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두꺼비여 망우물이여

역려과객 2014. 7. 4. 15:53

 

두꺼비여 망우물이여
2006.10.30

 


   지난 토요일에 죽마지우 친구모임이 있어 안양에 나갔다가 잔뜩 취해서 돌아왔다. 7시 모임에 11시가 넘도록 마셨으니 가히 세 병은 족히 마신 셈이다. 평소 한 병을 마시고 기분 좋으면 병반을 마셨는데 그 날 따라 취하고 싶었다.  한 친구가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겨 이혼을 하고 방황 아닌 방황을 하고 있었다.

 

  9시 반경 모두들 태워 준다고 가잔다. 현석이 엄마도 그렇고 미경이 엄마도 그렇고 이슬이 엄마도 태워 줄테니 가자고 하는데 이 친구는 부득불 더 먹겠다는 것이다. 떠나간 친구를 원망 아닌 원망을 하면서 가슴에 쌓인 응분을 쏟아 내기라도 하듯이. 나 또한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내가 없더라도 혼자서 마실 친구이기에....

 

  술에도 급수가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밥맛을 돕기위해서 마시는 것을 반주라 하고 잠을 청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을 수주라 하며 술에 취미를 맛 보는 사람을 애주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인가? 전에는 잠을 청하기 위해서 마셨지만 그것은 아니고 밥맛을 돕는 것도 아니고 아마 학주인 듯 하다.  술의 진경을 배우는 것이니 1급인 학주가 적당하다고나 할까?

 

  예전에 기고 때면 음복을 하게 되었고, 술을 늦게 배운 듯 하다. 조부님 앞에서 배웠으니 실수는 별로 없는 듯 하다. 부친도 약주 드시고 오는 날이면 살며시 대문을 열고 조부님께 인사만 살짝 하고 들어 가시는 모습을 보며 술의 주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음방을 하면서 좋은 현상이 하나 생겼다. 거의 매일 마시던 술을 자제하게 되었다.  술은 내게 있어서 가장 친한 벗이 된지 30년이 되어간다. 적당히 마시면서 사색하고. 어울리고, 글을 쓰고, 입맛을 돋구고, 잠을 청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나에 있어서 술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한 달에 40병 정도 마셨으나 요새는 대여섯 병이나 마시나? 암튼 많이 줄었다. 속도 편해지고.  그 반면에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가정 먼저 술을 마셔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로 기억을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집은 항상 술이 있었다. 그 시절엔 관청 몰래 술을 많이 담갔다. 누가 순시라도 나오면 그것을 감추느라 애쓰신 부모님 생각도 난다. 정월 대보름을 며칠 남기고 모친은 윷놀이에 져서 술을 가지러 집에 오신 모양이다. 그리고는 질겁을 하셨단다.

 

  건너방인 우리 방에 항상 술독이 있었다. 초저녁에 깡통을 돌리고 집에 와서 동생과 누웠다. 출출한 기가 들어 우리는 독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는 바가지로 조금 떠 먹었다. 달짝지근하고 향기가 좋았다. 해서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는 그시절 유행하는 이상열의 노래 '아마도 빗물이겠지'라는 노래를 부르며 골아 떨어졌다. 기고 싸고 정신을 잃었었나 보다.

 

  직장 다닐 때 희석주가 아닌 증류주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술의 주성분은 에탄올이다. 메탄올은 마시면 죽을 위험이 있고 펜탄올은 어지럽다. 에탄올은 체내에 들어가면 간에서 분해를 하는데 일단 산화를 하게 되면 아세트 알데히드와 물이 나오고 거기에서 더 산화하게 되면 초산과 물이 나온다. 초산이 산화하면 다시 산화하게 되면 이산화탄소와 물이 생성하게 되어 자리를 잡는데 이 과정에서 아세트 알데히드가 머리속에 들어가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어 머리가 아픈 것이다. 아뭏든 사람마다 주량이 다 다르고 식성도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모여서 술 한잔을 하게 된다. 친하면 친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낯선 사람을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때에는 술보다 더 좋은 음식이 없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매듭도 술의 힘으로 잘 풀리는 경우가 많지만 적게 마시면 약이요 많이 마시면 독이 되고 실수를 하게 되니 약주이든 독주이든 판단은 본인이 잘 알 것이다.

 

  내겐 사업 실패 했을 때 가장 많이 마신 듯하다. 모든 것을 잊고 싶기도 했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린 듯하다.  적당히 마시면 술보다 활기 넘치는 음식이 없지만 그 술이 사람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한다. 내겐 술을 마시는 날은 운전을 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셔서 집에 오면 자야 한다. 그만큼 체력이 떨어졌기도 하지만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망우물 근심을 덜어 주는 물건이다. 근심과 고통을 덜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는 예는 결코 적지 않다.  곧 연말이 다가온다. 술 마실 기회가 그만큼 많아진다. 적당한 량의 술 우리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충분조건의 하나이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이다. 사람이 술을 불러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망우물은 내 영원한 동지자요 벗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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