도 나를 나무라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잔소리를 하가나 싫은 내색을 하면 좋으련만 절대 그러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이불 빨래를 하고 매일 속옷을 갈아입히고 겉옷은 2~3일에 한 번 갈아입혀도 짜증 내는 법이 없다.
비록 팔불출이란 소리를 들을지언정 처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처는 아파트 주민들은 물론 근동 사람과 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는다. 내게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콧줄을 끼고 있는 사람도 많아 당신만 옆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라고 늘 말하며 스킨쉽도 수없이 한다. 집에 먼지 하나가 없다. 먼지가 있으면 환자에게 해롭단다. 늘 깨끗하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다.

우리집에 온 사람은 반찬에 놀란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며 반찬이 꽤 많은데 당뇨식이다. 내가 불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달 한 번씩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지만 나이 먹어서인지 그나마도 안 한다. 선친 말씀대로 내게는 복덩어리이다. 워낙에 약한데다가 나이를 먹어 휠체어 미는 데도 힘에 부쳐한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은 불변할 것이다. 비록 내가 집안을 위해 사흘에 한 번 대청소만 도와줄 뿐이고 발만 주물러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처가 있기에 나는 우리는 우리 가정은 마음의 꽃이 피고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친구들아 고맙다.
여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영원히
2025년 4월 12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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