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해도 우리 고유명절은 풍습은 그대로인 듯하다. 예전에 비해 비록 간소화했지만, 조상에 받드는 정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가족과 모여 차례를 지내고 대화하며 음식을 먹고 성묘에 가는 것은 변함이 없다. 50여 년 전의 어려웠던 시절과 현재에 비교했을 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사람만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사는 모습은 바뀌었다. 모친이 하는 것은 처에게로 선친이 하던 것은 동생들 여동생이 하는 것은 제수씨들이 하고 모든 것이 간소화했을 뿐이다.
세상은 변했어도 풍습은 그대로네
과거는 흘러갔고 현재로 단장함에
조상을 받드는 정성 그 누가 막을쏜가?
어려서 명절은 우리들에겐 희망이었고 바램이었다. 빔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성묘도 가고 세배하고 세뱃돈도 받았으니 어린 우리들에겐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설에는 엿에 강정, 다식, 약과, 식혜, 특주, 수정과 등등 그리고 추석엔 햇과일로 그득하고 송편이 우리의 입맛을 돋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모친의 손맛만 알았지 고생하고 늙는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살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철도 들고 60을 넘긴 이 순간에 부모님을 생각할 제 가슴이 저려온다. 머리는 희고 병은 들고 몸은 다쳐 장애인이 되고 처의 수발을 받아보니 가슴이 저리다. 모친은 재주가 많으셨다. 손도 빨라 농사일도 많이 하면서도 홀시아버지를 30여년을 모셨다. 음식을 잘하셔서 동네 어른들께 많은 칭찬을 받아 주민들이 안양에 나가 음식 장사를 하라고 하셨다. 지금도 윤봉이는 말한다. 가끔 술 한 잔 하면 모친이 즉석에서 만든 무생채가 생각난다고 하며 옛생각에 잠기곤 한다. 지금도 제수씨들은 모친 음식이 맛있다고 그리워한다.
아련히 떠오르는 그리운 옛 시절들
정한수 떠 놓고서 합격을 기원하시던
당신의 아름다우신 고귀함에 절합니다
추석은 전날부터 바빴다. 새벽에 10리나 되는 수암에서 떡살을 가져오는 것부터 했다. 모친은 설이든 추석이든 쇠머리를 사서 이웃과 반을 나누고 그것으로 음식을 했다. 육수며 연육이며 모든 것이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모두 바쁜데 나만 할 일이 없다. 나는 청솔가지를 따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동생들과 새벽 4시까지 송편을 만들고 찌고 하는 일에도 나만 예외였다, 송편 속에는 팥이 가장 많고 깨 콩 밤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가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밤과 콩떡이었다. 내가 약하거니와 장손이라고 나를 특히 사랑하셨다. 아니 편애하셨다. 행여라도 다칠까 봐 시키지 않았다. 내 일은 동생들 몫이었다. 그런 면에서 처와 똑같다. 연필 한번 제대로 깍지 못한 뭐랄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처는 내게 설거지도 못하게 한다.
어린 시절 물 흐르듯 이순을 넘겼네요
끝없는 보실핌에 인자하신 당신사랑
성묘도 못한 불효자 엎드려 곡합니다
설날이든 추석날이든 평생을 나가보지 못했다. 흔히 명절엔 귀성객이라면서 수십 시간에 걸쳐 집에 간다는데 옛날부터 우리는 우리집에서 지냈다 기껏해야 옛날의 인천 작은집 그리고 현재는 인천에서 오는 둘째라 귀성인파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은 작은 집도 광수 때문에 차례를 못 지냈다. 그저께 병원에 갈 겸 포도를 가지고 들여다보았을 뿐이고 차례도 휠체에 앉아 절을 했을 뿐이다. 언제나 목발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데다 여동생이 오지 않아 조금 서운할 뿐이다. 성묘에 갔다가 둘째는 사장어른께서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일찍 가고 막내네만 들어왔다. 막내에게는 뭔가 아련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힘이 되어 주고 싶은데 형이 못나 제대로 힘을 불어넣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많이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처가 바람을 넣는다. 한숨들 자고 밖으로 나갔다.
어수선한 분위기 건강이 으뜸인데
집집마다 가정마다 우환이 발목잡네
그래도 언제나처럼 북돋는 처의 맵시
조카들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생선회란다. 옳다거니 하고 월곶으로 향했다. 당초엔 대부도에 가서 칼국수 먹으려 했는데 작년 어린이날에 퇴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재영이가 사 준 생선회가 생각이 나서 그곳으로 갔다. 회를 고르고 이층으로 올라 자라를 잡았다. 우리 6명 준호와 함께 하긴 정말 힘들다 준호는 일요일이면 아르바이트하기 때문에 만나기 힘들다. 내가 다치지 않았으면 지난달 말에 정선을 갈려고 했었다. 생선회를 먹으면서 누군가 죽음에 대해 말을 했다. 누가 먼저 죽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자식도 없고 남에게 신경 쓰이기 싫어 내가 생각한 대로 그냥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다. 처는 그럼 자기가 슬퍼서 안 된다고 한다. 수목장을 해 주겠단다. 자기가 늘 찾아와서 봐야 한다고 한다. 제수씨도 수목장이 좋다고 하는데 막내는 가족묘를 만들자고 한다. 그것은 가족이 모두 모여 결정할 사항이라 지금 당장 뭐라 말할 수 없다.
죽으면 그만인데 미래 걱정 무엇하리
혼자일 줄 알았는데 처가 나를 울리누나
이승에 못다해 준 사랑 저승에서 다 해드리리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는데 처는 양이 안 찬다. 굳이 노래방에 가자는 것이다. 처의 끼를 누가 꺽으리? 그곳이 문을 닫아 목감으로 왔다. 모두 신나게 부르는데 노래 못하는 나는 가족인데도 창피하다. 모두들 잘 부른다. 막내도 잘 부르고 특히 재영이가 부른 빅뱅의 lf you 노래는 모두에게 감탄을 일으켰다. 제수씨에 의하면 동산고등학교 다닐 때 가수로 통했다고 한다. 우리 집안은 노래 모두 잘하는데 나만 예외이다. 둘째는 88년에 취입까지 했었다, 내가 조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도 처음이고 조카들 노래소리도 처음이다. 암튼 올해의 추석 명절은 내게 있어 가장 알차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 빨리 나서 가족과 여행하고 싶다. 우리 가족 모두의 안녕과 건강을 빌어 본다.
가는 세월 아쉬운데 막내네가 도와주고
즐거운 추석 명절 노래로 웃음짓네
조카들 너희가 있어 큰아빠는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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