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혼끼와 노래방

역려과객 2020. 1. 19. 16:19


 

요즈음도 처는 내 오줌통을 들고 다닌다. 6개월이 넘어서 이젠 뼈도 거의 다 붙어간다. 다음다음 달이면 목발을 짚을 수 있을 것 이라고 한다. 정말로 다행히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처의 고충이 눈에 보이게 안 보이게 내 자신을 안타깝게 하고 미안한 마음이 쌓여만 간다. 넘어지면 안 된다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 목욕시켜주고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해 준다.

 





 

처는 배려심이 강하다. 제 때에 후식 간식은 물론 아침마다 어디 불편한 것 없냐고 물어본다. 내가 어쩌다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난리가 난다. 자기 일이란다. 자기가 더 아프면 그때 하란다. 처의 배려는 한도 끝도 없다. 가령 화장실의 휴지가 거의 다 쓸 무렵이면 미리 갈아서 안방으로 가져가고 새것으로 갈아 놓는다. 매사 이런 식이다. 나를 편하게 한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자립심을 잃게 하지만 어쨌든 처의 아름다운 배려심은 끝이 없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동네 어르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도와드리거나 빵 하나라도 사 드린다. 배려가 몸에 배여 있다. 주위에서는 천사라고 부를 정도로 마음이 예쁘다.

 





 

우리집은 늘 깨끗하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늘 제자리에 있고,화초도 항상 싱그럽고 푸르르다. 항상 웃으려고 하고 행복해한다. 그런 처에게도 몇가지 단점이 있다. 주사가 있고 알뜰하지 못하다. 나랑 싸우는 일이 그런 점이다. 내 일기장에 늘 쓰기를 한 달에 29일은 천국이고 하루는 지옥이라고 그만큼 술과 노래를 좋아할 뿐 아니라 즐긴다. 요사히는 줄어들었지만 잠을 못 잘 때가 많았다. 요샌 체력도 약해지고 먹는 약도 많고 내가 싫어하니까 덜 한다. 그 대신 한 달에 두어번 나가서 같이 술 마시기로 했다.

 





 

수일 전에 술이 먹고 싶다고 해서 그러마 하고 밖에 나갔다. 처는 나랑 같이만 나가면 매우 좋아한다. 그것이 설사 병원이라 해도 나와 나가면 어린애처럼 변한다. 근동에 혼끼라는 술집이 있다. 나는 육회를 시키고 처는 샤브샤부를 시켜 놓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주로 듣는 편이지만 값도 저렴하고 기분좋게 마셨다. 처가 좋아하는 것이 또 있다. 노래와 여행이다. 여행은 내 몸 상태가 이러니 못 가고 목발 짚는 날 바로 부산 여행하자고 한다. 그대신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워낙에 노래를 좋아한다, 운동하면서 늘 팝송을 듣는데 기분좋게 따라갔다. 처는 진성과 배호를 유난히 좋아한다. 진성 노래를 연거푸 세 곡이나 부른다. 우리집은 아버지 때부터 고모에 이어 동생들도 노래는 잘한다. 둘째는 88년도에 노래 11곡이나 취입할 정도로 잫하는데 유독 나만은 음치이다. 가사 음정 박자 모두 제로이다 오죽하면 잘 나오지 않는 0점까지 나왔을까? 거기에 노래 한 곡만 하면 숨이 차다. 여자 말만 잘 들으면 떡이 생긴다고 하는데 나는 결혼을 정말 잘 했다고 늘 생각하고 고마워 한다.

 







 

지난 수요일 작은 아버지 기고인데 처에게만 봉투를 보냈더니 작은어머니께 칭찬 들었다고 좋아한다, 처나 나나 건강치 못해 병원비 약값이 전체의 1/3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설 지나고 인천 작은 집에 한 번 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건강이다. 처의 바램은 또 하나 있다. 매일 내게 말한다. 재영이의 취직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데에 있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 우리 부부도 전기 가스 때문에 가끔 다투지만 설사 건강치 못해도 그래도 처가 있음에 나는 행복하다. 설이 다가온다. 동생들 볼 생각에 마음은 들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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