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화투

역려과객 2014. 7. 18. 16:28
화투
2006.06.25

 

 

 

  모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고스톱을 쳤다. 전에는 자주 즐겼었다.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죽마고우 친목회인데 전엔 만나면 늘 고스톱을 쳤었다. 의례 하는 행사로 여겼다. 누가 잃고 따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부인들은 그 시간에 노래방을 다녀온다. 그런데 경제가 나쁜지는 몰라도 그 횟수가 적어진다. 술도 차를 핑계대고 덜 마신다.

 

  나도 고스톱을 한때 엄청 즐겼다. 오죽하면 돌아가신 모친께서 '너 화투 때문에 다친 것 내가 모를 줄 아니?'라고 하셨을까? 쉬는 날이면 동네 분들과 어울려 놀았으니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선 회사동료들과 점심때면 뽕을 쳤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엔 그 돈 모두 모아서 별미 음식을 찾곤 했었다. 퇴원하고는 장애인 사무실에서 카드를 배워 훌라를 즐겼었다.

 

  노름꾼은 손이 없으면 발가락으로 화투를 잡는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화투장을 꺼내 든다』고 외국언론들이 비아냥댄 적도 있지만 고스톱으로 대표되는 화투놀이는 사실 우리사회에 곳곳에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심하면 몸도 축내고 돈과 시간을 앗아가는 망국병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화투놀이가 이처럼 성행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떤 학자는 50년대 민화투, 60년대 육백, 70년대 나일롱뽕, 그 이후에 고스톱이 유행하는 것은 당시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래의 가족제도가 엄할 때에는 민화투식의 단조로운 게임을 했고 정변이 잦자 단숨에 판세를 뒤집는 『뽕』이 나타났으며, 요즘 고스톱 종류가 여러모로 가지를 치는 건 복잡다단한 사회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집도 일 년에 두어 번은 가족과 함께 고스톱을 친다. 설날이나 추석 전후에 부친과 동생들 매부 제수씨 할 것 없이 어울려 친다. 가정이 화목해 짐을 느낀다. 우리 조상님도 화투를 좋아 했었나 보다. 그것을 아신 조부님께서는 우리 사랑방이 말방 이었는데도 돌아 가실 때까지 전혀 손을 대지 않으셨다. 결심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이 년전 겨울만 해도 따질 줄 모르는 모친을 부친은 나와 함께 침해예방이라고 하시면서 가끔 지리한 겨울밤을 즐기셨다.

 

  여럿이 즐기면서 많이 대범해 지기도 하고 상대편의 성격을 파악하기도 하거니와 접대할 분 이라면 적당히 잃어 주기도 하는 고스톱.  어쨌든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화투놀이가 번창한 건 사실이다.  국기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일상화돼 정말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함께 즐기는 게임이 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놀이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오락보다 사행성이 더 크다는데 있다. 물론 요행심을 바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건전하고 밝은 사회를 위해선 더 없이 좋은 고스톱. 잠시나마 재미있게 즐기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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