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 외에 다산선생을 실학이 대가요 거중기를 발명했다는 것 이외에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1992년 산재를 당하면서 누워서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때부터 책을 가까이했다. 삼국지는 물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동의보감, 토정비결, 공존의 그늘 등 정말 많이 읽었다. 모친께서 책 사다 날랐다. 책방 주인이 누가 읽기에 그렇게 많이 사 가냐고 물어보더란다, 고향친구 우경이도 그 근처에 살면서 헌 책을 많이 갖다 주곤 하였다. 삼국지는 평생 9번을 읽었다. 목민심서 5권짜리도 그때 읽었던 책으로 다산산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책은 그때부터 사흘에 한권 1년에 100여권씩 보게 되었는데 그 많던 책들은 많이 없어지고 집에 약 1000여권만 있을 뿐이다.
오후 두시가 넘어 처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팔당호수와 다신 기념관에 갔는데 좋다고 하면서 길호가 이모부 모시고 한 번 더 가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갔다. 찌는 듯한 무더위 아이스크림이 금방 녹는다. 동서는 포항에 갔다고 한다. 시원한 한강물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팔당호수를 보니 청량제가 따로 필요 없다. 필당호수와 연결된 두물머리는 지난 오월 인숙이 일행과 같이 왔었는데 다산 기념관은 처음 들어봤고 그의 생가가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다산 선생의 생가를 보면서 그의 성품을 알게 되었다. 정갈한 이미지에서 대인의 모습을 밯견할 수 있었다.
실학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17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나타났던 새로운 사상으로 당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성리학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경세치용과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학문 태도를 강조했다, 실학(實學)은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라는 뜻으로 유학의 전통에서 공리공론(空理空論)에 기초한 헛된 학문'이라는 뜻의 허학(虛 學)과 대립된 말로 폭넓게 쓰여 왔다고 한다, ㈜ 두산백과
다산선생은 1762년에 태어나 18세기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아자 개혁가이다. 정약용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귀양살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은 평생을 통하여 중단없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탄생한 것이다.
네 살때 천자문을 읽고 7세에 한시를 지었으며 10세에 자작시 삼미집을 지었다고 한다, 성균관 재학시절 정조에게 인정을 받았고 28세에 대과에 합격 벼슬길에 나갔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관료가였다. 배다리와 기중기의 설계에서 재능을 펼치지만 그의 저작에서 엿보이는 정치관은 민본이었다. 조선후기를 살았던 인물이지만 소박하게나마 민주주의를 실현한 사람이었을 것이리라,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뜨면서 그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 신유사화가 일어나고 천도교도라 하여 18년의 강진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57세까지 유배생활을 하면서 다산초당을 짓고 수많은 저서를 냈다. 해배이후 75세까지 많은 저서를 내고 후배를 양성했다. 그 중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발간하여 경세를 위한 실천방안을 체계화했다.
우리는 박물관에 들어갔다. 여러 곳을 다녔으나 이처럼 한 사람을 위한 박물관을 처음이다. 정갈하고 조용하다. 밖은 뜨거웠으나 안은 에어콘으로 시원하고 깨끗하고 수많은 책과 인물등으로 우리보다는 어린이들에게 교훈이 되리라 생각한다, 3전시실까지 있는데 1전시실은 실학이 형성된 배경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 유통됐던 상평통보와 자명종과 반계수록 등이 전시돼 있다. 학문의 대상 또한 도덕으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옮겨갔고, 여기서 실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고 한다.
2전시실은 본격적으로 실학이 전개된다. 18세기의 실학은 제도 개혁의 중심으로 자아를 탐구하는 조선학이 등장하기도 했다. 제2전시실에서는 성호사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박지원의 열하일기, 정약용의 목민심서 등을 찾아볼 수 있다. 3전시실은 조선의 천문학과 지리학을 살펴볼 수 있다. 3전시실에서는 조선왕실에서 그린 ‘곤여만국전도’, 아라비아식 천문시계 등 많은 기구와 지금의 기상대격인 조선의 천문대 볼 수 있다. 우리는 천문시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박물관을 구경하니 다시가 넘었다,
밖나오는 길에 선생이 쓴 칠언절구의 시가 눈에 띄였다, 구리의 소나무 앞 삿갓 쓴 정자하나 짙은 안개 낀 강이 병풍처럼 둘렀네 강 남쪽은 어두워 모두 바다 같은데 노 젖는 소리만 삐거덕 소리만 조용히 들리네 정말로 자연의 아름다움서정적인 글귀라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빆의 햇살은 여전히 따갑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그늘과 앉아서 쉴 수 있는 매점을 찾아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동서가 포항에서 대개를 가지고 온다고 한다, 우리는 남양주의 다산선생의 발자취를 보며 팔당호수를 구경하였다, 호수를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저 한강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 넓은 호수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처가 건강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물머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색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호숫가를 걸으며 사진도 찍고 그네도 타고 어느 직장인들의 모임인 그룹의 흥겨운 노래도 들으며 망중한을 즐겼다.
다산선생의 가르침은 현대인인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베풀어준 남양주시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한강물을 보면서 물 흐르듯 우리도 표 나지 않게 두리둥실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더워서 그런지 몰라도 가는 길도 오는 길도 밀리지 않았다. 처가에 도착하여 장모님께 인사드리고 저녁을 가볍게 먹고 동서가 사온 대게에 소주한잔 걸치니 부러울 것이 뭐가 있겠나? 날은 더웠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고 부자가 된 느낌이다. 기분 좋은 하루 일주일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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