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의 결혼식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당히 망설이다 참석하기로 했다. 일찍 간 친구들은 벌써 손자 외손자가 있는데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내가 미혼이라서 가지 말라는 친구도 있지만 다름 아닌 종찬의 딸 하얀이의 결혼식엔 꼭 참가하고 싶었다. 지난 연말에 올라 와서는 2월에 한다고 했다가 1월로 앞당겨지고 결국 회장인 현광과 함께 내가 연락을 취해 당초 7명이 가기로 했으나 5명이 승용차로 출발하기로 하고 8시에 안산에서 떠났다.
새벽부터 잠을 설쳐야 했다. 어젯밤 음방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아예 들어가지도 않고 술 한잔 하고 일찍 잠을 청했는데 깨고 보니 새벽 세시 20분. 뒤척이다 잠들었는데 4시 50분에 왜 안 가냐고 부친께서 폰으로 깨우시는 것이다. ㅎㅎ 부친도 내가 여행 간다니까. 들뜨신 듯 하다. 5시에 일어나 컴 정리 좀 하고 6시에 밥을 먹고 샤워하려는데 인숙에게 전화가 왔다. 잘 다녀 오라고. 미리 깨워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부친의 밥을 차려 놓고 7시에 미연에게 택시를 부탁하고 나니까 점심때나 올 줄 알았던 막내가 벌써 왔다. 그래 막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히 갔다 오자고 마음 먹었다. 귀철이와 재덕이 그리고 종찬의 고종사촌인 용균이 등이 차안에서 근 30년전의 이야기를 해 가며 지루하지 않게 울산을 향해 달렸다. 미리 현광에게 화장실 문제를 이야기 하니 알았다고 하면서 나를 편하게 해 주었고 다른 이들도 나를 부축여 주어서 어렵지 않게 볼 일을 보곤 했다.
울산은 역시 따뜻했다. 지리도 넓을 뿐 아니라 태화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겨울 답지 않고 이른 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 낯설지도 않다. 20여 년만에 찾아 온 울산은 푸근한 멋이 스며 들었다. 내가 회의 참 맛을 알게 된 것이 방어진 이었다. 종찬이가 찾아 왔다고 처음으로 데려간 곳이 방어진의 횟집이었다. 지금도 엄청 좋아 하지만 그 때의 맛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얀이 엄마나 세 딸 모두 아빠 고향 친구하면 나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 집에 여러 번 다녀 갔으나 내가 다친 이후로는 처음으로 찾아 온 곳이니 실로 오랜만에 온 것이다. 친구와 하얀이 엄마 모두 반색을 한다. 점심을 먹고 교회에서 예식을 끝내고 나니 1시 45분. 우리는 인사만 하고 바로 출발을 하였다.
친구들의 구수한 입담 속에 고생을 하는 현광을 뒤로 한 채 우리는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갑자기 30년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귀철의 도움으로 호두과자를 들고 집에 오시 저녁 7시가 넘었다. 막내가 부친의 저녁을 드리고 난 후였다. 막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어딘가 모르게 뻥 뚫린 기분이다. 잘 다녀 오고 생각보다 고생도 덜 했고 기분 좋게 다녀 왔으나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인생을 헛 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하고 종찬에게 마음속으로 축하를 다시 한 번 더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