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연말연시를 장모님과 함께

역려과객 2020. 1. 7. 17:42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갔다. 그동안 1년에 서너 차례 장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보잘것 없는 사위는 무엇 하나 제대로 아니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다. 툭 하면 병원에 입원 신세로 면목이 서질 않는다. 작년 봄 다치기 전에 3년 만에 우리집을 찾으셨다. 온갖 시중은 작은 딸인 처제가 다 하는데 그래도 큰 딸이라고 보고 싶으신가 보다. 해서 한 달에 한두 번 과일을 사 가지고 들여다 본다. 그리고는 내 안부를 묻곤 하신단다. 큰 사위가 건강해진다는 말씀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단다. 10 여년을 불효자로 살아왔건만 장모님은 뭐가 그리 좋으신지 알 수가 없을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 큰딸하고 예쁘게 사는 모습이 좋으신가 보다.

 





 

장모님은 재작년에 크게 앓으셨다.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장모님께 지고지순한 처제 덕에 요사이는 매우 건강해지셨다. 걸음만 못 걸을 뿐 총력은 대단하시다. 평생을 요식업에 종사하셨다. 지금도 주로 채식을 좋아하시고 소식하며 절제를 하신다. 90이 훨씬 넘으셨는데 피는 60대란다. 내가 병원 신세를 지면 처가 그 수발을 하니 가뜩이나 약한 처가 그 수발을 하니 점점 쇠약해진다. 겉만 성할 뿐 우리는 약으로 산다. 그런데 장모님을 모시는 처제야 오죽하겠는가환갑도 안 된 처제의 구부정한 허리를 보면 괜시리 죄책감이 든다. 암튼 우리나 처가나 건강해야 하는데 그 점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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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날이 광호 생일이다. 케잌을 들고 처가에 갔더니 진수성찬이다. 생전에 처음 맛 보는 조니워커에 발렌타인30 그리고 많은 음식들. 우리는 맛있게 먹고 고스톱을 쳤다. 광호에게 우리집 거실에 있는 TV가 고장 났다고 하니까 자기네 회사에서 나오는 TV를 싸게 살 수 있다고 자기가 알아본다고 한다. 저녁까지 먹고 미스터트롯 재방송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늘 길호가 집까지 태워준다. 조카들 덕분에 고맙지만 늘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튿날 광호에게서 문자가 왔다. TV가 시중에서는 170만원이 넘는데 자기 할인 포인트까지 해서 55인치는 95만원 그리고 65인치는 120만원에 살 수 있다고 한다. 돈을 생각해서 작은 것을 사겠다고 하니까 처와 광호는 부득불 큰 것 사라고 한다. 10 여년 만에 장만하는 데 시중가의 2/3 가격이라며 권한다. 해서 큰 것을 사와 이틀 후에 설치하고 보니 엄청 크고 좋다. 기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없는 살림에 부담은 되지만 더 절약하면 되겠지 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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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점심 먹고 한 숨 자려는데 길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메향기 가자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두물머리 인줄 알았는데 거기가 아니란다. 가는 도중에 남한강인 청평을 보며 모든 것이 저 강가에 실려 나가는 것처럼 마음이 상쾌해진다. 금요일에 찍은 사진을 보니 뼈가 많이 붙었고 다음다음 달이면 목발을 짚을 수 있다고 좋은 소리를 들은 데다 시원한 강을 믈 보니 모든 것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굽이굽이 산기슭을 올라가 두메향기에 도착하니 세시 반이었다. 여름에는 일인당 6000원인데 겨울에는 공짜라고 한다. 개인이 하는데 막상 도착하니 도시같지 않고 날씨가 차갑고 산 중턱이라 어둠이 밀려온다. 우리집 화초의 수십배를 확대해 놓은 듯한 정원이 우리를 반긴다.

 





 

어려서 부터 우리집은 늘 화초가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생화를 겨울엔 들꽃을 꺽어다 화분에 놓곤 하셨는데 처 역시 화초를 좋아한다. 처음엔 키울 줄 몰라 많이 죽이기도 했으니 요령이 생기더니 제 때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하니 화초들이 무성하여 우리집에 오는 사람마다 반색하며 좋아한다. 화초에게 앵두라는 이름을 붙여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인사를 하고 앵두에게 나가면 나간다고 인사를 하고 자면 잔다고 인사를 한다. 유난도 떤다고 생각했는데 자식처럼 생각하매 그 또한 정겹게 들린다. 지금도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 있는데 나는 그래도 동백을 좋아하는데 처는 그런 면에서 섬세하다.

 





 

정원은 별로 크지 않지만 요소 요소 잘 꾸며져 있다. 각종 온대 열대 식물들이 아가자기하게 베치해 놓았고 테이블과 의자가 꾸며져 있고 아름다운 수많은 화초들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많은 식물들을 바라보니 저절로 힐링되는 것 같다. 헌데 거기까지 뿐이었다. 산 중턱이라 휠체어거 못 다닌다. 더욱이 오솔길을 올라가는 산들은 소나무며 많은 나무들이 손짓하는데 그림의 떡이었다. 여름에 오면 볼 것도 많고 야광 별빛 축제도 한다는데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할 수 없이 발을 돌려야 했다.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기로 해서 목감에 다 왔는데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동서가 사골을 끓여 놓았다. 사골이 진하고 신김치가 일품이다. 장모님께는 인사만 하고 우리는 미스터트롯을 보며 배꼽을 잡았다. 노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고스톱을 치다가 밤 9시에 돌아왔다. 광호가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길래 내일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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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점심을 먹고 한 숨을 자는데 처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장모님까지 오실 줄 몰랐다. 오랜만에 오셨다.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 이외에는 출입을 안 하시는데 오랜만에 우리집은 웃음꽃이 피었고 모두가 화기애애하다. 처제가 사 온 민물 매운탕에 통닭 두 마리를 시켜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술 한 잔 했다. 그런데 광호가 중대발표를 하겠다는 것이다. 장가 가려나 했는데 광명에 일억 구천짜리 집을 샀다고 하여 모든 이가 깜짝 놀랐다며 방금 자기네 식구들 모두 다녀 왔다고 한다. 동영상를 TV에 연결하여 설명해준다. 동서도 처제도 몰랐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삼십을 갓 넘친 조카가 맨날 여행만 할 줄 알았는데 우리를 이렇게 기쁘게 하다니 조카가 자랑스러웠다,

 






 

두어 시간을 고스톱 치다가 어제 못 먹은 김치찌개집에 갔다. 동서 오면 꼭 한 번 대접 하리라 했는데 장모님까지 오셨으니 기회는 이때다 싶어 들어갔는데 손님이 너무 많다. 김치찌개는 모친이 끓여 주신 것처럼 맛이 있어 치과에 올 때마다 여러번 왔었다. 모두들 잘 좋아하고 장모님이하 모두 잘 먹는데 정작 추천한 나는 별로였다. 김치는 묵은지라야 했는데 김치가 시지 않아 나는 별로였지만 모두들 잘 먹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싸고 맛이 있어 몇 번 왔었는데 나만은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아무튼 열흘에 장모님을 세 번이나 뵙게 되는 행운을 앉은 연말연시였다. 나와 처 그리고 모든 가족이 건강해져 장모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은 자주 찾아뵙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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