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든 스승님이 계시다. 자신을 가르치고 일깨워 주신 분들은 참 많아도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스승님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분의 덕을 좆아 기리고 그분의 발자취를 찾곤 한다. 내게도 그런 분이 계시다.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스승님 바로 오정순 선생님이시다.
가장 재미있었고 모두들 화목했고 아름다운 꿈을 꾸던 40년 전의 그 시절 한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활짝 웃는 얼굴에 때로는 무섭게 매를 드시는 선생님. 30년전엔 편지도 쓰고 가끔 찾아가 뵌 적도 잊지만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뵙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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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갓 나와 담임을 맡았고 우리에게 정을 쏟은 상록수는 우리를 매료시켰다. 냇가에 가서 때를 닦아 주시기도 하였고, 등수가 내려간 수만큼 회초리를 드셨던 분은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편을 떠나실 때 우리 모두에게 2원짜리 초콜릿을 나누어 이별의 정을 나누었고 그래서 다른 반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가도 했다.
스승님은 내게 두 가지 별명을 주셨다. 잘 울기도 했거니와 몸이 약해 '애기'라는 것과 산수문제를 워낙 잘 풀었기에 '수학박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국민교육헌장을 가장 빨리 외워서 칭찬을 받기도 했다. 스승님 덕으로 반장인 현광이와 함께 우등상과 개근상을 탈 수 있었고, 학교 대표로 주산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처음으로 남자, 여자를 짝을 만들어 주셨던 분이기도 하다. 그 때만 해도 상상을 못했던 시절이다.
현광이가 수소문 끝에 거의 한 달만에 스승님을 찾았다. 내 결혼 주례로 추천해 주었고 스승님은 기꺼이 내 주례를 응낙했다고 연락이 왔고 30년 만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스승님은 수필가로 등단하셨고 바쁘지 않을 때에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을 하신다고 한다. 스승님은 주례가 처음이라고 하신다. 감개무량 할 따름이다.
내 결혼식이 끝나고 반창회를 갖자고 했나 보다. 비록 시간이 안 맞아 참석 하지는 못하지만 모두들 뵙고 싶었던 선생님을 뵌 다는 말에 많은 친구들이 참석한다고 한다. 얼마나 경사스런 일인가? 보잘 것 없는 나를 주례서 주시는 스승님은 물론 물심양면으로 내 결혼식을 빛나게 만드는 현광이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